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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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현령비현령 2부 (중편 소설)

2009.07.20 11:54

최영숙 조회 수:1415 추천:280


  나는 그 날 밤, 정희언니 방에 들르지 않았다.

언니가 기다릴 줄은 알았지만 김성남씨와 헤어지고 나서, 무슨 영문인지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실연이라도 당한 듯,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슬픔이 치밀어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마저 허정거려, 얄팍하게 내린 눈길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잔뜩 흐려 별도 안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집 앞에 도달했을 때,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부우우 울렸다.

집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대문은 열리질 않았다. 그렇다고 대문을 걷어차거나 두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건 분명히 어머니가 내건 벌이었으므로.

일요일에 한번 교회에 나가는 정도는 그렇다 쳐도 그 일로 인해 밤늦게 돌아다니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강경한 태도를 벌써 몇 번씩이나 무시한 끝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나는 그날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은 분노하고 짜증나고 답답하고 그래서 혼자 엄청 서럽기도 하면서 춥고 외로웠다.

만일 그곳이 이불 속이었거나 빈방이었거나, 깊은 산속에 혼자 있는 것이었다면 엉엉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던 나는 기껏해야 녹슨 대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이었다.

가로등 때문에 더욱 캄캄해 보이는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하늘 아래에는 전깃줄이 지나가고 그 뒤로는 목욕탕의 굴뚝이 솟아 있었다.
그쯤 어디에선가 불이 켜있던 창문에서 마악 불이 꺼지는 게 보였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아니다, 무엇을 하고 살게 될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내 꿈은 무엇이었던가. 꿈은 꾸고 살기는 했던 것일까.... 그런데 정말 꿈이 필요하기는 한 걸까....    
  
나는 우선 구두와 손가방을 블록 울타리 위에 얹어놓은 다음, 장갑 낀 손으로 울타리를 잡고 힘을 다해 기어 올라갔다. 제법 높은 울타리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죽을힘을 다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일에 죽을힘을 다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나는 울타리를 넘어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그 눌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울타리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세 개가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손바닥이 벗어지도록 기어 올라가 그것을 넘고 싶었다. 넘어야 했다. 이를 악물고 힘을 다해 기어오르자 몸이 훌쩍 울타리 위에 얹혀졌다. 벽돌 모서리에 하복부가 눌리면서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별것도 아니네,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 킬킬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와 정희언니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쳐진 것을 느꼈다. 서먹하고 부자연스러운 그 무엇인가가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딱히 집어서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정희언니가 의도적으로 나를 향해 문을 굳게 닫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 후, 김성남씨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나는 진희언니에게 묻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날 필요로 했던 일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서로 그 일에 대해서 묵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자매회가 열린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이십여 명의 자매들이 모였다. 여느 때와 달리 자매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고, 어딘지 수런거리는 분위기였다.
자매회가 시작되자 처음 보는 낯선 자매가 진희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해요?”
“다른 조에서는 단합 했다는데....”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긴장이 둘러앉은 자매들 사이에 무겁게 내려 앉아갔다. 진희언니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성경을 펼쳤다.

“로마서 십삼 장입니다. 일절에서 삼절까지요....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진희언니가 성경을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 일로 먼저 데이비스 선교사님과 상담을 했어요.. 우선 저희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시면서 이 문제를 놓고 미국본부에 연락해서 중보기도 요청을 하겠다고 하셨어요.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일로 여러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는군요....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일이지요.....어떻든 저는 이번 파업에 동의하지 않고 출근하기로 개인적인 결정을 내렸어요. 자매님들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고 각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근숙언니가 큰소리로 말을 자르고 나섰다.

