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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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오해

2009.03.19 10:08

최영숙 조회 수:1052 추천:280


  하늘 끝도 땅 끝도 보이지 않는, 그리고 일 년 내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유럽의 어느 황량한 마을에서 여인숙을 하는 모녀가 있었다.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겹겹이 싸인 들판과 산들 뿐인 그곳에서 웃음을 잃고 살아가는 모녀는, 그늘지고 비만 내리는 지긋지긋한 마을과 나라를 떠나, 해조가 발자국을 남기고, 태양이 바닷가 모래밭을 달군 뒤에 사람의 몸과 마음속까지도 불태워 버린다는 먼 나라로 가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곳을 떠나 밝고 뜨거운 바닷가에서 자유로이 살기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였다.

어느 날, 남자 한사람이 여인숙에 찾아 들었다. 어머니는 웬일인지 그 손님만큼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손님은 홀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이었고, 부자였으므로 완벽한 대상이었다. 주저하는 어머니를 향해 딸은 소리 지른다.

“마음이다 영혼이다 그런 것 귀찮게 끌고 다니는 것은 이제 진저리가 났어요. 여러 가지 구차한 문젯거리 같은 것은 태양빛이 다 불살라 줄게 아녜요? 그러니까 그런 땅에 한시 바삐 가고 싶어요. 내가 몸 붙일 곳은 이곳이 아니니까요.”

어머니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딸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숙박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나서 한 잔의 차를 대접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성공하면, 이제 그들은 꿈꾸던 나라를 향해 떠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찻잔 속에는 이미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

손님이 깊이 잠이 들자, 여인들은 서둘러 지갑을 훔쳐냈다. 그 와중에 손님의 여권이 침대 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모녀는 그를 강물에 던져 넣었다. 그 손님이 자신들에게 마지막 희생자가 된 것을 어느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여기면서 집에 돌아왔을 때, 하인이 죽은 손님의 여권을 건네주었다.

자신들의 손에 죽은 사람은 바로 20여 년 전에 말없이 나가버린 그 집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른다.
"어쨌든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분간 못한대서야 이 세상에서 역할은 끝난 거지. 나는 이제 자유를 잃었어. 지옥이 시작된 거야!"

그러나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냉정하게 말한다.
"인간이 인생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주어져 좋을 대로 살아온 사람에겐 죽음이란 아주 작은 거예요. 저는 이 대륙의 한 복판에 기도 못 펴고  회색 구름만 쳐다보면서 외로운 고아같이 내버려져 있었답니다. 어머니! 나를 홀로 두고 갈 생각은 아니시겠죠? 이제 어머니는 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오빠에게서 받을 것까지 가져가야 하나요?"

이십여 년의 이별 속에서도 언제나 가슴 속에 살아있던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잠들어 있는 강 밑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오빠에게 약이 든 찻잔을 가져다 준 여동생은 그 이튿날 찾아 온 올케에게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당신 남편을, 돈을 훔치기 위해 죽였어요. 그리고 그건 유감스럽게도 오해였지요. 하지만 그전에도 몇 사람의 여행자를 그런 식으로 죽였답니다."

남편의 죽음을 알고 난 그녀는 울부짖었다.
"당신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해서 꾸민 연극이었는데, 결국 아들인 그 사람을, 당신의 오빠인 그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죽이다니. 내 남편은 오로지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와 여동생을 우리가 살고 있던 따뜻한 나라로 모셔 갈 꿈으로 부풀어 찾아 왔는데, 자신이 누구라는 말도 못한 채 죽임을 당했군요!"

여동생은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차갑게 내뱉었다.
" 이 죄야말로 어머니와 나와를 영원히 결부시켜 주는 것으로 믿어왔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다른 누구를 내 편으로 삼을 수 있겠어요. 함께 살인 행위를 한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건 내 오산이었지요.  죄는 혼자만의 것이지요. 설령 천명이 달려들어 저질렀다 할지라도, 혼자 살고, 혼자 죽이고, 혼자 죽어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녀도 이미 어머니와 오빠가 가라앉아 있는 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것은 알베르 카뮈의 희곡“오해”의 줄거리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모녀가 살고 있는 마을처럼 황량하고 쓸쓸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도 그 모녀가 그랬던 것처럼, 늘 비가 내리는 마을을 떠나 먼 나라로 가고 싶은 절절한 꿈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정작 그리던 바닷가, 언제나 태양빛이 밝고 따뜻한 나라로 데려갈 사람이 나타났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늘 하던 죄의 습관대로, 죄를 합리화 하면서, 그를 잠재워 물로 던져 버리는 것은 또한 아닐지....
죄의 벼랑에 서있으면서도 끝까지 자기를 변호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인간 심리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지독한 에고의 모습이다.

그녀는 돈을 훔치기 위해 손님을 죽인 사실을,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죽음으로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었다는 독백으로 합리화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사랑도 빼앗겼다고 원망하면서 혼자 죽음의 길을 찾아간다.

우리는 살아온 햇수만큼 크리스마스와 고난 주간을 그리고 부활절을 지내왔다. 크리스마스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구실로 한껏 즐기며 부풀어 지내다가, 새해를 맞아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어느 새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이 찾아온다.

이 날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묵상하며 참회와 정결을 위해 무릎을 꿇고, 종려 주일이 지나고 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뒤 영문 밖에서 울던 베드로의 눈물 속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하고, 내 죄의 못으로 예수님을 못 박는다. 그 후 우리는 서둘러 부활절을 준비한다. 마치 고난과 죽음 같은 것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는 듯이.

토끼와 계란을 앞세우며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다시 황량하고 쓸쓸한 인생의 절기를 맞아 몸과 마음이 침울하고 무거워진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다가 다시 그 분이 탄생하는 크리스마스를, 캐럴과 선물과 카드를 들고 환영하며 맞게 되는 것이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를 그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오신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록 몰이해와 오해로 강물에 수장시키는 잘못을 거듭한다 해도, 부활로 여전히 우리 앞에 오시는 그 분.

우리 인생의 절기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어쩌면 그 분의 탄생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그 분의 죽음에 매달려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절기에 맞추어 탄생하고 죽고 부활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부활하셔서 늘 살아계시는 그분을 이번 부활절에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