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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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현령비현령 1부 (중편 소설)

2009.07.20 12:12

최영숙 조회 수:1316 추천:293

                 이현령 비현령

                                   
   나는 대학시험에서 떨어졌다.
누구는, 내가 그 대학 이름을 대자마자 그냥 원서만 내도 붙는 덴데 거길 떨어졌어? 하고 비아냥거리던 모 사범대학 국문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어도 국어 선생이 되고 싶어서 지원한 사람이 이현령비현령의 뜻도 몰랐으니, 어쩌면 떨어지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같은 국문과를 지원한, 황지에서 왔다는 여자애에게, 시험이 끝나자마자 이현령비현령이 무슨 뜻인 줄 아니? 하고 물었을 때, 그 아이 눈에 피어오르던 안도의 꽃과 단내가 풍기던 숨결. 나는 그 경쟁자에게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 후로 수치와 서글픔과 그리고 분노가 나를 덮칠 때마다, 가장자리가 닳은 검정색 코트와 기름하던 얼굴, 동정심을 가득 담은 얼굴로 낮고 눅눅하게 말하던 그 아이가 같이 얹혀서 떠올랐던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이, 매달 현, 방울 령, 코비, 매달 현 방울령, 그거 춘향전에 나오잖아....”

그 아이가 귀이, 매달 현, 방울 령을 힘주어 말할 때, 내 귀에는 그 단어가 귀걸이 딸랑, 코걸이 딸랑, 이현령비현령 딸랑딸랑 소리로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적어도 내가 배운 교과서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고사 성어였다.

귀걸이와 코걸이가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불길한 예고를 했던 대로, 누구는 모의고사보다 쉽다고 말하던 예비고사를 버겁게 통과한 보람도 없이 나는 본고사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낭청 대답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신관의 마음만 맞추더라.
신관이 분부하되,
"네 본 읍(本邑) 기생으로 도임 초(到任初)에 현신(現身) 아니하기를 잘했느냐?"
춘향이 아뢰되,
"소녀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대비정속 하온 고로 대령치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춘향가에서 찾아 낸 이 구절을 곱씹고 곱씹어댔다. 마치 이현령비현령 문제 한 개로 대학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이 바보야, 고까짓 것도 몰랐어, 하면서 거울 속에 대칭으로 서있는 나에게 연필로 온 얼굴을 콕콕 찔러대며 방구석에만 박혀 있었다.

“어차피 잘 됐다. 이젠 미련 없지?”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은행에 취직자리를 알아보겠다는 아버지의 통보를 받자마자, 나는 경기도와 충청도 경계지역에 있는 전문대를 내 발로 찾아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가정과를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에 서둘러 도망치듯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대통령 작은 딸, 그 애 때문이래.”
“왜?”
“경기여고에 들어갈 실력이 안돼서 급하게 법을 바꿨다더라.”
“설마.....”

경부선이 관통하는 소읍의 유일한 여자 중학교, 사방 십 여리에서 모여 온 아이들이 읍내외의 바깥세상이라고는 그다지 나가 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사십 여분 동안 완행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수원에서 화춘옥 냉면을 먹고 왔다는 아이의 자랑을 부러운 듯이 듣고 앉아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그 소문은 우리들에게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 사실이 우리들 미래의 삶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 감을 잡지도 못했던 것이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기도 전에, 대통령의 작은 딸과 같은 해에 태어난 우리 말띠 아이들에게 설마 했던 그 일이 정말 일어났다.

본교 진학이란 말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해에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 우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상업학교인 본교로 진학하든지 아니면 타 도시로 나갈 경우에도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게 되어, 사실상 지방에서 상급 도시로의 인문계 진학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경부선이 왜액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철길 옆, 학교의 향나무 울타리를 지나올 때, 냇가의 미루나무 위로 널리 퍼져 나가던 보라색 노을을 기억하고 있다.

노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 모교인 여상으로 진학을 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날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겨우 한 아이만 수원의 간호고로 빠져 나간다고 하고 나머지 진학 희망자들은 모두 모교 진학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쓸쓸한 저녁 무렵, 나는 그 노을 아래 서서, 웃자란다고 순을 질러버린 들깨모종처럼, 그렇게 모가지가 잘린 기분으로 괴물처럼 빽빽거리며 달려오는 열차를 노려보았다.

오산 역쯤은 그냥 통과해 버리는 새마을호, 그 무례하고 도도한 새마을호의 식당 칸, 그곳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남자들이 흘낏 밖을 내다보는 순간, 건널목에서 기차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서있던 나는 어금니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배우는 중요과목의 교과서는 모두 실업계 고등학교용으로 출판된 것들이었다.
책표지마다 어김없이 인쇄 되어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용, 그 글자는 마치, 너희들은 이것으로 학창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라는 판결문처럼 내 목을 철커덕 잡아매었던 것이다.

국, 영, 수 주요과목은 일주일에 두 번씩, 그나마 간소화된 교과서로 공부하면서 얻은 시간들은 상업부기와 타자, 주산 등에 할애되었다.