“언니!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이 말씀이요...
네에, 하나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예요, 우리가 알고 믿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는 마찬가지로 선하고 좋은 것이어야 해요.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되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것에 쓰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 사용되는 권세에 대해서는 크리스천들이야말로 타협하지 말고, 대항해야만 하는 게 성서적이라고 전 믿습니다.
어떤 모양이든 일단 권세를 받은 사람들은 위임 받은 권세를 잘 사용해서 그 위에 있는 권세에,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함으로 그 분에게 복종하는 것, 그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라고 생각하고, 또 저는 그게 이 말씀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근숙언니의 말이 끝나자 더욱 팽팽해진 기운을 가르며 성자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해야지요, 어떻든 최종적으로 그 사람들을 심판하실 분은 주님이시니까요.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왔는데, 이제 오시면 옳고 그른 것을 다 드러내서 판단하시겠지요.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 방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싸우고 미워하고...결국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저는 이건 주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자매들은 공장에서 대부분 짜깁기 일을 하고 있었다. 원단이 나오면 그것을 검사해서 올이 빠지거나 잘못 된 부분을 교정하는 일인데, 형광등 불빛 위에서 오랫동안 실오라기를 들여다봐야하는 자매들은 안색만큼이나 시력이 나빴다.

진희언니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다시 말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있어요.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인내할 줄 알아야 해요. 로마의 네로 황제 시대에 살았던 성도들을 생각해 봐요, 그 분들이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 결국 박해를 했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땠는지, 로마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었는지, 우리들은 잘 알지 않아요.

지금은 우리가 일한 만큼 보수도 받지 못하고, 이교대로 열 두 시간, 잔업까지 하다보면 보통 열다섯 시간을 일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우리들이나 또 우리들 뒤에 오는 사람들도, 지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여덟 시간 일하고 일한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아서 휴가도 즐기고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예요. 우리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다말고 쯧쯧 혀를 차댔다.

“지금이 어느 땐데 이 짓들이란 말이야! 국가가 비상사태라고, 국가 안보를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선포 안했나.
대통령이 오죽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육이오 전쟁의 전야를 회상하게 한다고 까지 했겠나.
얘네들이 다 빨갱이들 사주를 받아서 이 모양이라니까. 다들 살기 힘든데 뭐, 공장에서 일하는 지네들만 임금을 인상해, 거기다가 휴가도 달라, 여덟 시간만 일하겠다. 그건 말 안 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저절로 다 될 텐데 그걸 못 기다려!”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물었다.
“어디서요?”
“....여기가 어디냐, 어엉... 영등포구나. 그나저나 여기 원성모방은 괜찮은가 모르겠다. 방직공장들이 다들 들썩이나 보던데.”

삼일절 행사가 지난 지 열흘 쯤 되었을 때였다.

“이런 불쌍한 인간이 있나! 전쟁 끝난 줄도 모르고, 글쎄 삼십년을 밀림 속에 숨어 살았단 말이야? 쯧쯧!”

아버지가 방바닥에서 신문을 급히 집어 들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4년 겨울, 필리핀 마닐라 근처의 작은 섬 루뱅에 파견되었던 일본군 육군 소위 오노다 히로가 있었다.

이백 오십 명의 병사를 이끄는 지휘관인 오노다 소위는 사단장 요코야마 시즈오의 명령에 따라 미군의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유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항복과 옥쇄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퇴각한 사단장이 남기고 간 말,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버티던 그의 부대는 43명을 남기고 모두 전사하게 된다.

40명의 병사들은 삐라 전단을 읽고 일본의 항복 사실을 알게 된 나머지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간다. 오노다 소위는 끝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두 명의 부하들과 유격전을 계속하다가, 남은 부하들이 사망하고 난 후에는 원주민을 상대로 단신유격전을 수행한다.

그동안에 부하들과 친구들, 형제들이 찾아가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오노다 소위는 끝내 일본이 항복했다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스즈끼 노리오라는 일본 청년에 의해 설득되었고, 직속상관이었던 다니구치가 루뱅 섬에 직접 가서 오노다 소위에게 투항명령서를 전달하는 의식을 치름으로써 오노다의 전쟁은 끝이 날 수 있었다.

삼십 년 간을 정글에서 보낸 그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었던 것은 임무의 완수뿐이었노라고, 그리고 젊은 시절, 명령에 따라 심신을 바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행복하다고 오노다 소위는 말했다.

“그 사람이 뭘 불쌍해요? 행복했다는데. ”
“얘 말하는 것 좀 봐, 아 그래, 진실을 모르고 그렇게 속아 산 인생이 얼마나 불쌍하냐?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유격전을 계속 했다니...하여간  일본 놈들 지독하다 지독해. 항복하지 말란다고 끝까지 그런 놈이나, 그러라고 명령하고 간 놈이나. 이제 와서 그걸 또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일본 놈들이나.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나 원 참! 국민을 소모품으로 생각한 것들이 이제는 그 소모품이 살아왔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받드는군....허긴 지가 행복했다면 된 거지...속아 살았건, 말았건 말이야.”

