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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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보라색 목도리

2011.01.15 12:01

최영숙 조회 수:1523 추천:246

  나는 목도리를 좋아한다. 한 여름 날은 아니지만 때로는 여름에도 목도리를 두른다. 사람들이 뭐라 하면 여름용 목도리라고 우긴다.

무심히 문학서재의 갤러리에 올린 내 사진을 열어보다가 같은 목도리를 두르고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목도리는 진보라색이고, 세 번을 휘어 감아도  번 묶을 수 있을 만큼 길다. 목에 감으면 부드럽고 따스하다.

더워서 답답해지면 풀어서 팔에 감거나 손으로 들고 다니기도 한다.
면사로 만들어진 목도리는 손안에서도 느낌이 좋다.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 마음까지 포근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때는 무의식중에 끝자락을 입에 넣고 잘근거리기도 한다.

내 얼굴이 갸름하다면 또 모를까,  둥글넓적한 얼굴 아래에 목도리를 칭칭 감아 놓으면 더 넓적해 보인다는 건 누가 지적 안 해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생목을 내놓고 바깥에 나가면 왠지 횅하고 쓸쓸해지니까.... 아무튼 꼭 해야 된다.

  외출 할 때, 두르고 싶은 목도리를 빨리 찾아 내지 못하면 나는 거의 이성을 잃는다.

어디 있어? 그거, 파란색, 아니 그거 말고 옥색에 가까운 파란 색, 그거 아니라니까!

옷장 속의 옷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이것저것들이 내 손에 잡혀 나와 방바닥에 널리기 시작한다.
그 지경이 되면  나는 다른 색의 옷으로  갈아입거나 아예 외출을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같은 색의 목도리를 여러 개 가지면 좋으련만 그런 호사는 여태껏 누려보지 못했다.

이게 언제부터 생긴 습관일까?

첫아이를 낳고 나서 참석했던 친구의 결혼식 사진 속에서도 나는 어김없이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손으로 뜬 황토색 털 목도리였다.
그 후에는 어머니가 계를 들어 여우 목도리를 장만하면서 오랫동안 곱게 쓰셨던 밍크 목도리를 내게 물려 주셨다.
가짜 눈이었지만, 진짜 같이 생긴 두 눈에 주둥이까지 달려있는 밍크 목도리를 넘겨주시면서 털에 화장품이 묻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말대로 밍크 목도리는 때를 타지 않아 변함없는 결을 유지하면서 부드러운데다 따스하기가 털목도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타부 향수 향이 배어있는 것도 좋았다.
목이 따스하면 온 몸이 따스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 목도리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아들이 그 목도리가 무섭다고 고개를 돌리며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갈수록 무서워하는 강도가 세어져서 나는 할 수 없이 밍크의 머리통 부분을 잘라버렸다.

바느질로 어떻게든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자신 만만했는데, 몇 날 며칠을 붙들고 씨름을 한 끝에 머리가 잘린 그것을 목에다 감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서 아쉽게 끝나버린 밍크 목도리와의 만남은 그렇게 부드러움과 따스함만 내게 추억으로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밍크 목도리의 감촉은 영 잊을 수 없었지만 강아지를 키우면서 나는 모피 목도리에 대한 동경을 버렸다.

살아있는 작은 것들의 눈이 얼마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아....인지 기능이 있는 그것들을 잡아먹고 껍질을 벗기고, 그러다 못해 그것들의 가죽을 목에 두르고 몸에 두르고 신발로, 가방으로 만들고.... 생각해 보면 인간보다 잔인한 종이 없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나는, 고 작은 닭 뱃속에다 찹쌀, 대추를 넣어서 팔팔 끓여 먹거나, 삼겹살에 된장이랑 와인을 발라서 바싹 구워 먹기도 한다...그러고 보니 좀 면구, 씁쓸하다.