나는 손목이 끊어지도록 타자연습을 하고 눈알이 댕글댕글해지도록 주판을 굴렸다. 화물차가 지나가는 철길 옆에 서서  차량마다 적혀 있는 다섯 자리수를 머릿속에 주판을 집어넣고 암산하는 훈련을 쉬지 않고 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들의 가장 큰 희망은 보너스를 많이 준다는 외환은행에 취직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은행에 들어가려면 돈을 셀 때도 부채꼴로 편 다음 딱 딱, 다섯 장씩 집어가면서 셀 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들은 종이를 잘라 그렇게 돈을 세는 연습도 했다. 그래 그런지 학교는 마치 은행직원 양성소 같았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음식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 전갈, 개미, 박쥐날개, 딱정벌레, 원숭이 골, 뱀 껍질, 매미, 다람쥐나 족제비, 애벌레를 조리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것들을 튀겨 먹든가 날로 먹든가 끓여 먹든가 쪄먹든가, 나름대로의 요리 방법을 재료에 따라 다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 음식을 먹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으며, 또 사람들이 먹는 것들은 모두 그만한 맛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그런 것처럼 도저히 적성에 안 맞을 것 같은 일들도 막상 부딪쳐보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가 나중에는 재미까지 느끼게 되는 모양이었다. 주판을 올리고 내리고,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사람이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들은 닥치면 누구나 다 해낼 수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육촌오빠의 국어교과서를 들쳐보다가 기미년 독립선언문을 발견하고 놀랐던 일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문구가 너무 많았다. 상업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첫 번째 부딪친 다른 세상의 벽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는 독립선언문이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는 독립선언문이 전달해 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보다도 그것을 배우게 될 내 또래 아이들의 풍요해질 지식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로서의 불평등한 불안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신문이라고는 이 세상에 한국일보 하나만 있는 줄 알았다. 한국일보에서 말하는 대로 나라가 돌아가고 한국일보가 보여주는 창문으로만 세상을 보면서, 그리고 그 창을 통해서 나라밖을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온 세상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자전하고 공전하는 줄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라디오 방송은 KBS만이 공정보도를 하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사들이는 건전한 잡지는 주부생활, 선거 때는 무조건 황소 공화당을 찍어야 하고, 기찻길은 모두 경부선과 연결되어 있는 줄로 만 알고 자란 나에게, 대통령도 당연히 한사람뿐이었다.

아! 세상이 집 밖에도 있네! 하고 깨달았던 시절부터 십육 년 동안, 내게 있어 대통령은 오직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짜아식들! 이런 놈들은 전부 이북으로 보내 버려야 돼!”

아버지 말은, 데모하는 놈들은 다 이북으로 보내야 된다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육 개월만 잡아놓으라고 해 봐, 자유가 뭔지 주체사상이 뭔지 마르크스 레닌이 어떻고 계급투쟁이 어떤 건지 뜨거운 맛을 좀 보여주는 게 상책이라는 거였다.

삼선 개헌이 통과된 그즈음, 아버지가 방바닥에 펼쳐놓은 신문의 일면을 검지로 두드리며 자주 하는 말이었다.

“아니, 그럼 이 난국을 누가 끌고 나가란 말이냐구, 빨갱이 김대중이 더러 하라구?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한다고 공사하는 길바닥에 드러눕던 인간 아니냐, 그렇게 안목이 짧은 사람을....

쯧쯧, 그것뿐이야, 안성인가 어디서 황소 한 마리가 미쳐 날뛰는 걸 사람들이 어떻게 저어 못하니까, 지서 순경이 와가지고 총으로 쏴 죽였다 이거야, 그래, 그 신문 기사를 보고 김대중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천도가 무심치 않다나, 황소 공화당이 미쳐서 삼선 개헌하니까 미물 짐승인 황소까지 같이 미쳐서 주인한테 달려든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이말 이야, 그게, 그게, 비유나 되는 말이냐구, 유치하기는....

그런 수준이 무슨 대통령감이란 말이야, 좀 생각들이 있어야지....지금 미군을 이만명이나 감축시켰는데, 거기다가 미국은 중공하고 가까워지고 있고, 닉슨 대통령이 주은래를 만나고 모택동이를 만나다니....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거 닉슨 독트린이란 게 말이야, 사실 알고 보면 느이 나라는 느이들이, 느이들 돈으로 지켜라, 우리 미국은 좀 빠지겠다, 그런 얘기라니까. 그렇든 아니든  우리나란 우리가 지켜야지, 그래서 학생들을 학교에서 군사 훈련시키는 거구만, 그걸 가지고 나라가 뭘 잘못한다고 데모 짓들이야? 지네들 보고 대포를 쏘라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라는 것도 아니잖어, 쯧쯧! 아, 이북을 봐라, 아예 유치원 탁아소에서부터 군사훈련 시키고 있는데, 이렇게 집안 굿하는 사이에 걔네들 쳐들어오면 우리는 사흘 안에 결딴난다.”

“그럼 우린 어떡해? 아버지!”
“다 같이 죽는 거지, 별수 있어....”
“남쪽으로 이사 가면 안 돼?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데로?”

“얘가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거기라고 안전 할 줄 아냐? 옛날이야 피난이라도 갔지만 이제는 그것도 소용없다니까. 쳐내려 오기만 하면 남한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놈들이 게릴라전을 일으킬 텐데 가긴 어딜 가, 머리 위에서 폭탄은 터지지, 아서라,가만히 앉아 있다 죽는 게 낫지... 아, 근데 죽으면 너만 죽냐, 다 같이 죽는 건데....”

다 같이 죽으면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단 말인지, 아버지의 논조는 사뭇 그랬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라가 또 한 번 뒤집어지는 일을 제일 두려워했고 그 일로 인해 무엇보다도 북쪽에서 다시 쳐 내려오는 일을 맞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뿐이었다.

국민 된 도리로 간첩 하나라도 잡아내야 하건만, 웬만한 월급쟁이들의 일 년치 봉급을 상금으로 준다는데도 그렇게 흔하다는 간첩하나 잡아내지 못해서 나라에 미안하기까지 한,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는 집모양도 비슷하고, 말투도 비슷하고, 비슷한 머리 스타일에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걸음걸이 까지도 비슷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기찻길 옆 남촌에 땅을 사서 새 집을 짓게 되었을 때, 어머니와 우리 사남매는 그 때 막 새로 나타나기 시작한 슬래브 집을 원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붉은 기와를 얹은 일자집을 고집했다.