  나는 어느 때고 신문의 일면에 실린 커다란 제목에 큰 비중을 둔 적이 없었다. 그 제목들은 언제나 아버지 입을 통해서 설명되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들 앞에는 강약이 조절되어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아무 것도 염려할 거 없다는 말로 대부분 마무리 되는 소식들은 우리와는 무관한 어른들 세계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 뿐이었다. 그런데 오노다 소위의 사건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설명되고 여과가 되었어도 내 안에서는 여전한 의문이 일어났다.

오노다 소위가 진실을 알지 못했던 것은 진실을 향해 귀를 막고 눈을 감았던 그의 잘못이 아니었을까. 일본이 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분명히 가족과 친구들이 가서 진실을 외쳤다는데.....그는 끝까지 자신이 믿고 싶어 했던 사실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지....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없어지는 게 아닌데...

저 쪽 세상 어딘가에 한 집단의 사람들이 있다. 벽돌처럼 굳세고, 무엇에도 깨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지만 무말랭이처럼 건조한 집단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 그들에게, 일 더하기 일은 항상 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가 잘못되고, 그래서 죄가 되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그들과 다른 사람들은, 반대인 사람들은,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된다는 질서를 깨었다는 의미에서 크게 어리석은 죄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이 무슨 한숨이냐?”
아버지가 신문을 덮고 눈을 치뜨며 나에게 말했다.
“글쎄요, 봄이라 그런가, 세상일 때문인가 가슴이.... 답답하네요.”
“뭐어? 너 혹시....아서라, 넌 당최 데모니 뭐니 하는 덴 기웃거리지도 말아라, 너만 잡혀가는 줄 알아? 그러다간 내 목도 달아나, 알았어?”  
    
아버지는 군청 공무원이었다.
데모를 하기는커녕 데모하는 사람들조차 본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는 축제가 취소되고 지도교수 없이는 서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공고문이 나붙었지만 나는 그런 것들 때문에 불편한 일이 전혀 없었다.

학교생활은 지루했다. 차라리 교내에서 시위라도 발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서울에서 일어나는 데모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내려와야 하는 우리 학교 울타리를 영 넘어오지 못했다.

학생회장이 경찰서에 미리 끌려가 단단히 교육을 받고 왔다는 둥, 여러 가지 일로 뒤숭숭 하기는 했어도 우리들은 얌전히 교련 교육에 순응하여 4킬로미터 행군을 하고, 사열을 위한 제식 훈련을 하느라고 운동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써가며 서울에서 불어오는 소식과는 담을 쌓은 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내 고민은 그런 곳에 있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 놓고 간 유물 가운데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경대였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또 아끼는 물건은 벽거울이었다.

할머니 시대에는 그런 종류의 거울을 누구나 한 개쯤은 집안에 걸어 놓았던 모양이다. 합성수지 거울 테에 금분 칠을 한 전신용 거울인데, 거울 아래쪽에는 호수 그림이 있다.

호수 위에는 백조가  두 마리 떠있고, 호숫가에는 초록색 창문이 달려 있는 하얀 집이 있다. 또 호숫가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빨간 꽃들이 난초 잎사귀 속에 피어 있다. 도대체 이 장소는 어디일까....어디에서고 본 적이 없는 이 장소는 어쩌면 외국의 그림이나 사진을 복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 거울은 애석하게도 이미 뒷면의 수은이 산화 되어 군데군데 검게 변해있다. 시간이 갈수록 하얀 집의 벽면이 칙칙하게 변하고, 무섭게 파랗던 물에도 점점이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잖아 거울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말 운명이라고 말하듯이 산화 얼룩은, 거울의 양쪽 옆과 아래 위 가장자리에서 시작해 차츰차츰 가운데로 퍼져 나갔다.
내가 그 거울을 아끼는 이유는 할머니를 추억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들여다보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어 보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이 최대한 품을 수 있는 넓이와 깊이 때문이었다.
거울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속을 들여다본다.
천정의 높이만큼, 딱 그만큼 정직하게 거울 속은 깊다.
방안의 넓이만큼 거울 안이 넓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 안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나는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폭탄을 피해, 전쟁을 피해, 죽음을 피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늘 두려웠던 나에게, 거울 속의 공간은 방공호였고 대피소였다.

