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님의 성전환

2009.05.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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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 신인상 당선 수필

1974 년 년말쯤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올 무렵 래디오만 틀면 징글 벨, 엔디 윌리암의 크리스마스 노래,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등 x-mas 케롤이 끊임 없이 울려퍼지고, 축복을 한아름씩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배달될 무렵, 하루는 많은 카-드중 한카-드의 발송인의 성함이 전연 기억에 없는 생소한 여자의 이름이었다.
이것 당신한테 온 모양인데 하면서 집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발송인의 주소와 이름을 세심히 살펴 보면서 봉투를 열었다. 그 속에는 예뿐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한장의 편지까지 동봉되어 있었고 그것은 집사람이 아닌 나에게 온 것이었다.

발송인은 작년말 까지 미시간에 있는 페리스 주립대학에서 전자학과 학과장을 역임 하였고, 금년초에 퇴직하여, 그간에 성전환을 하고 지금은 한 여자로서 만족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의 새로운 이름은 리네이 제인즈(성전환후 이름)이고, 마크 호시(성전환전 이름) 라는 남자는 이제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보내준 크리스마스 카-드도 고맙게 잘 받았다면서 우리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는 간단하지만 믿기 어려운 의외의 편지 내용이었다.

우리는 한순간 얼굴을 마주 보며 할말을 잃었다.
성전환을 했다니?
어찌 이럴수가?
가끔 신문에서나 봐 왔든, 그런일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 나다니, 그것도 우리가 잘알고 지내던 그 학과장님께서...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그의 부인도 참으로 친절하고 좋은분이었는데-.
그렇다면 그 부인은 어찌되었을까?  또한 그 아이들은?
끝 없는 의문표만이 우리들의 머리속을 채우는 것이었다.

나와 그 학과장과의 인연은 이러하였다.
1973 년 나는 여름 방학 동안 시카고의 한 대학 교직에 있으면서 발전적인 몸부림으로 다른 두 학교에 취직 원서를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카고에 소재한 학교에서 먼저 인터뷰 통보가 왔다. 이학교에서는 전년도에 한과목울 강사로서 가르친 경험이 있었기에 교수진 들과 다 잘 알고 있는 사이여서 인터뷰 후에 큰 걱정은 안하고 기대를 갖이고 대기중인데 얼마후에 미시간주 소도시에 위치한 한 주립 대학교에서도 인터뷰 통보가 왔다.

인터뷰차 학교에 도착 해서 학과장에게 연락하니 학교옆에 있는 호텔에 연락해놓았으니 첵크인 하고 6 시에 자기하고 만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다. 학과장하고 저녁식사를 마친후에 나의 이력서에 기제된 사항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현직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가르친 경험이 있느냐, IBM 회사 근무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일을 했느냐, 군에 있을때 받은 레이더 와 유도탄에 대한 교육이 대학 교육에 어떻게 기여 할수있었느냐, 하는 질문들을 하였다.

다음날, 정식 인터뷰에는 학장, 학과장, 그리고 6 명의 전자학 교수들, 모두 8 명이 참여했다.
인터뷰 도중 대개의 중요한 질문은 우리 전자학과를 앞으로 발전시킬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나의 의견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 당시에는 아직 개인 컴퓨터가 없었는데 내가 IBM 회사에서 근무할때 습득한 지식과 앞으로 컴퓨터 산업이 지향할 방향을 예로 들면서 컴퓨터 하-드 왜어에 대한 기초 코-스 들을 개설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아무 이의없이 모두가 좋은 아이디어 라고 동의했다.
또 한 교수가 질문을 했다. 만약 그 과목이 개설되면 누가 가르칠수 있느냐고 물었다. 얼마동안 아무도 대답을 안하니 학과장이 나에게 그 과목을 개발 하고 또 가르칠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할때 관련 과목을 택했었고 IBM 회사 근무시 쌓은 컴퓨터에 대한 경험도 있으며 만약 채용 된다면 전자과 서열이 제일 낮으니 내가 가르처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모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조금 성급한 한 교수가 새 교수님 환영 합니다 라고 고함을 친다. 학과장이 일어서면서 아직 8 명을 더 인터뷰 해야 된다고 한다. 나를 환영했던 그 교수는 OOPS! 하고 제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런 과정을 거처서 내가 그 학교에 취직이 되었다.
그 학과장께서 보수도 내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배려를 해주시고 과목 배정과 주간 스케줄도 편리하게 해주셨다.

학과가 약 3 주간쯤 진행되였을 무렵, 여름에 인터뷰를 해두었던 시카고에 있는 대학에서 학장으로부터 거기 전자과에 내가 채용 되었고 다음주 부터 학과가 시작된다고 통보가 왔다. 학장은 이렇게 늦게 연락하게 되어 미안하다면서 그간에 채용 과정에서 교수진과 행정부간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노라면서 그렇게 알고 빨리 오라고 독촉을 했다.

그당시에 집사람은 이리노이주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서 풀타임으로 병원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미시간으로 가게되면 그 주의 면허증을 새로 취득 해야되고 그것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시카고에 있는 학교로 오기로 결정을 하고 미시간쪽 학교의 학과장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선처를 구했다. 학과장은 우리들에게 미시간에 있기를 여러가지로 설득하였다. 그의 부인도 의무 분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주 의무과에 아는 분이 있다면서 간호사 시험때 최대한으로 돕겠다고 여러번 다짐했다. 그러나 집사람이 차근차근 우리 입장을 설명하니, 그러면 후임자가 결정될때까지 4 주간만 더 수업해 달라는 요청을 나에게 하고 우리를 그 학교로 부터 떠날수 있게 도와주었다. 우리들 한테는 아주 고마운 분이었다.

그 학교를 떠나온지 일년 조금 넘어 그해 성탄절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분에게 보냈었고, 그 답장으로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성전환에 대한 희보(?) 인지 비보인지 모를 편지를 보내왔든것이다.

나와 같이 근무할 그 당시에 학과장과 교수들 간에 어떤 쟁점이 야기 되였을때 토론 전개과정에 그의 과감한 추진력과 예리한 판단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 교수들간에 이견이 발생했을때 그의 조정 능력은 탁월 하였다

그 분의 큰 키와 거대한 체격에 스커트를 걸치고 브라우스를 입은 그의 여자로서의 용모가 내 눈에 익숙해질때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것 같다.
그런데 그당시 그의 음성은 꼭 여자의 음성 같았다.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역시 그랬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그 분이 선택했고 또 그분에게 다시 주어진 다른 생 이기에 새 삶에 빨리 적응이 되고 행복하고 강녕하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빈다.

최 상 준

시카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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