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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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아무르 연가 (단편 소설)

2011.12.01 03:48

최영숙 조회 수:1128 추천:212

                                                        

  근 이년 만에 막내 당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숙이래야 나하고는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어릴 적에는 내가 맞먹고 기어오르기도 하던 사이였다.

마지막 연락은 당숙이 오하이오 주에서 새 살림을 차렸다는 전갈이었고, 그 후로도 오하이오에서 이곳 메릴랜드가 그다지 멀지 않았음에도 일절 소식이 없는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중이었다. 당숙의 목소리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라도 하듯이 여전히 칼칼했다.

“김 서방은 잘 있냐? 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챙겨야지, 그 사람도 이제 나이 육십을 넘었는데....서현이는? 아직 결혼 안했어? 걔 결혼 때는 꼭 연락해라. 걔 언니 때는 사정이 그래서 못 갔지만  서현이 때는 내가 꼭 가야지. 걔 이름을 내가 지어줬는데 안 그러냐?”
당숙은 그렇게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 난 다음 헛기침을 하면서 내게 물었다.

“너, 혹시...아무르 강이 어디 있는지 아니?”  
  당숙이 아무르 강을 한강이나 섬진강 이름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 강이 우리나라에 있는 동강이나 회야강처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강 이름 중의 하나인 줄로만 알고 잠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아무르 강이 중국에서는 헤이룽 강이라고 불린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무르 강이요?.... 그거 중국인가 러시아인가 그 쪽 어딘 것 같은데... 그리고 몽골까지 해서 세 나라를 지나간다든가...아마 그럴 걸요. 근데 그건 왜요?”

“아무르 강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가 있다는데, 그것도 알고 있어?”
“아! 박정대 시요... 아무르 강가에서 라는 시집이 있어요. 그거 .... 내가 갖고 있을 거예요. 근데 그건 또 왜요?”
“그 시집, 나한테 빌려 줄 수 있어?”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왜 갑자기 그 시집이 필요해요? 시 쓰셔?”

  막내 당숙이 시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교를 그야말로 죽지 못해 다니고 있던 당숙이 책이라면 뚜껑도 들춰보기 싫다면서 졸업을 하자마자 책이 들어있는 가방을 통째 태워버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당숙을 아무도 고등학교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너, 나 놀리냐? 시는 무슨 놈의 시야... 다른 일로 좀 필요해서 그래.”
“그럼, 뭐?  아하! 또 여자 꼬시려고?  그 보담은 가시리 가시리잇고...그게 낫잖우?”

  중학생이던 당숙이 “가시리” 가사를 외우는 숙제를 하다하다 못해 나를 불러 앉혀 놓고 국어교과서를 손에 쥐어 준 적이 있었다.
당숙이 가사를 두 줄 외우면 나는 자동으로 “위 증즐가 태평성대”라고 장단을 맞추어 읽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어느 줄에는 “나는”이란 말을 붙이고, 어디에는 또 그 단어를 빼어버리는 데 있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이라고 읊는 당숙의 뒤를 따라 내가 얼른 “위 증즐가 태평성대” 라고 후렴을 읽어주면 당숙은 영락없이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나는....”이라고 받고 나왔다.

“거긴 ‘나는’이 없는데...” 하고 내가 말하면 당숙은 그것이 나의 실수인양 나를 향해 눈을 치켜뜨고 성질을 부렸다. 결국에는 내가 어깨 장단에 맞추어 “가시리”를 먼저 외우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당숙은 국어 선생에게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매를 맞아가며 그 앞에서 간신히 외우고 나서야 해가 뉘엿뉘엿할 때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야아, 그 놈의 가시리 얘기는 이제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냐?”
막내 당숙은 헛헛하게 웃었다. 당숙은 웃음 끝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집을 보낼  집주소를 불러 주었다. 의외로 당숙의 주소지는 오하이오가 아니고 캘리포니아였다.

“오하이오? 거기서 바로 떠났지. 그게 언제 얘긴데 그러냐....”
“에고, 아저씨, 그러면 그렇지, 이년을 버티기에 이번에는 진짜인가 보다 했더니...”  
“말마라. 무슨 여자가 그렇게 돈, 돈, 돈 하냐... 내가 돈 쓰는 건 벌벌 떨고, 지가 쓰는 건 아깝지가 않은지....난, 여자가 너무 돈, 돈 하면서 악착 떠는 건 딱 질색이야. 넌 절대 그러지 마라. 여자를 왜 데리고 사는 건데...이 삭막한 세상에서 오아시스 삼아서 말이야, 위로도 받고 쉬기도 하고, 다 그러자고  하는 거 아니냐...근데 이건 어떻게 된 게 같이 사는 게 더 사막이다. 사하라 사막.”