무엇엔지 부끄럽고 무엇엔지 불편하고 무엇엔지 속상하던 날에도 나는 그 거울 속으로 숨어 들어가곤 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집은 작아도 땅 밑을 깊게 파서 어떤 폭탄이 날아오더라도 피해를 당하지 않을 그런 방공호를 팔 거라는 오래 된 소망을 갖고 있었다.

소망이 자라자, 거울 속 깊이만한 장소라면 원자 폭탄이 터진다 해도 안전할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까지 했다.
  
걸핏하면, 따발총을 갈겨대며 달려오는 북한군과 중공군 꿈을 꾸었다. 혼자 도망치다가 문득 부모님과 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까마득한 절망 속에서 울다가 가위에 눌리는 날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잠드는 일이 두렵기조차 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꿈속에서 전쟁을 겪으며, 그 전쟁 속에서 나는 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비현실의 공간이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두려워  했던 것은 세끼 밥을 먹고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곧 이 살과 피가 공중에 흩뿌려지고 놀란 내 영혼이 어리둥절해서 없어진 내 육신을 찾아 헤매는,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이를 낳았다. 시장은 언제나 벅적 거리고,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시장 바닥에서 십 원 한 장 때문에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했다.

일요일 아침, 빗자루를 들고 마을 청소에 나설 때는 물론, 쓰레기차가 올 때도 골목을 뒤흔들며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던 틈새를 비집고, 김세환은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사랑해 사랑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노래하고...

죤 덴버는 어깨 위의 햇살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만일 너에게 줄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만일 너를 위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 만일 내가 너에게 들려 줄 노래가 있다면... 만일 너를 위해 빌어 줄 소원이 있다면, 나는 그 햇살이 항상 당신에게 머물기를 빌겠노라고 내내 속삭였고,

수출 목표 45억 달러는 물론이고 오히려 2억 달러를 추가 달성할 예정이라고 대한 뉴스에서는 연신 말하고 있어도, 여전히 햇살 아래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무작정 상경 소녀들이 사창가로 팔려갔다가 탈출했다는 기사는 끊이지 않고....

우리 집 건넌방에 잠깐 세 들어 살았던 하이칼라 아가씨가, 사랑, 사랑 타령하다가 남자다운 남자 만났다고 신나서 시집을 갔는데, 너무 남자다운 놈을 만났는지, 매일이다시피 얻어맞고 산다고 하더니, 피멍이 든 얼굴로 찾아와 엉엉 울더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통금시간에 담장 넘어 다니는 딸년을 두어서 그런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나를 쏘아보며 얘기하는 동안,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는 가고 또 하루가 오고 있었다.

자매회를 마치고 포목점이 늘어선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저만큼 앞, 길 한편에 김성남씨가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전봇대에 달려 있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작달만한 키와 다부진 몸매의 그를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보다도 그가 먼저 나를 알아 본 모양이었다. 그가 성큼,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신자매님, 안녕하세요?”
“어머, 왜 여기 계셔요? 교회로 들어오지 그러셨어요?”
“아니요....저어 사실은 자매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를...요?”

밤 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포목점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늘 그러듯이  골목 끝에 있는 남 갑사 아줌마 가게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골목 어디에선가 가게 문을 닫느라고 처더덕, 나무문짝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 심부름을 나온 아이가 담배 한 갑을 들고 후다닥 골목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김성남씨가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말없이 앞장 서 걸었다.

“자매들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아, 네에, 저도 그 얘기이긴 합니다만....그냥 자매님, 집에 가는 길까지 걸으면서 얘기 좀...”
“그러세요.... 교회 자매들도 의견이 나누어진 것 같던데요.”

“그렇지요? 쉽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같이 손잡을 줄 알았던 동료들이 다 얼굴을 돌려요. 첨에는 앞장 설 것 같이 거품을 물던 친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 소리들입니다.