“지붕 위에서 고추도 말리고 빨래도 널고, 볕 잘 드는 거기다 장독대도 올리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 텐데 느이 아부지는 왜 저 고집이래니?
“아, 고추 말리자고 민짜 지붕을 해? 사람 차암, 자고로 집이란 말이야, 고야를 올리고 기와를 얹어야 모양새가 나는 법이지, 저 봐, 저 목욕탕처럼 지붕을 뚝 잘라버리면 멍텅구리 같잖나, 저런 건 연탄창고나 목욕탕에나 하는 거야, 저게 집이냐? 그리고 거기 눈이라도 쌓이면 어쩔려구? 집 무너진다, 무너져!.... 뭐든지 남들하고 맞춰 가며 비슷하게 살아야지, 너무 튀는 건 썩 좋은 게 못 되는 법이야.”

동네에 막 들어선 목욕탕 건물이 슬래브 지붕이라는 걸 강조해대는 아버지가 말하는 요지는, 우리가 살 집은 연탄 창고나 목욕탕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는 건지, 아니면 그게 너무 튀기 때문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없는 가운데 아버지는 우리들의 주장을 일축해버렸다.

집이 모양새를 갖추고 아버지가 원하던 대로 고야지붕까지 올라가고 나서 마지막 미장이 끝난 다음, 며칠 말리고 난 후, 칠을 한다던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 온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우리들이 원하던 베이지 색을 또 한 번 단호하게 밀쳐내고 아버지가 정한 색깔은 분명 갓 난 병아리 노란색이었는데, 병아리는커녕 집은 마치 샛노란 물감에 퐁당 담갔다 건져 낸 것 같았다.

연하늘색, 베이지, 옥색의 이웃집들 속에서 튀다 못해 우스꽝스럽기 까지 한 노란 색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킥킥 거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거 무당집 아니야?”
겸연쩍어 하는 아버지 말에 의하면 페인트 가게에서는 분명 노랑 미색이었는데 칠하고 보니 영 다른 색이 나왔다는 말이었다.

“다시 칠하면 되지 뭘 그래.”    
그렇게 아버지는 말했지만 그 무당집 같다던 노란 색은, 대통령이 삼선 개헌을 하고 난 뒤, 여세를 몰아 유신체제로 주욱 밀고 나간 때를 견뎌낸 다음, 긴급조치가 몇 개 내려진 뒤에도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철대문의 사정도 그랬다. 노란 집에 어울리는 대문 색을 정하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집을 지은 뒤로 빡빡해진 살림살이에다, 아이들 넷으로 인해 씀씀이가 큰 형편이었으므로, 우선순위에서 젖혀진 대문은 붉으죽죽한 광명단을 칠한 채로 그냥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중에는 광명단 색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인제 뭘 바꿔, 그런대로 살지 뭐.”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 거였다. 광명단도 시간이 지나자 그나마 벗겨지고 녹이 슬기 시작했지만 그 때는 이미 대문의 구실, 그저 안팎을 구분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결국 아무도 대문 칠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노란 색 집, 그리고 녹슨 대문집의 맏딸이 되어서 장래 집안 살림의 한 부분을 감당해야만 하는 지고의 숙명을 목에 매단 채, 손목이 덜덜 흔들리도록 타자기를 붙들고 연습에, 연습을 해댔다.  

집안에는 골목 안, 구멍가게에 콩나물을 사러 나가기도 싫어하는 딸 셋 아들 하나가 복닥거리며 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심부름이 떨어지면 우리들은 방 아랫목에 귀틀거리고 앉은 채 서로 떠밀어 댔다.

“난 어제 갔다 왔잖아!”
“암튼 난 싫어!”
나중에는 힘이 모자라는 막내 남동생이 떠밀려 나가곤 했다.

우리 남매들은 남의 집 대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주일을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전혀 심심해하지 않는 그런 자식들 덕분에 오히려 어머니가 숨이 막혀서 휭하니 집을 나가고는 했다.


  1974년 새해 겨울, 전문대 2학년 졸업반으로 올라갈 나는, 그즈음 미국에서 온 침례회 소속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 영어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명분이 필요했던 것은 세마대 보적사에 올라가 정기적으로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하루는 대문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도 집에 없고 동생들도 없는 한적한 집안에 울리는 목탁 소리는 길게 조용하게, 그래서 심심하고 나른한 오후를 더욱 늘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웬만하면 돌아가려니 했는데 탁발승은 아예 작정을 한 모양인지 목탁소리가 영 멈추질 않았다. 탁발승이 찾아오면 어머니는 의례히 쌀을 한바가지 퍼갖고 나갔지만, 사람 없는 척 버티던 나는 투덜거리며 빈손으로 대문을 빠끔히 열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탁발승을 아래위로 훑어보자 체격이 왜소해서 장삼이 마치 자루처럼 훌렁거리는 그가 내게 공손히 절을 했다.

“정보살님, 안에 계시는지요?”
“정...보살님이요?”
“아, 보살님의 큰 따님이신가요?”

나는 어머니가 어째서 보살이라고 불리는 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 말에서 오는 어감이 더 좋지 않아서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보살이라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이란 말은 들었어도 평범한 여인네들을 보살이라 부르다니....혼자말로 궁시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엄만, 지금 안계세요”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글쎄요....잘 모르겠는데요”  
“.....돌아오시면 보적사에서 다녀갔다고 전해주시지요”

어떻게든 빨리 대문을 닫아 버리고 싶어 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탁발승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생각하고, 진실을 진실 아닌 것으로 보는 사람은 진실을 모르고 부질없이 망상만을 따르고 있다고 부처님 말씀하셨습니다....항상 윗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나이, 아름다움, 행운, 힘, 이 네 가지 복이 더 붙는 법이지요. 그럼 이만.....”