“그래서, 지금은 또 혼자 살아요?”
“그럼, 혼자 사는 게 되려 편하다. 걱정마라. 혼자 산다고 삼시 세 때 라면이나 끓여먹고 살지는 않으니까. 육개장도 내가 끓여먹고, 김밥도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 먹어. 육개장은 아마 너보다 더 잘 끓일걸.”  
  막내 당숙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궁금한 일이 많았지만 나는 일단 그 정도 선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혼자서 이리저리 떠도는 버릇을 육십 나이가 넘어서도 고치지 못하는 당숙을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피차 좋으련만, 아직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는 당숙의 궁상맞은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스무 살에 군대를 갔던 당숙이 제대 후, 군청 운전기사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며 좋아라고 일하던 당숙이 어느 날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숙이 색싯감을 데리고 아버지께 인사를 왔던 날, 우리 식구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자는 중키의 당숙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이나 키가 큰 미인이었다. 하얀 피부에 짙은 감색 정장을 입고 현관을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온 식구들은 물론, 나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당시 선망의 직업이었던 스튜어디스를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미모였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식구들 중에 나이가 비슷한 내가 편했던지 당숙모가 될 여자는 서글서글한 눈에 웃음을 띠고 다정하게 말했다.

“미스터 최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고향집에서 같이 자랐다면서요?”
그녀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주눅이 들 지경이었다.
“네에, 큰댁 마당이 우리 집하고 붙어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저씨하고는 어떻게...만나셨어요?”

  내 말속에는, 당신 같이 흠잡을 데 없는 여자가 어떻게 키가 작고, 양미간은 째푸리고 다니고, 성질 칼칼해 보이는, 그래서 인상이 별로인데다, 얼굴에는 주근깨도 제법 있고, 걸음새도 완전히 노인네처럼 여덟팔자로 걷는, 그리고 중학교만 졸업한 우리 당숙과 결혼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긴 말이 숨어 있었다.

“연분이었나 봐요. 버스에서 만났는데요, 마침 제 옆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저이가 키는 작아도... 핸섬하잖아요? 안 그래요? 조카님.”
여자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핸섬하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당숙의 얼굴은 농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하얀 얼굴이었는데 게다가 짙은 눈썹이 한 몫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하더라도 남녀 사이의 연분이란 아무래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중에 당숙을 만났을 때 협박을 하며 물었다.
“진실을 말 안하면 다 불거야, 학벌이랑 직업이랑 다 속이신 거지?”
당숙은 엄살을 부리다가 실토를 했다.

“지가 처음부터 앞서 생각한 거야.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기에 군청에서 일한다고 했고, 그거 거짓말 아니잖아? 내 말 맞지? 그리고 몇 번 만났을 때, 알지, 너? 그놈의 가시리, 그거 읊어주었고, 여자들은 그런데 약하거든. 어? 그래 임마, 너는 빼고... 또 그거 있잖냐, 청산별곡, 그래, 살어리 살어리랏다...이거 말야, 얄리얄리 얄랑셩....니가 옛날에 내 앞에서 얄리얄리 얄랑셩, 하고 하도 외워댄 바람에 앞대가리는 나도 저절로 외웠잖냐.... 야아! 때맞춰 그게 갑자기 생각나는 거야. 으하하!”

“그렇게 눙치지 마시고, 내말은, 첨에 어떻게 엮었냐고요?”
“...흐흐흣! 야, 그런 것까지 조카 지지배한테 말해야 되냐?...아, 알았어, 사실은...일차 작업은 버스 안에서 끝내고  버스에서 내릴 때 따라 내려서 핸드백을 빼앗았지. 지가 어떡하겠어. 앙탈을 부리면서 날 따라오더라고. 그날, 바로 여관으로 끌고 갔지. 야, 자식아! 그런 거 아니야, 억지로 그런 일이 될 수 있냐? 제 발로 따라왔다니까.”

당숙은 감색 정장이 잘 어울리는 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당숙의 첫딸 여정이가 돌이 되던 날, 그러니까 내게는 육촌 동생이 되는 아이의 첫 생일잔치에 참석을 했던 날이었다.

