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기금모금 행사를 마치고

2003.03.28 09:56

정찬열 조회 수:87 추천:13

지난 2월 13일 저녁, 이곳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한 호텔에서 필자가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한국학교 기금모금을 위한 디너파티가 있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개최하는데 올해는 '서수남 하청일'콤비로 유명한 가수 하청일씨가 우정 출연하였다. 150여명이 참석하여 저녁을 먹으며 진행된 이 행사에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십시일반 모아진 돈이 일만 달러가 넘었다.
한국학교란 매주 토요일 우리 아이들을 모아 한국어와 역사를 비롯한 뿌리교육을 시키는 곳이다. 이를테면 민족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교회나 성당, 사찰을 비롯한 종교기관에서 전교활동을 겸하여 한국학교를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우리학교처럼 지역사회의 협조를 얻어 체계적으로 규모 있게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이 2백만을 넘는다. 이민자가 늘어나고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 후손들에 대한 교육이 당면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이주해온 나라에 후손들이 확실히 뿌리 내려 잘 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조국을 잊지 않고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살아주기를 바라는, 다소 모순되어 보이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민 와 사는 사람은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게 되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영어가 아이들의 일상어가 되면서 지극히 간단한 말이 아니면 아이들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부모들은 먹고사는데 바빠 영어를 배우지 못하게 된다. 부모 자식간에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도 가능하면 영어를 배워야 하겠지만 나이든 부모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이 나이든 부모보다 월등하다는 상식적인 이유와 함께 아이가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그들의 정체성(Identity)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후손들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관한 홍역을 겪게 되는데 이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과는 달리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남들 다 노는 토요일까지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할 아이는 없다. 부모에게 손목을 잡혀 학교에 나와 과정을 마치게된다. 그렇지 않는 아이도 있는데 이들은 커서 반드시 후회한다. 그중 일부는 뒤늦게 한국학교 문을 두드리게 된다. 18년 동안의 한국학교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서른 두 살 나이에 우리학교에서 한글을 배웠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 웨슬리 안씨나 변호사가 된 다음에 한글을 배우러 온 아가씨가 좋은 예다.
언어는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가운데 하나이며, 아이들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변수다. 한국어를 모르고 한민족의 정체성 없이 성장한 아이들은 겉모습만 한국인이다. 조국과 뿌리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후손에게 민족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범이다. 사면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은 유태계 미국인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조국을 위해 힘을 결집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모국의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몸에 배도록 배워 온 뿌리교육의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교 기금모금 행사에서 만 불 이상을 모았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이곳에서 만 불은 큰돈이다. 제반 경비를 제하고 순 수익금이 만 불이 넘는 모금행사는 여기선 손으로 곱을 정도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에, 우리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게 번 돈이지만 뜻 있는 분들이 정성과 염원을 담아 그렇게 모아준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어깨는 그만큼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매년 개최하는 이 행사가 우리 아이들을 한국인답게 기르는데 작은 초석이 되었다고 후일 다 함께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nambuschool@yahoo.co.kr
<2003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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