나는 순간 얼굴이 뜨뜻해졌다. 나중에 들은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보적사에 불사를 일으키게 되어서 주지 스님이 탁발을 나왔다가 들렀다는 것이었다.

여느 탁발승이 와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던 어머니는, 큰딸인 내가 주지 스님을 그렇게 문밖에서 매몰차게 보냈다는 사실을 어찌 알고는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 후로는 나를 내놓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 예수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냐?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남의 종교 존경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가르치냐고?”


교인들의 대부분은 원성모방에서 일하는 여공들이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공언니들 틈에서 그나마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자매회로 토요일 저녁마다 예배당에서 모였다.

교회가 세 들어 있는 이층, 그곳의 옥탑 방에 사는 성자언니 덕분에 밤늦은 시간이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잘 거리곤 했는데, 주로 성경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생활 간증을 하곤 했다. 교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된 나는 곧 그녀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정희언니, 그녀는 고아였다. 오랫동안 결핵성 임파선 염을 앓고 난 후여서 그런지 온 몸은 물론 얼굴에도 군살이 없다. 딱히 눈에 띄게 예쁜 구석이 없다는 게 사실 정희언니의 매력이었다.

남의 말에 가끔씩 웃음을 띨 뿐,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 그녀는 하루 종일 말 안하고 있어도 스스로 불편하거나 심심해하지도 않을 듯이 보였다.

키가 큰 근숙언니는 정희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는데, 좀 까탈스럽기는 해도 정희 언니를  끔찍이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만한 흠은 얼마든지 봐 줄 수가 있다. 그리고 왕고참 진희언니, 서른이 다 된 그녀는 언제나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은 반듯한 자세로 자매회를 인도하고 있다.

얼굴이 하얀 그녀는 충청도 진천에 있다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예닐곱 명의 자매들이 참석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몇 주씩 빠지기도 하면서 자매회를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그중에도 나는 정희언니를 좋아해서 그 언니의 자취방에 가끔 놀러가곤 했다. 어느 날,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어서 그리운 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언니가 피식 웃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만 눈물이 쏙 배어나왔다.

언니의 자취방에는 늘 빨래가 널려 있다.
“속옷을 밖에 널기가 그래서...”

아예 빨래 줄이 매어져 있는 한 칸짜리 방에서 언니는 월급을 타는 날이면 나에게 특식을 만들어 주고는 했다. 분홍색 소시지를 썰어 넣고 계란을 풀어 넣은 국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한 번은 내가 염치가 없어서 우유 두 곽을  사 갖고 갔다. 정희 언니는 싱그레 웃으며 우유 하나는 내게 밀어 놓고 하나는 야간 교대로 들어가 있는 근숙언니 앞으로 남겨 두었다.

“난 우유 안 먹어, 그게 아니라 못 먹어....고아원에 있을 때 우유에다 보리밥 말아 주었거든. 배급우유가 들어 와서 날마다 먹긴 했는데, 나는 웬일인지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해. 그래도 먹을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설사하면서도 계속 먹고, 또 설사하고.... 그래 그런지 인제는 우유의 우자만 들어도 배가 살살 아퍼”

정희언니는 그 작은 방에서 잘 나가지 않았다. 서쪽으로 난 창문 아래, 레이스로 덮어놓은 삼단짜리 나무 책꽂이 위에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있고 그 옆에는 내 손가락 크기만 한 게발선인장이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다.

책꽂이에는 장미꽃이 그려진 접시 세트가 큰 것으로 다섯 개, 작은 것으로 다섯 개, 그리고 같은 문양의 밥공기 다섯 개가 엎어져 있다. 근숙언니가 혼숫감이라고 이기죽거리며 놀리는 정희언니의 재산이었다. 그 옆에 비닐 커버를 씌워 놓은 선풍기가 있고 때로는 책상으로도 쓰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밥상이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정희 언니의 유일한 취미는 종이 모자이크였다. 헌 책방에서 사다 모은 미국 잡지들을 사각 소반위에 올려놓고 색상을 먼저 골라 놓은 다음, 우선 크게 몇 군데를 찢어 놓는다.

아니면 색이 아주 다를 경우에는 같은 색을 따라 조심스럽게 찢어 나간다. 대부분, 옷과 머리, 얼굴이 대별되고 나무와 하늘, 물, 꽃들, 잔디밭, 창문과 가구, 이런 방법으로 구분이 된다.

그러고 나서 찢겨진 한 조각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 손으로 되도록 자잘하게 찢는다. 때로는 종잇조각이 정전기가 일어나는 손가락에 달라붙기도 했다.

잡지를 뜯어내기 전에 정희 언니는 페이지의 앞뒤를 살피며 어느 쪽 색을 택할지를 결정한다. 어느 때는 아랫입술이 두툼한 여자의 빨간 입술을 고르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을 한껏 나는 새의 고동색 날개를 잘라 내기도 했다.

한번은 비키니 수영복을 도려내야만 했다. 수영복의 푸른 색 줄무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갈색 머리도 잘려 나가고, 뱀가죽 구두의 뒤축, 딸기, 포도, 어느 남자의 선글라스, 지중해에 떠있는 요트 중에서 하얀 돛을 자른 적도 있었다.

이것은 절대로 가위나 칼을 대지 않고 손으로 찢어내야만 하는 작업이라, 나는 종이 찢기를 위해 손톱을 길게 다듬어야만 했다. 이렇게 정성들여 구해 낸 중요한 색들은 언니가 만들어 놓은 종이 상자 속에 색깔별로 분류되어 들어가고 나머지 색들은 좀 큰 상자 속에 비슷한 색상끼리 담아 놓았다.