그 전에 당숙의 신혼집에는 한 두 번인가 어른들을 따라가 살림살이를 들여다보았고, 그 후로는 주욱 내왕이 없다가 근 이 년 만에 당숙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집안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신혼시절과는 영 다른 분위기가 집안에 깔려 있었다. 반질거리던 가구들은 윤기를 잃었고, 살림의 재미를 잃은 여자가 억지로 살아온 흔적이 이 구석 저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온다고 손을 대어 정리하고 청소를 한 것 같았지만, 집안의 공기 속에 고여 있는 지루함과 불신과 단절을 단 시간에 닦아낼 수는 없었다.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는데 문제는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참에 일어났다. 커피에 집어넣은 분말 크림이 잘 녹지 않아서 둥둥 떠 있는 것을 본 당숙이 커피 잔을 당숙모 코앞에 들이대며 째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날렸다.
“야! 이년아! 증말 이렇게 밖에 못해?”
그러자 당숙모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밥상을 탁 치고 일어나면서 받아쳤다.
“그럼, 그렇게 잘난 니 놈이 해봐라!”

커피를 마시려던 큰 할머니와 세 명의 손위 당숙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당숙모들은 얼른 일어나 막내 당숙모를 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상 끝에 앉아 있던 나는 본의 아니게 막내 당숙모가 부엌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내뱉는 몇 마디 말을 듣게 되었다.  
“벼엉신 같은 새끼가 별 걸 다 가지고 지랄을 떨어요. 야아, 그럴 것 같으면 진작 니 엄마하고나 살지, 장가는 왜 가고 씨는 왜 뿌려!”

  당숙모는 당숙이 당연히 고등학교는 나왔으려니 했고, 거기에다가 군청 사무직 공무원인줄로 알았다고 한다. 하얀 얼굴과 정장 차림새가 가져다 준 오해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식을 낳았어도 당숙은 언제나 어머니 타령뿐이었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고 엉엉 울면서 큰 당숙모에게 하소연을 했다는 말이었다.

둘은 이혼을 했다. 그리고 막내 당숙은 몇 년 뒤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재미교포라는 여자를 만나서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내가 당숙과 재회하게 된 것은 우리 부부가 딸애 둘을 데리고 이민 길에 나섰던 십 오년 전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두 번째 여자와 헤어진 당숙은 약속대로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나와 있었는데, 계절 지난 점퍼에 양복바지 차림이었고 거기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한눈에도 홀아비 티가 나는 당숙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 있다가 한 손을 들어 우리를 향해 헤이! 김 서방, 여기야! 라고 소리를 쳤다. 당숙의 째지는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당숙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남편이 당숙과 악수를 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아휴! 저 할아버지야? 왜 저렇게 꼬질꼬질해? 라고 소곤거리며 내 뒤로 숨었다. 나는 입 다물라는 표시로 아이들 팔뚝을 꼬집었다.

그 날, 당숙이 사 준 버거킹 햄버거와 미국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잔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 미국생활이 어느 덧 자리를 잡게 되자, 나는 당숙에게서 소식이 끊어지면 그것이 새 여자를 만났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찬을 가져가라고 전화를 거는 일을 멈추고, 당숙이 같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고는 했다.

  아무튼 나는 당숙이 부탁한 대로 캘리포니아 주소로 “아무르 강가에서”라는 시집을 보냈다. 당숙에게서는 곧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거 읽고 나서 내가 다시 전화할게.”

  의외였다. 예순이 넘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 지를 깨달은 끝에 사유의 뿌리가 철학에 가 닿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에 대한 대리 충족이거나, 새로운 사랑을 찾아 길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후자의 두 가지 경우가 당숙에게는 해당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당숙이 찾아 나선 삼류 신파를 나는 사랑이란 말로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당숙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 읽기를 싫어해서 가방을 태워버리고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한 당숙의 야트막한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당숙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큰 할아버지가 되시는 분이 술고래인데다 성정이 거칠어서 당숙들을 자주 때리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거기에다 그 분은 술에 취하면 손에 잡히는 것이 몽둥이이든 삽자루이든 닥치는 대로 휘둘러 대기도 했다. 막내 당숙은 용하게 그런 자리를 잘 빠져 나오고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당숙은 아버지를 욕하고, 세상의 모든 여자 중에 자신의 어머니가 제일 불쌍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꾹꾹 찍어내고는 했다.


