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온다면

2007.01.20 08:51

조정희 조회 수:1425 추천:164







    까치가 온다면

    이른 새벽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이름을 부른것 같기도 했고 짧게 지른
    탄성인지 노래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어요. 꿈을 꾼것인가. 왠지 모르지만 순간
    혹시 까치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까치의 소리일지 몰라. 그런 바램을 안고 문 밖으로 나갔지요.
    기대한 까치는 그림자 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졌어요.
    새벽에는 화씨 40도 이하로 내려간답니다.
    내가 살고있는 남캘리포니아 날씨는 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요즘처럼 내려가는
    때는 드물어요. 그 날 아침은 앞뜰의 스프링쿨러의 물이 나왔는데 흘러내린 물에
    살짝 살얼음이 잡혔어요. 그러니 영하로 온도가 내려간 것이지요.
    이정도로 날씨가 차가워 진다면 북반구나 중북부에 살고있는 까치라 할지라도
    남가주의 로스안젤스 지역에 올 법도 한것 같지 않아요.
    그러고보니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한 번도 까치를 못 본것 같네요.
    오래전 눈이 많이 오는 오하이오 주에 살았을 때도 까치는 못 보았어요.

    까마귀과에 속하는 까치는 우리나라의 국조(國鳥)라죠.
    2월과 5월 사이 높은 나무에 마른 가지를 엮어 둥지를 틀어 5-6개의 알을
    낳는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아침결에 까치가 와서 울면 기쁜
    일이 있을 징조로 여겨 무척 반가워하는 새라고 배웠어요. 그런 생각이 내 의식에
    깔려있어서인지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라도 있는것처럼 새벽에 까치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일어나자 마자 문밖을 나선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어디선가 들려올
    좋은 소식이나 마음속 깊이 소망하고 있는 어떤 기원이 있는 모양입니다.

    정해년 정월도 벌써 삼 주가 지났네요. 날짜가 너무 빨리 달아나지요?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달아나는 느낌이 아니라
    이제 그만 됐으니 잘 가거라 하고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루의 계획, 그 주간에 끝내야하는 모든 일들, 정월에 배우고 읽어야 할 책들...
    등등을 미루지 말고 그 때 그 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누구에 의해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조절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좋은
    분위기와 즐거움을 띄워주는 주체가 된다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배를 조금은
    가치있는 방향으로 노를 젓게 된다고 생각돼요.
    내게 기쁜 소식을 알려줄 까치를 기다릴게 아니라 내가 바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가 되어보자고 결심을 했지요.

    노환을 앓고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뵈는 나의 발길은 분명 반가운 까치일거예요.
    신장병과 투병하면서 외부 출입도 제대로 못하는 어려운 친구에게 '요즘은 어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이라도 넣어준다면 그것 역시 즐거운 까치 소리일거예요.

    새벽에 환청으로 들린 까치 울음소리는 정초에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너는 이웃에게 반가운 까치로 살고 있는가?'

    까치가 온다면

    정원수 흘러나온 물에 잡힌 살얼음
    부겐빌리아 꽃잎이 얼어붙던 날
    까치의 울음 소리 들었다.

    까치가 왔을리 만무한 열대인데
    이른 새벽에 까치걸음 듣고
    문밖을 나서다니.

    길다란 꽁지, 머리가 새카맣고
    초록빛으로 윤이나는 몸통에
    회백색 띠를 두른 까치는 어디 있나.

    맵씨좋은 까치의 모습 대신
    '한인1세 첫 대학총장 탄생'이라
    적힌 조간 신문이 다가온다.

    헛 들은 것은 아니었네.
    반갑고 기쁜 소식을 안고 온
    까치는 거기 우리 뜰에 있었네.

    글/조정희
    2007년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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