임금 인상도 처음 얘기하던 이십오 퍼센트에서 이십 퍼센트로 낮추기로 했어요. 임의 적립금을 돌린다 해도 처음부터 이십오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많아서요. 잔업 수당 인상이나 유급 휴가 문제도 같이 들고 나오긴 했지만 다 통과 되리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보다도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등 돌리는 친구들이지요. 굴뚝같이 믿었던 우리 작업반 동료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아무래도 공장 측 사람들의 회유에 넘어가는 모양입니다. 저한테도 손이 뻗쳐오긴 했지만, 제일 믿었던 친구는 노조 위원장으로 밀어 준다는 그 말에 넘어간 모양입니다. 갑자기 저를 만나려 들지를 않더군요.

사실, 노조 일을 보게 되면 현장 일을 안 해도 되고 활동 자금도 많이 쓸 수 있게 되니까....뿌리치기 힘들지요. 그저 뚝심으로 밀고 나가다보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겠지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차암, 이렇습니다.”

  몇 천 년 전이었을까. 비가 내리는 것을 평생 못 보았던 사람들 앞에 우뚝 서있던 고독한 인물. 그들의 조상들 중 누구라도 비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고 하자. 그때는 아마 땅속에서 솟아 오른 습기와 그 습기가 만들어낸 안개 같은 것들이 땅을 적셔주는 덕분에 풀도 자라고 나무도 자랐을 지도 모를 테니까.  

어느 날, 그 고독한 사람이 인간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만이 믿고 있던 진실. 하늘에서 물이 쏟아질 거라고, 그리고 그 물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릴 거라는 진실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람들은 태양이 떠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웃었겠지. 비가 내린다는 일이 진실이고 꼭 일어날 일이라고 믿는 고독한 사람은, 자신들이 듣고 보고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하늘이 터져 물이 쏟아져 내릴 거라는 말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나는 몇 천 년 전, 고독했던 그 사람을 맘속에 담은 채 말을 꺼냈다.
“저어, 말이지요, 비도 잘 내리지 않는 뜨거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추운 나라에서 온 사람이, 내가 살던 나라에는 겨울에 눈이 온다고 말했어요.

하늘에서 차고 하얀 눈송이가 펄펄 내려온다고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았어요.

다시 추운 나라에서 온 그 사람이 말했어요. 지붕 위의 눈이 녹아내리면서 고드름이 열린다고. 사람들은 고드름은 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추운 나라에서 온 그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았어요.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요. 이 사람들을 눈이 오는 나라로 데려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눈도, 고드름도 사실은 다 존재하고 있지만,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지한 건 아니었어요.

문제라면 눈이 있는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이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것이었지요. 그건 그 사람의 터무니없는 고뇌였어요.

세상은 눈이 내리는 나라도 있고 비만 내리는 나라, 비도 눈도 없는 나라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나라에서 비만 보고 아니면 비도 눈도 못보고 살아가는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김성남씨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느 세상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것일까.  

“그래서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아예 둘 다 안 오거나, 거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든지, 아니면 아주 많은 그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겠지요. 평생이 걸리더라도.... 그럴 자신과 소신이 없다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눈을 몰라서 세상이 끝난다는 얘기가 아니라, 결국 좀 더 잘 먹고 살자는 얘기에서 멈출 거라면.... 고민하지 마세요. 너무 간단한 일인데요, 뭘.”

내가 갖고 있는 자존심, 그것은 누구보다도 고상하게 순수하게 세상에 맞서 대항하고 있다고 믿는 나의 유일한 무기였다. 그래서 사고하는 일, 그 사유를 통해 확장된 영역이 높고 넓어서 나 혼자 들어앉아 즐기기에도 충분했다고 믿었다.
내 사유는 이미 고적하고 적막한 어느 곳에 도달해 있어서 누구라도 그곳까지 올라오지는 못할 거라는 자존감만이 나를 지켜 주던 시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던 때였으니까. 사람들은 그 시절을 젊음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이를테면 충격을 주었다든지, 상처를 입혔다든지, 그런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사고를 했어야 됐다. 그것이 비록 잠언을 이백 번이나 읽은 남자 앞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김성남씨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어두운 하늘을 향해 쉬지 않고 웃어댔다. 나는 순간 그가 마음 한쪽을 다쳤다는 것을 감지했다.