  당숙은 그만큼에서 시집에 대한 이야기는 뚝 잘라먹고 대뜸 내게 물었다.
“너네는 집 할부금이 얼마나 되길래 그렇게 절절 매고 사는 거냐?”  
“아, 네에...그게 한 천오백 불정도 되지요. 한사람 버는 건 그대로 모기지로 들어가니까 그렇지요. 근데 요새 정말 이상하시네. 그건 또 왜 물어요?”

“그럼 일 년 치면 이만 불도 안 되는 거구나...야아, 그까짓 것 땜에 김 서방을 그렇게 밤늦게까지 일시키고 그래애?”  
그 말을 듣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얼라리, 소리가 나오고 남 말 하시네, 그러시는 분은 지금 왜 그러고 사신대요? 하고 심사가  비틀려서 말까지 꼬여서 나오는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내가 그까짓 모기지, 원금까지 다 갚아 줄께!”

나는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나중에는 슬그머니 귀가 열리고, 혹시 그 간에 복권이라도 당첨이 되었나 해서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말씀만이라도 땡큐입니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야, 암튼 기다려봐라.”

막내 당숙이 오하이오 살림을 접고 혼자 지내다가 연고도 없는 캘리포니아로 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어떤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조건이 우선 싱글 남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주해 살면서 환자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차에 실어야 하고, 또 당숙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 바로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을 구한다하여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그냥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당숙이 찾아간 환자의 집은 엘에이 남쪽 토랜스라는 곳에 있었다. 남자를 구한다 했으니 환자는 당연히 남자려니 했는데 환자의 방에 들어가 보니 의외로 사십 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침대에 누워서 너는 또 뭐야? 하는 눈빛으로 차갑게 쏘아보고 있었다. 당숙은 머쓱해서 서 있다가 제기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난 몰랐소이다. 뭐, 보아하니 아줌씨도 날 그다지 반기는 눈빛도 아니고...이건 뭐, 사전에 얘기가 충분히 되질 않아서 착오가 생긴 모양입니다. 하여튼 실례했소.”
당숙은 비행기 삯을 날린 것이 아까워서, 젠장, 어쩌고 하면서 방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넓은 집안에는 여자의 먼 친척 된다는 중년 부부가 와서 살고 있었다. 친척 부인의 말에 의하면 여자의 부모는 딸 때문에 생긴 울화병으로 얼마 전에 두어 달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떴고, 하나 뿐인 오빠네 가족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떠났다고 했다.

“집안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저 애가 대학 다닐 때 다이빙을 하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거지요. 부모도 부모지만 저는 오죽하겠어요. 새파란 나이에 저렇게 휠체어를 타게 되었으니....거기다가 부모님들까지 그렇게 되었잖아요...그래서 성질이 좀 그래요. 선생님, 그래도 기왕 이렇게 오셨는데 잘 좀 다독여서 같이 지내셨으면 좋겠네요....사람을 구한다고 한 건 우리가 아니고 저 애거든요....지내다보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첨이라 낯가리느라고 그래요.”

사실 당숙은 바로 돌아올 형편도 되지 않는 처지여서 못 이기는 척하고 그 집에 눌러 앉게 되었다. 여자가 당숙을 노려보든 째려보든 본체만체하면서 여자를 차로 실어 나르고, 방으로 옮겨주고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당숙은 여자가 자신을 경계하면서도 이모저모로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일이 일상의 주요한 일이었는데, 당숙은 여자가 보는 책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읽는 책들의 대부분이 영어 서적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은 책 몇 권은 한국말로 되어있는 시집들이었다.

어느 날, 여자가 곰곰한 얼굴로 당숙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정말로 도요가 씨양씨양 우나요?”  
당숙은 여자가 건넨 첫마디가 욕설로 들려서 웃고 말았다. 그러자 당숙은 그동안 닫혀있던 자신의 마음 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누가 그래요? 도요새가 그렇게 운다고요? 내 귀에는 그 놈들이 쫑쫑쫑 하는 것 같더구만...그래서 우리 고향에서는 다들 쫑찡이라고 부르는데...씨양씨양이라니 지금 나한테 욕하는 거요? ”
당숙은 나중에서야 여자가 물었던 그 말이 내가 보낸 박정대 시집에 들어있는 “삶의 기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인 것을 발견했다.
“어느 객주집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던 여자 천희를 노래했던 백석은 도요가 씨양씨양 운다고 했었나요.....”

여자는 당숙의 대답을 흘려들으면서 다시 물었다.
“걔네들은 모래 속에 있는 조개를 파먹고 산다면서요?”
“물가에서 사는 놈들이니까 조개든 잔챙이 물고기든 뭐든 먹겠지요. 콩밭에서 살았으면 콩을 먹었겠지만....”

