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반미 운동을 바라보면서

2003.03.28 09:45

정찬열 조회 수:155 추천:6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행사가 있어왔고 오는 31일에는 전국 1백여곳과 해외 20여곳에서 '100만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를 여는 등 앞으로도 집회와 행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200만 동포들은 이런 움직임을 착찹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쪽을 편들었다간 자칫 곤혹한 처지에 빠질까 싶어 친정과 시집사이에 일어난 불편한 관계를 말 한마디 못하고 바라보는 며느리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무죄 판결이후 반미 함성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일방적이고 오만방자해 보이는 듯한 미국의 태도와 한국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태도가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여기에서 촉발된 시위가 엄청난 에너지로 변해 반미 물결이 되었다. 반미는 애국이고 친미는 매국으로 투영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한미주둔군협정(SOFA)개정을 요구하는 선에 그치던 반미 캠패인이 급기야 미국의 심장부인 백악관 앞에서 혈서를 쓰며 미군철수를 외치는 단계까지 왔다. 반미와 미군철수로 야기될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집단심리에 묻혀버리고 있다.
여학생 참사소식을 들으며 딸을 참혹하게 보낸 아버지의 가슴 미어지는 슬픔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미국의 태도가 불쾌하기도 했다. 미국식 처리방식에 대한 한국인의 항의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국의 법체계와 사고방식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간의 문제야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아버릴 수 있다지만 국가간의 문제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풀어야 한다. 찬찬히 생각해보자. 사건의 본질은 훈련중 '과실'에 의해 발생한 사고다. 이를 살인처럼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초등학생 손자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브레이크를 밟은다는 게 엑세레이타를 밟아 수명의 어린이를 사상케한 한국할머니가 얼마 전 무죄를 받았다. 이렇듯 미국은 과실에 의한 사고에 대해 관대하다. 공무중에 일어난 과실은 더욱 관대하게 처벌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어난 미군에 관련된 사건은 SOFA의 규정에 따르게 된다. 미국은 세계 80여개국과 SOFA 협정을 맺어 재판관할권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맺은 SOFA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이성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한국도 우리 군인이 파견되어있는 동티모르나 키리기스스탄과 주둔군에 관한 지위협정을 맺고 있다. 여기엔 공무뿐 아니라 비(非)공무 중의 범죄에 대해서까지 한국군인에 대한 재판권은 한국이 갖는 것으로 약속되어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일정수준의 피해보상은 물론 사고 당사자와 군사령관등 지휘관이 수차에 걸쳐 사과를 표명했다. 늦었지만 부시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사과도 했다.
그런데도 반미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국사회는 반미에서 바로 테러리즘을 연상한다. 반미와 테러에 대해 전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에서 반한 운동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발전이 되어 만에 하나 미군이 철수하게 되고 미국과 등을 진다고 하자. 그것이 국가를 위해 유익한 일이고 대다수의 한국민이 원하는 결과인가. 그것을 원하고 좋아할 사람이 누구일까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민족의 자존심은 반미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강해지고 당당해 짐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2003년은 한미동맹 5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사건이 2백만이 넘는 내 형제들이 살고 있는, 혈맹의 역사를 가진 미국과 한국이 진정한 우방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03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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