그 상자들도 물론 언니의 손에 의해 자잘한 종잇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붉은 단풍이 든 나뭇잎 하나가 붙어있는 상자에는 붉은 종류의 종잇조각들이 들어 있고 바닷물이 풍덩 물들어 있는 상자는 물론 푸른 색 종잇조각들이 들어있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분류된 종잇조각들은 화분위에도 붙여지고 책장에도 미닫이 방문의 한쪽 켠에도 붙여졌다. 조각들은, 언니의 손에서 마술처럼 이리저리 모여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어느 여인의 붉은 입술은 장미 꽃잎으로 변해 꽃다발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어느 남자의 이마는, 도토리를 안고 있는 다람쥐의 발톱이 되기도 했다. 딸기는, 아기의 하얀 옷자락 끝에 매달린 레이스로 둔갑하기도 하고, 요트의 돛은 갈가리 찢겨서 저금통 같이 동그스름한 집의 하얀 벽이 되기도 했다.

언니는 핀셋으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침바늘 끝으로 세밀하게 붙여나갈 때도 있었다. 종이 뜯기를 시작하다 보면, 나중에는 잡지 한 권을 통째 먹어치우기라도 할 것처럼 눈이 총총해지면서 말하기도 잊은 채 그 일에 열중하곤 했다.

손끝에 부드러운 종이 촉감을 느끼면서, 프린트 되어있는 영어 글자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습, 남자의 몸체가 서서히 해체 되어 가는가 하면, 드디어 바퀴와 문짝이 떨어져 나간 자동차 껍데기를, 그리고 그마저도 내 손끝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영락없이 내 몸 안 어디에선가 간질거리는 웃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언니, 나 미쳤나봐, 못 참겠어!”
나동그라지며 깔깔 거리는 내 손에는 금발머리의 여인이 한쪽 다리를 빼앗기고 양쪽 눈을 뜯긴 채, 치아까지 다 도망가 버린 모습이 남아 있었다. 정희언니도 가끔 너덜거리는 종이를 나에게 들이밀며 웃곤 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장난삼아 이리저리 뜯어내어 요상한 사진을 만들어서 서로 보여 주며 깔깔 거렸다. 언니는, 그릇이 올라가 있는 나무책장의 선반을 장미 꽃잎으로 장식을 하고 그 위에 니스 칠을 했다. 게발선인장의 화분에는 자잘한 푸른색 다이아몬드 무늬 띠를 두르고, 벽시계의 둥근 가장자리는 초록색 나뭇잎들로 덮었다.

“이유? 고아원에 있을 때, 너무 심심해서.... 거기 흔하던 미제 만화책 가지고 시작했어. 얇고 부드러운 그 종이를 애들이 밑 씻을 때 쓴다고 내놓으라고 했지만, 난 손에 들어온 책들은 절대로 뺏기질 않았어. 부지런히 조각조각 찢어 놓았거든. 오빠들이 때리기도 하고 언니들은 내 머리채를 잡아 휘두르기도 했어.

그러더니 나중에는 언니, 오빠들이 오히려 만화책을 구해서 갖다 주는 거야....그때는 내가 종이액자, 필통 깔개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언니, 오빠들한테 주었거든. 무엇이든 내 꺼라는 게 없었던 우리들이라 그랬는지, 별것 아닌데도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덕분에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서 종이를 뜯어내고, 찢고, 그걸 풀로 붙이고... 그랬지....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그게 다야.”  
      
정희 언니는 싱겁게 웃으며 굳은살이 박인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내게 보였다.

“첨에는, 화투를 보면서 두꺼운 종이에다 그걸 고대로 만들어봤지. 우습지? 알고 보니까, 화투장 속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들어있더라... 꽃도 있고, 나비도 있고, 소나무, 달, 산, 사람, 멧돼지, 개구리, 단풍, 사슴, 시냇물....거기다 새들도 여러 가지잖아, 기러기, 두견새, 꾀꼬리, 학, 봉황새....그것뿐이야? 꽃들도 종류별로 여러 개가 있고... 매화, 붓꽃, 벚꽃, 국화, 모란, 등꽃, 또 뭐가 있더라, 아! 오동나무꽃... 혼자 연습하기에 너무 좋았어.”

어린아이처럼 손바닥을 마주치며 활짝 웃는 정희언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정희언니의 기술을 전수해야겠다던 야무진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내게는 화투장을 들여다보며 연습할 만한 인내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이를 뜯어서 상자 속에 분류해 주는 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앞에는 종이붙이기 말고도 새로운 도전이 수없이 다가오리라는 나름대로의 기대와 확신을 의지하면서.

김성남씨를 만나게 된 것은 그 무렵, 이상기온으로 따스하던 그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정희언니와 종이 뜯어 붙이기에 잔뜩 빠져 있던 때, 화분, 시계, 액자는 물론 앨범 표지등의 장식을 넘어, 책갈피나 연필꽂이, 필통, 그런 소품으로 발전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신문지를 보거나 잡지를 보고 있노라면 뜯어내고 싶어서 손이 간질거리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종이를 짝짝 찢고 있다 보면 웬만한 우울한 일들은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난후에는 간질거리는 증상을 그대로 참고 있기가 어려웠다.  

“아니, 너는 종이란 종이는 왜 죄다 조각을 내고 앉아있어?”

어머니가 한마디 하고나서야 종이 찢기를 멈추고는 했는데, 그 증상은 차차 강도가 높아져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무심코 어느 한 구석이라도 손을 대게 마련이었다. 한번은 천 원짜리 지폐를 반이나 찢은 적도 있었다.

김 성남씨는 원성모방 방적부의 작업반장이었다. 자매회가 끝날 무렵에 그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호빵을 담은 봉투를 들고 교회에 나타나자, 진희언니는 썩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는데 웬일인지 다른 언니들은 환영 일색이었다. 그중에 정희언니가 유독 반가워했다.