당숙은 자신의 말이 하도 썰렁해서 다시 클클 웃었다. 그 때 여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슬쩍 피어오른 웃음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한 때는 캘리포니아 태양 볕을 마주하고 당당하게 걸어 다녔을 그녀의 얼굴은 이미 조로했고, 그동안 냉소로 살아온 흔적 때문에 입가에는 늘어진 주름마저 잡혀있었다. 변화는 당숙에게서 일어났다.

“얼굴 보니까 불쌍하더라....근데 말야...내가 왜 학교공부를 그 때 거기에서 집어치웠는지 요새는 후회가 돼. 가끔 그 여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겠어. 어떤 때는 딴 나라 사람 같다니까.....내가 지 말을 못 알아들으면 막 신경질을 내는데...으이그, 그게 미운 게 아니라, 오히려 귀엽다 귀여워.”

“예쁜가보네? 아저씨는 예쁜 여자만 좋아하잖아, 거기다가 젊고.”
“야 임마! 넌 아직도 나를 갈구는 재미로 사는구나, 응?...뭐, 솔직히 이쁘진 않아. 그 보담은 측은하고 귀엽지....어린애 같애. 그냥, 아무것도 몰라. 내가 놀리느라고 농담을 해도 그걸 다 진담으로 받아들인다니까.”

  당숙의 수법은 고전이었다. 여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한 제일 좋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직감으로 알아채는 일은 당숙의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 때문에 시를 읽고 있어요? 이젠 수법도 다양하시네.”
당숙은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신이 나서 말했다.
“김서방이랑 언제 한 번 놀러 와라. 여기 태평양은 볼만해. 그 쪽 대서양 물하고는 차원이 달라.”

그 말이 왠지 내게는 그 쪽하고 이쪽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노는 물의 차원이 다르다는 말로 들렸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캘리포니아는 내게 한국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런 판국에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내게 물었다.
“큰댁 막내 아저씨가 전화를 했는데 대뜸 우리 집에 빚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여차저차 얘길 했더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다 갚아준다고 조금만 기다리래...이게 무슨 소리냐... 니 당숙한테 뭔 일이 생겼니?”

  당숙이 돈을 손에 쥐어주어도 믿지 못할 판인데 당숙이 하는 황당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집안에 아무도 없다.
“그래요? 나한테도 그러던데.....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복권은 아닌 모양이에요.”

“담에 연락오거든 꼭 좀 말해줘라. 우리 빚은 신경도 쓰지 말고 당신 자식이나 좀 돌아보라고 해. 자식이 많기나 하냐, 딱 하나뿐인데....시집가서 애 낳고 살도록 아버지란 사람이 얼굴도 안 비치니...”
“알았어요, 근데 여정이는 잘 살아요?”

“지 엄마가 혼자 키우느라고 애쓴 것 알고 일찍 철들더니, 시집가서도 잘하고 사는가봐.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사는데도 얼굴이 달덩어리 같애. 그래도 지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더라. 그렇게 절 팽개치고 가버렸는데도 걔는 그런 아버지가 불쌍하단다.”

  막내 당숙모는 혼자 살면서 외동딸 여정이를 곱게 길러냈다. 어머니를 닮아 미모가 빼어난 여정이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배시시 웃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요즘 세상에 여자 혼자 애 키우는 게 어디 쉬워? 그만큼 해서 시집보내고 나더니 그 동서도 여기저기 아프고 맘도 쓸쓸하고 그런가 보더라.”
“그럼, 두 사람이 잘해서 다시 합쳐보면 안되나?”

“말도마라. 내가 그 말 한 번 했다가 아주 혼쭐났다, 얘. 다시 합칠 것 같았으면 헤어지지도 않았대. 니 당숙이 입만 열면 쓰레기 같은 소리만 한 대나, 지금도 진저리를 치더라. 하긴 그 서방님은 입만 열면 욕이지.”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카의 입장과 아내의 입장이야 물론 다르겠지만 당숙이 그렇게 진저리를 칠 정도로 쓰레기 같은 소리만 했다는 대목이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당숙이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여정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숙은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쉬었다.

