아들 방학, 내 방학

2006.06.07 23:37

정찬열 조회 수:523 추천:17

다음 주말이면 이곳 초·중등학교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며칠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아들 녀석은 가까운 친구들과 코스타리카로 열흘간 졸업기념 여행을 간다고 들떠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둔 돈이 여행경비의 반 밖에 되지 않는다기에 부족한 반을 보태주었더니 신나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무렵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한국 대학생들이 배낭여행을 비롯 방학을 만끽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에도 방학이면 어울려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았다. 허지만 나는 방학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 해 방학을 앞두고 1년간 휴학계를 냈다. 졸업까지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놓고 나서 차분히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때쯤엔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어가며 대학을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이미 혹독하게 체험했던 터였다. 아이들을 모아 과외를 했고, 겨울 한 철 포장마차도 해 보았다.
 오뎅은 국물 맛이라기에 잘 한다는 포장마차를 찾아가 국물 만드는 비법을 배워왔다. 새벽시장에 나가 꼼장어나 쭈꾸미 등 필요한 어물을 사 오고, 해가 설핏하면 마차를 끌고나가 연탄불을 지폈다.
  그러나 모아진 돈은 노력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수업을 빼먹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졸업장이나 겨우 받아 어쩌겠다는 말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숨을 좀 고르자.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 나가자.
 휴학계를 냈지만 막막했다. 졸업까지 필요한 돈을 계산해보니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1년 내에 그 돈을 벌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까운 곳에서 길을 찾자. 가진 것을 활용하자. 즉시 행동에 옮겼다.
 내겐 주산 1급 자격증이 있었다. 주산은 산수능력과 두뇌발전에 좋지만 정규 학과목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도시주변이나 읍내에만 학원이 있었기에 시골 아이들은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방학동안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일이었다.
 몇 군데 초등학교 교장을 찾아가 얘기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비싸지 않은 수강료로, 방학동안 빈둥거릴 아이들을 모아 7급 이상의 주산 실력이 되도록 가르쳐 내겠다니, 환영하지 않을 교육자가 있겠는가.
  방학 한 달 동안,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주산을 지도했다.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서 가까운 후배들을 불러 도움을 받았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 그리고 나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교장선생님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능력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주산 실력은 약속한 7급 이상이 되었다. 암산 실력도 많이 늘었다. 어린이의 잠재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그때 체험했다.
 결산을 해보니 기대 이상 많은 학생들이 지원한 덕택에 졸업까지의 학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을 모았다. 한 달 노동의 대가치곤 너무 많은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방학을 맞아 들뜬 마음으로 졸업여행을 준비하는 아들을 보면서, 방학을 앞두고 돈을 벌기위해 휴학계를 내던 내 모습을 떠 올린다. 살아가는 시대는 달라도, 아버지가 30여 년 전 여름방학 동안 희망을 일구었던 것처럼, 녀석도 이번 여행을 통해 잊혀지지 않을 즐겁고 유익한 추억을 만들어 왔으면 좋겠다.
<06년 6월 7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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