주위를 휘이 둘러보던 그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잠깐 시선이 멈추는 듯싶더니 곧 무엇엔가 골똘한 얼굴로 눈을 돌렸다.

그는 자매회가 끝날 때까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시선 안쪽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때로는 멍한 얼굴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전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낯선 얼굴을 하고 있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간키에 군살이 없이 다부져 보이는 그는 둘러앉은 자매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그가 나와 시선이 다시 마주치자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파악을 할 수 없는 가운데 자매회가 끝나고, 이어서 주기도문으로 마치겠다는 진희언니의 말이 있자, 갑자기 그가 무릎을 꿇으면서 큰 소리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스포츠 형 머리의 그가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고개를 길게 빼면서 앞으로 몸을 숙이자 목덜미에 가무스름하게 앉아 있는 기미가 눈에 들어 왔다.“정희야, 우린 라면 끓이러 가자, 저기, 김 반장님, 좀 이따가 라면 드시고 가세요!”

성자언니가 소리를 지르자 김성남씨는 그제야 꿇고 있던 무릎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머지 자매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위한 자리 정돈을 시작했다. 방석들을 양쪽에 세 줄씩 줄 맞춰 놓은 다음, 석유난로가 놓인 가운데는 통로로 남겨 놓는다.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뒤쪽 구석에 세워 놓았던 찬송가 궤도를 강대상 오른 쪽으로 옮겨 놓고 융판을 그 옆에 가져다 놓고 난 후, 그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 융판 교재를 순서대로 늘어놓는다.
이번 주 반사는 근숙언니이다. 근숙언니가 아이들 앞에서 큰 키에 그 긴 팔을 깜찍스럽게 움직이며 찬양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빵빵! 죄악 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사실 나는 집에서 근숙언니의 율동을 흉내 내며 여러 번 연습을 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팔 동작이 언니처럼 깜찍스럽게 되질 않았던 것이다.

정말 못 봐 주겠네, 하면서 동생들이 말리던 일을 생각하고, 나는 융판을 판판하게 고르고 있는 근숙언니의 등판을 쳐다보며 슬며시 웃었다.

그러다가 김성남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진희언니와 말을 하면서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침 웃고 있던 참이라 갑자기 웃음을 거둘 수도 없었으므로, 애매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자기를 향해 웃는 줄로 오해를 했는지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그의 입가에 주름이 잡히면서 하얀 이가 드러났다.  
라면을 먹고 나서 김성남씨가 떠나고 몇 몇 자매들만 남게 되었을 때 진희언니가 나를 손짓으로 조용히 불렀다.

“신 자매, 아까 그 김 반장이 자매를 따로 만나고 싶어 해. 내가 결정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자매가 만나보고 나서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진희언니가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내게 말했다. 그녀가 진지해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이상하네, 왜 저한테 볼일이 있대요?”

“오해는 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일이 아니고, 신 자매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가봐, 내가 얘기 할 만큼 했는데 물러서질 않네.... 그러니까 이제는 자매가 직접 듣고 나서 결정해”  
“만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언니. 저 혼자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럼, 정희랑 같이 나가면 어떻겠어?”    
“정희언니요?...”
나는 정희 언니가 김성남씨 앞에서 얼굴이 환해지던 모습을 떠올렸다.
“글쎄, 그렇다면 생각해볼게요, 그 대신 정희 언니한테는 언니가 대신 말해주세요”


  김성남씨와 판자문짝의 빈대떡 집에서 마주 앉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눈 같지도 않은 눈이 감질나게 내리다말다 하는, 그래도 그해 들어서 제법 추운 날이었다.

“보긴 이래도 이 집 빈대떡이 아주 유명해요. 자매들은 빈대떡 먹고....나는 술 한 잔 할 랍니다. 괜찮지요?”
  
철판 위에서 기름 덩어리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연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하자 고소한 냄새가 좁은 가게 안에 가득 차 올라왔다. 곧 돼지기름으로 번질번질한 녹두 빈대떡이 한 접시 나오고 막걸리 병 하나와 밥공기 세 개가 잔으로 딸려 나왔다.

김성남씨는 자기 앞에 있는 밥공기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서 쿨컥쿨컥 소리를 내며 단숨에 마셨다. 나는 김치와 대파가 잔뜩 들어있는 빈대떡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어떤 내용의 말이라 할지라도 술의 힘을 빌려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무시했다.

연기가 자욱한 좁은 식당 안에는 이미 술에 취한 두 사람이 서로들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누구의 아버지일 테고 누구의 남편이기도 할 남자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들렀을 저들의 목소리에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 주려는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얘기를 들려주기에 급급한 초조함이 배어있었다.

“맞다니까아! 정통한 소식통한테 들은 거라구우!”

뒤통수만 보이는 남자가 젓가락을 허공에다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자기 눈앞에서 왔다갔다 날아다니는 젓가락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아따! 이 사람아! 말조심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말을 떠들어!”

두 사람은 가게 안을 휘둘러보고는 곧 자기들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자 의자를 끌어당겨 얼굴을 가까이 맞대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희언니는 젓가락으로 빈대떡을 몇 번 집다가는 손을 내려뜨리고 가만히 드럼통 위에 올려놓은 철판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성남씨가 탁자 옆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신 자매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이 서류를 보시고 절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네에? 제가요?....”