“잘 산대지? 애가 착해서 잘 살 거야. 나야 뭐 할 수 있는 일이 있냐...혹시라도 그 애가 당할 어려움이 있다면 다 제가 겪을 테니 저한테 주십사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뿐이지.... 내가 겪어야지. 그 불쌍한 애한테 무슨 일 생기면....”
  말꼬리를 흐리던 당숙은 어, 됐어, 됐어, 다 지 팔짜지 뭐, 하고 어느 새 원래의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한 번 아무르 강을 읊어 볼 테니까 들어봐.”
당숙은 흠흠 소리를 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어때? 오늘은 여기까지. 이거 외우는데도 엄청 시간 걸렸어.”

나는 처음으로 들어 본 당숙의 진지한 음성에 눌려서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시의 분위기가 가슴을 누르면서 삽시간에 먹먹해졌던 것이다.
“뭐야, 갑자기 시는 외우고 그러셔....기분 참 이상하네....”
“이거, 여기 그 여자 있잖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시래. 날 보고 가끔 읽어달라고 하더라고. 야, 이런 짓 내 적성에 안 맞는 거 너도 알지?”
“적성에 안 맞긴, 전공이시잖아, 전공!”

당숙이 규칙적으로 하는 일 중에는 여자를 도서관으로 데려다 주는 일, 재활센터에 가는 일, 공원을 산책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토요일이면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비치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그것도 언제나  해질 무렵에 그곳에 도착해야 했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석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둘기와 갈매기가 공존하는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고즈넉이 앉아 있는 것은 당숙에게도 싫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것이 하필 토요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주말에는 사람이 붐벼서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어떤 놈하고 거기서 사연이 있었나봐. 넋 나간 것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가도 사람들 목소리가 웅성거리면 놀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거야.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누구를 찾는 건지...안 봐도 뭐 뻔 한 거 아니냐?  잘 사귀고 있었는데 몸이 저렇게 되고나서 남자 놈이 떠나갔겠지. 당연히 집안에서 반대했을 테고... 그 놈이 이런 저런 핑계로 배신 때린 거지, 뭐. 그래서 말이야, 결국 인생이란 다 고스톱이고 뽕짝인 거란다. 그 안에 진리가 다 있단 말이지. 야아, 그건 그렇고, 다른 거야 다 거기서 거기지만 여기 태평양의 석양은 정말 명품이더라. 사람을 그냥 홀려서 착각하게 만들어. 내 자신이 뭐랄까...어째 굉장한 인물이라도 된 것 같고, 그래 그런지 뭔가 좀 대단한 일을 저지르고 싶어지기도 하고....”  

  나는 어쩐지 당숙이 이미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당숙이 아니라 자신의 말대로 어떤 착각 속에서 저지르는 일 일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남편은 당숙이 빚을 갚아주겠다고 한 말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남편과 나는 같은 염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당숙에게서 변호사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숙은 눈치도 없이 신이 나서 말했다.

“유산 때문에 그런대. 모든 재산이 일단 여자 오빠한테 맡겨져 있나봐.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때 나누게 되었다는 거야. 암튼 지금은 그 여자 오빠 놈이 법적인 보호자라네. 재산 문제로 남매간에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가보더라. 올케 년이 욕심이 대단하다나...”

“아유, 그, 년 놈 소리 좀 그만하셔! 근데 가만 있어봐....그럼, 아저씨가 그 여자랑 결혼이라도 할 거라는 말이셔?”
“내가 무슨 결혼을....야 임마, 여태 있다가 그런 여자랑 하냐? 그냥 서류상 도와주고 난 커미션조로 얼마 받는다는 거지.”

“그 말이나 같은 말 아닌감? 어떻든 법적으로 결혼하는 거네.”
“여러 사람한테 다 좋은 일 아니냐....오빤지 뭔지 하는 인간은 한마디로 완전 싸가지야. 돈 챙겨 갖고 한국으로 갔다는데,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밥을 먹고 사는지 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 한 번이 없더라.”

“질문 하나, 근데 그 여자는 아저씨를 뭘 보고 믿어요?”
“넌 그 말버릇 여전하다, 응?  하이고, 염려 붙들어 매시오. 이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비즈니스야, 비즈니스. 그러니까 너희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변호사가 필요한 거지. 여기서 구했다가는 혹시 소문날지도 모르고.”

“아저씨 사정이야 잘 알겠는데, 김 서방이 그런 일로 변호사를 소개해 줄 사람도 아니고 나래도 그렇게는 못해요. 그건 아저씨가 그쪽에서 구해보셔.”

