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생가를 찾아서

2005.07.18 09:43

조정희 조회 수:492 추천:30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세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위의 <서 시>를 쓴 민족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간도성
    화룡현 지신사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1941년까지 윤동주는 16편의 시와 한편의 산문을 썼다.
    삶이 갖는 무게와 인생의 좌표를 분명히 제시해주는 한편의 서정시다.
    지나간 날들을 되새겨보며 부끄럼없는 삶을 개척하도록 일깨워주는
    자아성찰의 맑은 거울이기도 하다.
    1942년 도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해서 1945년 2월 옥사할 때까지
    일본땅에서 <흰 그림자>등 5수를 더 남겼다.
    1943년 7월 교도에서 독립운동혐의로 특고형사에게 체포되어 하압
    경찰서유치장에 감금되었다. 교도지방재판소 제2형사부는 윤동주에게
    징역 2년을 언도하였다.
    1945년2월16일 오전3시36분, 윤동주는 복강형무소 안에서 생체실험
    대상으로 이름모를 주사를 맞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만
    운명하고 말았다.
    1945년 6월14일, 시인은 나서 자란 고향 용정 동산교회묘지에
    고요히 묻혔다.

    그의 생가는 1900년경에 그의 조부 윤하현선생이 지은 집으로서 기와를
    얹은 10간과 고간이 달린 조선족 전통구조로 된 집이었다.
    윤동주는 이 집에서 1917년 12월 30일 태어났으나 그가 은진 중학교에
    전학하자 그의 조부는 그 집을 팔아 다른 사람이 살다가 1981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1993년 4월 명동촌은 그 역사적의의와 유래를 고려하여 용정시정부에서
    관광점으로 지정하였다. 이에 지신향정부와 용정시 문련은 연변대학
    조선연구중심의 주선과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지원을 받고 국내외
    유지인사들의 정성에 힘입어 1994년 8월 역사적유물로서의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게 된 것이다. 위의 사진의 집도 복원된 윤동주 생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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