“맞아요, 맞아! 신자매 말이 맞아요. 그동안 무슨 위대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뛰어다녔지만 결국, 이 일은 더 기초적인 데서부터 시작했어야 했어요.

공돌이나 공순이들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민중들을 깨우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그렇지만 어떡합니까....그러기에는 이미 우리가 너무 많이 앞질러 왔거든요. 아마 우리는 앞으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만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힐난이었다.

“자매님, 맞아요. 그것이 개인적인 고뇌일지도....어떻든 그건 자매 말대로, 믿든 안 믿든 그냥 존재하는 거니까요.....설명 못해도, 보여 주지 못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김성남씨는 몸을 돌렸다. 나는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사하면서도 고독하고 적막한, 그래서 쓸쓸한 이른 봄날의 밤공기가 그의 모습을 곧 가려 버렸다. 나는 앞으로 사유와 관계되는 한, 적어도 그런 것들과 내 생활 사이에 생길 간격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맘먹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갔다. 자매회에는 진희언니와 성자 언니만이 나와 있었다.
“다른 자매들은 파업에 들어갔어.”
성자 언니가 힘없이 말했다.  
“그럼 정희 언니도요?”

진희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자언니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근숙이가 워낙 강경하니까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렇다고 여기도 안 나오는 건, 왜 그래요?”

성자언니가 진희 언니를 힐끗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진희 언니하고 싸우다시피 했거든.... 언니는 어떻게 하든 막아보려고 했어. 며칠만 일 안해도 다들 살기 힘든데.... 아무래도 회사에서 강하게 나갈 것 같은가 봐. 그래서 언니가 결사적으로 막았지....”

진희 언니가 말을 막으려는 듯이 성경을 펼쳤다.
“기도하자고, 이제는 방법이 없어요.”
나는 진희 언니의 기도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정희 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정희 언니가 빈대떡 집에서 뚱딴지 같이 울음을 터트린 이후로 나는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녀가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는 것 같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우리 사이가 멀어졌는지....되돌린다 해도 앞으로 나는 언니와 함께 그 작은 방에서 종이 모자이크를 하면서 깔깔대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진희 언니가 염려하던 대로 파업에 가담했던 자매들 모두가 공장에서 해고당했다.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지방에 가서 직장을 구해야만 했으나, 때마침 공장에서 짜깁기 하청을 받은 곳이 있어, 그곳에서 기술자들인 자매들을 고용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자매들은 전에 공장에서 받던 보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창고를 개조한 건물 안에서 하루 종일 형광등 불빛 아래에 엎드려 일하다가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자매들의 얼굴에서는 차츰차츰 웃음이 사라져갔다.

마침 안식년을 얻어 미국으로 돌아간 데이비스 선교사의 뒤를 이어 한국에 나온  젊은 선교사가, 기타를 메고 나와 예배 전에 영어 찬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말로 찬양을 부르던 데이비스 선교사와는 달리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만 찬양을 하는 젊은 선교사로 인해 자매들은 부담을 갖기 시작했고, 교회에는 오히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나오는 청년들로 하나 둘 채워져 갔다.

젊은 선교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청년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에서 공장의 자매들이 슬금슬금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조만간, 자매회도 문을 닫을 판이었다.

해고자 복직 투쟁이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곧 바로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긴급조치가 발표되었고, 그 여파로 온 국민이 말조심, 몸조심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참인데다, 모든 시위의 배후에는 내란 음모를 꾀하는 불순세력의 조종이 있다는 원칙 아래 검거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였으므로 복직 투쟁은 거의 불가능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복직 운동에 기대를 하고 엎드려 일하던 자매들이, 부산으로 대전으로 영등포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하청업자가 운영하는 짜깁기 공장에 나가 일하는 정희 언니가 근숙 언니를 따라 떠나게 될까봐 염려하면서도 나는 정희 언니 방을 찾아가지 않았다.

교회에서 가끔 보는 것 외에는 달리 만나지 못했지만 내 신경은 온통 정희 언니의 거취에 가 있었다. 언니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온 날, 화사하고 예뻐서 막 언니 팔을 잡고 언니 오늘 정말 예쁘다, 하고 말을 할 뻔 했는데, 결국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