이번에는 대어라도 낚은 듯이 흥분했던 당숙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 쪽에서 약간의 분노를 품고 있는 느낌이 내게도 전해졌다. 예상대로, 다들 좋자고 하는 일인데, 넌 그것도 못 도와 주냐, 하면서 당숙은 전화를 탁 끊어버렸다. 남편은 그 소식을 듣고 나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이젠 우리 집으로 오셔서 같이 살자고 그래. 나이 예순이 넘어서 왜 그런 짓을 한 대...”
  당숙과 비슷한 시기에 예순 살을 넘긴 남편이 혀를 차댔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당숙의 고집을 여러 번 겪은 나였지만 이번에는 사랑니 네 개를 한꺼번에 앓는 것처럼 불편하고 언짢았다. 한 달여를 꾹 참고 견디던 나는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나는 당숙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잘 있었어?”
  당숙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경쾌하고 활기찼다. 변호사 일로 섭섭해 하던 것은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목소리 들으니 잘 돼 가시나 보네?”
  당숙은 내 말에 대답대신 호기롭게 웃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으응, 일이야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쓸 일은 없고, 저쪽에서 최종 사인만 해주면 된대. 오빠라는 작자가 조만간 사인하러 한국에서 온다니까, 사인만 하면 다 끝나는 거야.”

“진짜, 아저씨 같은 사람한테서 어떻게 여정이 같은 애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흐흐흣! 이젠 여정이한테도 아버지 노릇 한 번 제대로 해볼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남편이 날더러 당숙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재촉을 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재물을 노리고 결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당숙의 처지와 몰골이 눈앞에 떠오르고, 여자의 맘에 들기 위해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어쩌고 하면서 평생에 시 한편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그것을 외우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열도 나고 또 내 맘까지 처량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 여자가 휠체어를 타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재산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당숙에게서는 시의 다음 구절을 외웠다는 소식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숙이 그 소식을 내게 너무 차분하게 전해 주는 바람에 나는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재차 하는 말을 듣고도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그만 회복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남편은 여자가 죽었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염려하던 일이 드디어 터졌구나, 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생각하지 말아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 역시 같은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당숙이 계획적으로 평소에 먹는 치료약을 적량보다 많이 먹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혈액에 흔적이 남지 않는 수면제를 먹였다든가...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사람의 속은 알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봐온 당숙이었지만 나는 당숙의 한 쪽 부분만을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당숙이 내게는 늘 관대했는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막내 당숙모의 말대로 머릿속에 쓰레기만 가득한 허접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맘 한구석에는 내가 자라면서 봐온 당숙의 야트막하고 거칠고 칼칼한 성질 속에 감춰진 눈물을 믿고 싶었다.

미주 판 한국 신문을 펼칠 때마다 나는 긴장을 했다. 불안한 속을 누르면서 일면 톱기사를 얼른 확인했다. 불운하게도 그곳에서 당숙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게 될까봐 가슴이 둥둥 소리를 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당숙을 좀 찾아가서 억지로라도 모시고 오라고 남편이 성화였지만, 나는 어떤 상황이든 사실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주저하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당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끊겨 있었다.

사용 중이지 않는 번호라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 전화 번호 외에는 당숙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주소는 적어 놓은 것이 있었으나 당숙의 주변머리로는 그곳에 아직 남아 있을 리도 없다. 나는 그제야 급히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막내 아저씨, 한국에 안 들어갔어요?”
“아니, 모르겠는데....왜? 정말로 돈 벌었다니?”
나는 돈이라는 말에 찔끔해서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무슨 도온! 엄만 그걸 믿었어? 그냥 아저씨 맘이 그렇다는 거지. 그치만 뭐 말이래도 고맙잖우?”  

그리고 얼마 후에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내 아저씨 다녀갔어. 코가 석자는 빠져 가지고 와서, 빚을 못 갚아드려서 죄송하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죄송하긴, 왜 서방님이 죄송하냐고 그랬지. 빚은 조금은 있는 게 좋은 거라고, 사는데 긴장도 되고 그렇다고 했더니, 하던 일이 꼬여서 막판에 뭐가 잘 안되었다나 봐. 그래도 여정이한테 얼마는 해 주었나 보더라. 오래 살고 볼일이야.  아참, 막내 당숙모가 와서 그러는데, 여정이한테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인사를 그렇게 하더래.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 여자가 생겼나보다고 그러더라.....쯧쯧, 그러기나 했으면 좋겠다....”

