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씨와 함께

2008.02.01 08:19

조정희 조회 수:1899 추천:266









2007' 가을 문학향연

고국을 떠나 타국 살이를 하는 이민자들에게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는데
그것은 외국에 나와 살기때문에 일상인들이 유명인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국서 잘 나가는 예술인(문인, 화가, 음악인)이나 정계 인물들이
이곳 엘에이를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보다 보통 사람들이
그들을 가까운 자리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곤 한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에는 이곳 한인 커뮤티니에서 문학 행사가 있었는데
미주 문협, 시인협회, 중앙일보 공동주관으로 중앙방송 개국 기념으로 행해진
것으로 '김훈씨의 문학 강연이었다. 요즘 한국서 베스트 셀러 작가로 잘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쓰는 작품마다 굴지의 문학상들을 휩쓴 소설가 김훈씨가 초대됐다.

김훈씨는 27년간 언론인으로 일한 기자 출신으로 1990년 '풍경과 상처',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1995)을 연이어 발표 하며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1년 이순신 장군을 그린 '칼의 노래'로 동인 문학상을, '화장'이란 단편으로 이상
문학상,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하는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작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이런 작가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맙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내겐 더욱 행운으로 느껴지는 기회가 주어졌다.
주최측의 한 사람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연사가 남자 소설가인 만큼, 이곳에서
여자 소설가가 그 행사에 사회를 맡아주면 더 보기에 아름답지 않겠느냐 '면서
내게 그날 사회를 부탁했다. 나는 조금도 망서리지 않고 쾌히 승락했다.
김훈씨를 먼저 만나고 싶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가 아니라 차를 마신다든가,
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의 면모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강연회는 6시30분에 시작하는데, 우린 먼저 4시에 중앙일보사
에서 김훈씨를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지적이고 예리해 보였다.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자면 많이 무뚝뚝해 보이는데다 쉽게 근접할 수 없는 범상함이
드러나 친근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악수하는 선에서 대화는 더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한 시간 후에 있을 그의 강연에 대해 기대와 흥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강연 제목도 아주 매력적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한 요즘의 나의 생각'
이런 제목에 어찌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훈씨의 강연은 딱딱한 문학이론도 아니요, 소설쓰기 위한 어떤 기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말을 쉽게 듣기좋도록 잘 하는지 마치 잘 다듬어진 수필 한편을
마이크 앞에서 읽듯이 수월하게 말을 해서 듣는이들이 너무 편하게 그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칼의 노래를 쓰는 두 달 동안에 치아 8개가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소설쓰겠다고 나선 한 사람으로 많이 부끄러웠고 정말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그의 치열한 문학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여기에 그의 강연 일부를 그대로 소개한다. 내용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게나
유익하고 도전을 부어줄 수 이고 또한 아주 낭만적이라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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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의 사명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악한 것 그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더러운 것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생명,
시간, 자연, 언어, 이런것들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란 참 신비한 것입니다. 시간은 놀라운 모습으로 생명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언어로 포착할 것인가가 고민이고 관심입니다.
시간이 생명에 작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경이롭고 기가 막힙니다.
음악도 미술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반성의 힘이
없습니다. 언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수단이지만
자신을 반성하는 사유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참으로 불완전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자연의 색깔을
말할 때 우리는 '노랗다''파랗다'이렇게 말합니다. 본질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개념화한 것입니다. '노랗다'는 국어사전에 개나리꽃의 빛깔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노랗다' '파랗다'라는 개념의 늪에 빨질 수밖에 없는
허점이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고민은 바로 아름다움을 불완전한 도구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나는 한반도 북쪽 끝에서 남쪽끝까지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졌던 빗살무늬 토기에 주목합니다. 예외없이 모두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75도 각도로 사선이 그려져있습니다. 수직이나 수평 또는
45도였으면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기엔 자유와 율동과 흔들림과
같은 아름다움이 배어나옵니다.

나는 일산에 사는데 집 가까이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자주 들러 학생들이 노는
모습을 봅니다. 수십명이 4-5초만에 웃음을 전파시키는 모습을 보며 꽃이 피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이런 모습에서 거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나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빛깔이 변해가는 저녁시간을 좋아합니다. 저녁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하루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탄생과
성장과 소멸과 부활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그리고 새로움이란 것은
아름다움의 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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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은 더 계속되는데 여기서 그만 중단할까 한다.
김훈씨의 문학강연은
금년 가을이 내게 안겨준 선물로는 최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14/07

글/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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