  나는 김성남씨와 정희언니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정희언니는 사정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이 입매에 힘을 주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표지에는 원성모방 73년 회계연도 결산서라고 타이프가 되어 있었다. 표지를 들추자 대차대조표, 손익 계산서, 이익 잉여금 처분서 등의 낯익은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산은 왼쪽 차변에, 부채와 자본은 오른쪽 대변에, 비용은 차변, 수익은 대변에. 숫자를 제 자리에 맞도록 집어넣는 연습만 얼마를 했던가.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의 당기 순이익이 일치 되어야만 끝나는 그 작업을 위해, 나는 토스토예프스키를, 하인리히 뵐을, 고골리의 외투를, 장자의 무소유를, 칼 융을, 다니엘 벨을, 가스통 바실라르를, 우향 박래현을, 마네를 고흐를, 마티스를, 존 번연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에드가 앨런 포우를, 베토벤을, 브람스를, 슈베르트를, 차이콥스키를, 아! 그 라흐마니노프를 다 포기하거나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열아홉 살이 넘어서 만난 이들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열아홉 살에 이미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내게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알아야 할 것이,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김성남씨는 내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허술한 빈대떡 집으로 불러낸 것이 술의 힘을 빌려 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아챘다.

그는 내가 가진 약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뛰어 나가보지 못한,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는 이상 아니면 허상을 안고 앉아 있는 나를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조금만이라도 세상의 커튼을 열어 보이면 거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휘청거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다.
나는 어떤 창문을 통해서라도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전봇대에 소변을 누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엉엉 우는 남자, 불이 꺼진 방에 들어가 있는 남녀가 내지르는 교성, 정육점 아저씨가 날이 선 칼로 고기를 툭툭 자르는 동안 끔찍이도 무표정 하던 얼굴. 어느 것이라도 결국 코끼리 다리 만지기가 될게 분명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깊고 넓게 내 앞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실은 저도...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긴 합니다만...”

김성남씨는 말을 끊고 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그 말이 나를 구슬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좀 더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가 얼굴 표정을 가라앉히면서 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집었다. 그러자 그의 손등에 나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도드라져 보이는 상처는 화상 같았다. 갑자기 서류와 상처가 오버랩 되면서 자리가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울 엄니가 새벽기도로 절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왕복 오리길이라 그리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를 다니셨어요. 근데, 그게 어린 저한테는 어렴풋하게 두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엄니가 어두운 새벽에 나가고 나면 단칸방 안이 허전하고 무서웠지요. 그래서 저는 이불을 목 위까지 끌어당기고는 했어요. 추운 방에 동생하고 누운 채 전 한걱정을 했어요.
교회가기 싫다, 교회 다니는 게 엄니처럼 새벽마다 저런 고행을 하는 거라면 난 못한다, 그리 생각했던 거지요. 아무튼 그 후에 엄니가 하도 졸라대서 교회에 나가긴 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아주 이상한 찬송가를 들었어요....

이거 아세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그 때 막 중학교에 들어간 저는 엄니한테 물었어요, 엄니, 엄니는 주 음성을 들었어? 했더니 엄니는 절 아주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그 음성은 귀에 들리는 게 아녀, 맘속에서 들려오는 거지, 그러시더군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엄니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내어 울면서 기도를 하시더라구요. 그날따라 아주 오랫동안....뭐, 워낙에 기도를 시작하면 밤도 새우실 정도였으니까요. 아무튼 저러다가 엄니가 까무러치는 건 아닌 가해서 무섭기까지 할 정도였어요.....

새벽이 되어서 기도가 끝났을 때, 울 엄니 퉁퉁 부은 눈을 보면서 물었어요. 엄니, 뭘 기도했어? 그랬더니, 느이덜 위해 기도했지, 아버지 없는 느이덜 위해 대신 아버지가 되어 주십사고, 니덜이 가는 앞길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런데 저한테는 아무런 느낌이 오질 않았어요. 어린 맘에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면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알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엄니가 기도한 덕분인지 아닌지 몰라도 저는 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마치게 되었어요....엄니가 병이 나셨거든요. 아니, 벌써부터 병드셨던 걸 제가 몰랐던 거지요,

그때, 그날 밤, 엄니가 왜 그렇게 무섭게 기도 했는지 그제서야 알았던 거죠. 엄니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겨울에 동생하고 날 남겨놓고 돌아가셨어요....근데 울엄니, 마지막 유언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잠언을 백번만 읽어라 그러시더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된다구요, 대학에 못가더라도 온 세상의 지혜를 거기서 다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몇 번 읽었을 것 같습니까? 엄니 유언에다 백번을 더해서 이백 번을 읽었어요.”

그 말이 무슨 싸인 이라도 되듯이, 빈대떡을 가운데 두고 앉아서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안쪽에서 나온 더운 김으로 창문이 부옇게 흐려 있었다. 마치 창문 안과 밖을 구분하려는 장치처럼, 그것은 그렇게 바깥 세계와 우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김성남씨가 열어 보여주는 세상이 이제와는 다른 의미로 내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참이었다.

“그래서...”
김성남씨가 다시 말을 이으려고 하는 그 때, 갑자기 정희언니가 풀썩 탁자 위에 엎드렸다. 그러더니 곧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상황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희언니의 가녀린 팔목을 붙잡고 가만가만 흔들었다.

“언니... 언니 왜 그래?”
멍하니 입을 벌리고, 들썩이는 정희언니의 등판을 바라보고 있던 김성남씨가 술잔을 들어 입에 부어 넣고 나서 나무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집었다. 순간 그의 입이 한쪽으로 씰그러지는가 했더니 흐윽 소리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가 고개를 직수그리고 앉아서 정희언니와 함께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고 앉아 있는 나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에 나는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되질 않았다.

만국기, 펄럭이는 만국기만 보면 나는 훌쩍 훌쩍 우는 버릇이 있다. 한번은 주유소가 개업했다는 표시로 만국기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고 버스 안에서 울어버린 적도 있다.