나는 건성으로 맞장구를 치고 전화를 끊었다. 당숙은 한국으로 도망을 간 것일까....그래도 여정이한테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었다니 오빠라는 사람에게서 합의금이라도 챙긴 것일까, 아니면...혹시 그들 둘이서 공모를 한 것은 아닐까... 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그렇게 골머리를 끓이던 당숙의 일이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내게 소식도 없이 사라진 일은 섭섭했지만 늘 하던 버릇대로 당숙의 존재를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국에서 날아온 두툼한 봉투를 받게 되었다. 뜻밖에도 당숙에게서 온 책과 편지였다. 내가 보내 주었던 “아무르 강가에서”라는 시집을 돌려보낸 것이었다.

“이 시집을 원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뜻인데, 말하자면 그 시를 달달 외워버렸기 때문”이라고 당숙은 편지 머리에 적고 있었다. “가시리”를 외우지 못해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얻어맞았던 사람이 짧지 않은 시 한편을 전부 외웠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외운 목적이 여자 때문이었다면 그것은 이제 필요가 없어진 과거 시제의 일 아닌가. 여자가 죽은 지금 시점에 까지 아무르 강가에서 머물 일은 아니었다. 편지는 계속되었다.

“넌, 내가 그 여자를 어쩌거나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절대 그런 거는 아니다. 의사말로는 그래도 예상보다는 오래 버텼다고 하더라. 나는 여자를 하늘로 올려 보낸 그 날로 집을 나와 버렸다. 그 와중에도 오빤가 뭔가 하는 작자가 하도 붙들고 늘어져서 사인하나 해주고 몇 푼 받기는 했어. 그리고  화장한 여자의 유골 재를 가져왔다. 생각나지? 그 여자가 좋아하던 시, ‘아무르 강가에서’ 말이야. 할 수 있으면 내 손으로 거기에다 뿌려주고 싶어서.

아침에 방에 올라가 보니까 그 사람이 말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어. 자는 얼굴을 보니 표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일을 아주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린애처럼 깨끗해 보이기도 하고. 근데말야, 이상한 일은.... 그 얼굴이 울 엄니 같기도 하고 우리 여정이 같기도 하고 그런 거야.

그리고 그 때 내 가슴 속에 불던 찬바람이 쑤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어. 그게 뭐냐 하면, 으음...잘 표현을 못하겠는데... 너 같음 이런 걸 뭐라고 말하겠냐...언제부턴지 가슴 속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 같고, 시리고, 아리고 뭐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늘 그랬어... 그런데 그 날, 갑자기 그런 기운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니까...

근데 평소에는 내가 문고리만 비틀어도 깨어나던 사람이 그 날은 내가 다가가도 그런 얼굴로 가만히 누워 있는 거야. 그제서야 난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알았지. 흔들어 깨웠더니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어....그렇게 한마디 말도 못하고 가 버렸지....산거와 죽은 거 차이가 종이 한 장이더라. 숨 한 번 끊어지면 모든 게 끝이라니....근데 이상한 일은 그 사람이 죽은 것을 알고 난 뒤에도 내 가슴 속에는 옛날과는 다른 딴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거야. 그래 그런지 쓸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덤덤한 것도 아니고....이런 게 뭔지 나도 처음 겪어서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난 아무르 강가에 서 있을 지도 몰라. 거기 하바로프스크까지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면 된다고 하는구나. 아무르 강이 그렇게 가까이 있는 강인 줄 몰랐다. 그게 흑룡강 줄기라며? 그래도 흑룡강이란 말보다는 아무르 강이란 말이 더 그럴 듯 하구만.  

그나저나 한 번 그 사람이랑 같이 가볼 걸 그랬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자기가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 아무르 강가에 사는 유목민의 딸로 다시 태어나고 싶댔거든. 그게 무슨 뜻인지 낸들 알겠냐만....하긴, 뭐든지 멀리서 바라볼 때가 좋은 거 아니냐. 좋다는 델 가 봐도 다 거기서 거기고, 사람도 가까이서 겪어보면 그놈이 그 놈이고, 그렇지 않드냐?”

  그 후로 당숙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한국에서도 당숙의 거취를 아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당숙은 가슴에 가득 차있는 그 여자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아무르 강변의 유목민들 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던 가슴 속 자리에 대신 들어찬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던 당숙은,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잠 못 들며 애타게 하고, 황홀하게 불타오르고, 그래서 우리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게 하기도 하고 또 죽게 하는 일인가를, 지난 추억마저도 왜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가를, 그래서 그것을 위하여 환생하고 싶어 하고, 또 영원히 살게 되기를 소망하는 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