  치기가 만만하던 이십대 초반, 나는 짧은 치마에 오색 줄무늬 반 스타킹을 자주 신었다. 그것을 색이 다른 짝짝이로 신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신었다가도 막상 대문을 나서지는 못했다. 짝짝이 패션을 이해하지 못한 가족들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기어이 해낸 일은 일곱 가지 무지개 색 플라스틱 팔찌를 손목이 아니라 팔뚝에다 올려붙이고 다닌 일이었다.

그러는 반면에 목걸이, 반지, 귀걸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방은 어머니의 묵은 한복을 잘라서 내가 직접 만들거나 털실로 떠서 들고 다녔다. 그래서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가방을 들고 있다는 나만의 자부심으로 캠퍼스를 탱탱 튀어 다닐 수 있었다.

흐음.... 생각해보니 그것인 것 같다. 짝짝이 양말, 무지개 색 팔찌, 화장품이 묻지 않던 밍크 목도리, 우단 가방, 털실 가방.
나를 한동안 자부심으로 살 맛 나게 만들던 장신구들이 이제는 모두 목도리라는 만만한 품목으로 결집되어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지금에서야 무지개 색 팔찌를 팔목에 하거나 양말을 짝짝이로 신으면 치매라 할 테고, 가방은 손으로 만들 열정이 없어서 힘들고....그렇구나, 그러니 목도리나 연신 바꿔 감고 다니는 거지.  

  요즘은 목도리도 유행이 너무 심하다. 하지만 나는 유행을 초월해야 한다.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깔끄러운 것은 피부가 못 견디고, 레이스가 달린 것은 간지럽다. 투박한 것은 목 앞부분이 높아져서 숨을 쉴 수가 없고, 프린트가 요란한 것은 옷을 맞춰 입기가 힘들다.

모피는 우리 강아지를 껍질 벗긴 것 같아서 끔찍하고, 털실 종류는 재채기가 난다. 첫 느낌이 차가운 것은 여름에도 그저 그렇고  원색은 보기에 좋아도 내 얼굴을 상대적으로 어둡게 만든다. 유명 메이커의 고유 문양이 들어있는 것은 보기에도 지루하다.

어떤 것은 질감에 따라 묶기도 하고, 두르기도 하고, 접어서 감기도 하고, 어깨에 걸치기도 하고 재킷 안에 넣어 입기도 하고, 넥타이처럼 매기도 하고... 아무튼 법석이다. 남들 눈에는 그런가보다 해도 그야말로 나 좋아서 하는 짓이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목도리는 보라색, 그것이다. 우선 색감이 깊고 풍부해서 좋고, 천의 질감도 좋은데다 빨아 널면 건조대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넓다. 그것이 또 맘에 든다. 머리를 푹 싸서 가리고 목에서 칭칭 묶으면 그야말로 사려 깊은 수사 분위기가 난다. 그냥, 뭐 내 기분이지만.

  게다가 양쪽 끝은 언밸런스로 마무리 되어 있다. 덕분에 묶으면 앞이 자연스럽게 늘어진다. 나는 조만간 옷감을 끊어다가 똑같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 파스텔 색으로 일곱 개, 아니면 흑백으로, 아니면 진보라, 연보라, 가지색, 바이올렛 색... 보라색으로만 여러 개를 만들까...

   앞으로는 목도리를 집안에서도 매고 있어야겠다.
내 삶이란 집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만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부심으로 탁구공처럼 탱탱 튀어 오르는 일이 가능하다면, 열 개인들 휘감지 못하랴....

  세상에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목도리를 연구한다. 가닥가닥 찢어서 다시 묶은 목도리, 단풍잎을 엮은 것 같은 목도리, 사랑하는 남자가 손으로 목을 감고 있는 것 같은 목도리, 깔때기처럼 목을 받쳐주는 목도리...

  비약이 너무 심했나.... 그렇군. 목도리를 가지고 자부심, 인생까지 어쩌고 한 것은 심했다.
그러니 이제 목도리를 풀고 인삼차나 한 잔 세게 타 마셔야겠다. 독감이 퍼지고 있다니.
아참! 목이 따스하면 감기도 안 걸린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