그것은 언제나 새파란 하늘에 높이 매달려 있어야 했다. 쌀쌀한 아침에 파란 하늘 아래에서 흩날리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가 나를 울리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남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같은 증세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와 관계된 무슨 맘 아픈 추억이 무의식 세계 속에 남아 있나보다고 유추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 사이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세계에서 나를 슬며시 밀어 내는 그런 분위기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먼저 김성남씨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팽하고 코를 풀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지짐이 냄새 때문에 엄니 생각이 나서 아까부터 울적했는데... 정희씨가 저러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울컥 했네요”  

정희언니는 아무래도 쉽게 끝나질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언니 눈에서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언니의 천연덕스런 말 때문에 내가 몇 번 눈물을 찔끔거렸는데....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과 구석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중년 남자들, 불철판 앞에서 빨갛게 익어버린 가게의 여주인, 뿌연 창문 밖으로 스적스적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나는 이런 장면들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듯,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건 참 불쾌한 느낌이었다.  

“자매님, 제가 지금 맘도 머리도....아주 복잡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길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오늘 장소를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머리로 냉정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거든요.”

김성남씨가 약간 부풀어 오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는 무관심하고 나른해진 내 기분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정희 언니는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아, 네, 전 괜찮아요, 여기에서 말씀하세요.”

나는 얼른 얼굴 표정을 수습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여 주기 위해 허리를 곧추 세워 앉았다. 그제야 정희언니가 부스럭거리며 머리를 들었다. 언니는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잔뜩 찡그리더니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저어... 전 먼저 가볼께요....”  
김성남씨가 나를 건너다보았다. 마치 나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듯이.
“언니, 괜찮아?”
“으응....”

“그럼, 난 얘길 마저 듣고 갈께, 문 잠그지 마, 언니, 나 이따가 들를 꺼니까”
“그래, 알았어, 저어 김 반장님, 죄송해요”
“죄송하긴, 조심해서 들어가고, 낼 보자”
  
정희 언니가 자리를 뜨자 김성남씨와의 사이에 알 수없는 기류가 밀도 있게 흐르는 걸 서서히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어떤 은밀한 범죄를 도모하는 공범자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동류의식 같은 것이었다.

“아까 말하시던 서류 얘기, 마저 하세요.”  
“.... 그럴까요?”
그는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목울대로 물 한잔을 넘기고 손등으로 입을 쓰윽 문질렀다. 그가 서류를 다시 앞으로 당겨 놓았다.
“이게 뭔지, 자매님 잘 아시죠?”
“네에, 그러네요”

“지난 번 주주총회에 제출했던 재무제표들입니다. 저는 이걸 알고 싶습니다. 지난 해 저희 회사가 낸 순이익이 얼마고 그 순이익을 도대체 어디에다 쓰기로 했는지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 얼마나 들어왔고 또 얼마를 썼다는 건지,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남았다는 건지요....”

서류에는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 배당금을 제외한 상당 금액이 설비투자 등 사업 확장을 위한 준비금으로 적립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곳을 손으로 짚으며 금액을 또박 또박 읽어 주고 나서 말했다.

“순이익은 숫자상으로는 이렇지만, 사실, 여기 있는 대로 설비 투자나 신상품 개발 연구비, 그런 것들 때문에 부득이 비용을 적립해야 될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임금으로 돌릴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 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성남씨는  깊은 숨을 내쉬고 물 한잔을 또 다시 들이켰다.

“저는.... 잘 살기 위해서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주,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하루에 열두시간은 보통이고 어느 때는 열여섯 시간을 일한 적도 있어요.

회사에서 주는 야식, 단팥빵 하나로 버티면서요.  보통 아침에 들어가면 밤에 나오고, 다음 주일에는 밤에 들어갔다가 아침에 나오고, 주야간 이 교대니까 그렇게 되지요. 그래도 삼 만원 벌기가 빠듯해요. 거기다가 여자들은 더 심하지요, 같이 일해도 남자들 월급보다 적거든요.

보통 만 팔천 원, 만 오천 원, 그래요. 그래야 쌀 한가마니 값도 못 버는 건데. 요즘에는 자고나면 쌀값이 하루에 오백 원, 천 원씩 오르잖아요, 그런데도 정신 나간 어떤 여자애들은 한 달 치 월급을 주고 미제 청바지를 사 입고 다녀요.  내 참, 그게 가짜 여대생 노릇하느라고 그런 다네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치만 그런 애들은 사실 몇 안돼요, 대부분이 집안 살림 어려워서 나온 아이들인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모은 돈은 죄다 고향에 보내지요.... 저도 그게 다인 줄 알았어요. 그게 사람이 사는 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는 거라고, 사글세에서 전세로, 그러다가 집도 장만하고, 가정도 꾸리고....야간 들어갈 때 말이죠, 불이 환하게 켜진 남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구수한 찌개 냄새, 기름 냄새, 아이들 떠드는 소리... 그런 사람냄새 맡으면서 저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 거라고, 아랫배에 힘을 콱 주며 지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십오 년을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왔어도 그런 생활이 제게는 아직도 꿈입니다. 동생 학비 대면서, 그래도 돈을 모았다 싶으면 전세도 오르지요, 집값은 또 따라 잡지도 못해요.

그것보다도 더 힘든 것은 같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 같은 공원들은 딴 나라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들 중, 열에 일곱은 국민학교 학력이 다이지요, 공부를 못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했겠지요.

그게 다 환경이 그랬던 걸요, 맘대로 앉아서 숙제라도 할 만한 시간도 장소도 없는 사정들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그 시간에 뭔가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될 일을 찾아야 했는걸요.

할아버지 때부터, 아니죠, 그 윗대에서부터 가난하고 가난해서 물려준 거라고는 병하고 빚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꽤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만 놀아요, 우리끼리...세상에서 부르는 이름, 공돌이, 공순이끼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