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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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사랑의 묘약

2011.10.30 22:51

최영숙 조회 수:1078 추천:209


<사랑의 묘약: 방상혁>- 서재 주인의 남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일이다.
어느 날,  이웃 친구 버나드씨가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겠느냐고 물었다.
포메라니안과 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너무 감당이 안 되어서 카운티 셸터로
보낸다는 말이었다.


“보내기 전에 자네한테 먼저 물어 보는 건, 자네 와이프가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
“그렇긴 한데, 내가 별로 안 좋아해서...하지만 한번 물어 보겠네”


나는 개를 기르는 것은 좋아한다.
단, 바깥에서 집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그러려면 저먼 셰퍼드나 알래스카 허스키 같은 종자가 적합하다.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딱 질색이다.

우선 위생적인 면에서 그렇고, 무엇보다도 야생인 개들을,
밖에서 마음껏 뛰어 다니게 안하고
집안에서 장난감 삼아 키우는 것은 개들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내에게 버나드씨네 강아지 얘기를 슬쩍 던져 보았는데
예상했던 대로 그 말에 반색을 했다.
“셸터에 가서 이주 동안에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데....”
라고 하면서, 푸들 종류는 털이 잘 빠지지 않고
성격도 온순해서 집안에서 키우기에 적당하다고,
우리가 입양하자며 졸라댔다.
내가 대답을 안 했는데도 며칠 뒤, 버나드씨가
그 강아지를 끌고 와서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아내가 얼른 말했다.


“강아지한테는 첫 번째 안아주는 사람이 주인이 된대요,
당신이 먼저 안아요!”
“사람 차암, 내가 왜 개 주인이 돼야 해?”
“질서를 잡아야지, 개도 무서운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아내의 강경한 태도에 나는 할 수 없이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강아지는 불안한 지, 주위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제 막 두 살이 되었다는 녀석은 가만히 살펴보니
흰색과 갈색이 약간 섞인 긴 털을 가진,
제법 귀여운 얼굴이었다.
강아지에게서 휘발유 냄새가 나서 물어보니
차고에서 키웠다고 한다.
공항택시 기사인 버나드씨는 가끔 차고에서 엔진오일도 교환하고
차도 직접 수리를 한다고 했다.

버나드씨가 떠나기 전, 그동안 키운 정 때문인지
선뜻 발을 떼지 못하고 선 채,
강아지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제트!”

제트라 불린 그 강아지는 버나드씨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하더니
오히려 앞발로 내 팔을 꽈악 잡았다.
제트는 주인에게 가기는커녕,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다시 버나드씨가 제트! 하고 큰 소리로 불렀지만
반응은 여전했다.

“말썽을 부리고 도망칠 때면 얼마나 빠른지 몰라.
그래서 이름을 제트라고 했지.”

버나드씨가 섭섭한 표정으로, 룩 앳 미! 라고 하면서
제트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러자 강아지가 내 품을 파고들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러는 바람에 녀석의 발톱이 팔을 긁어서 순식간에 상처가 났다.


제트의 몸에서 풍기는 가스 냄새를 견디지 못한 아내가
녀석을 목욕시키는 중이었다.
순간, 아내의 비명과 동시에 제트가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제트는 이를 드러내고 아내를 향해 곧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아내가 비누칠을 하느라고 꼬리 부분을 건드렸을 때였다고 한다.
제트가 늑대 같은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아내의 손을 물었다.
다행히 손에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힐끗 쳐다본 제트는 그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인지
비눗물을 사방으로 튀겨대며 자기 꼬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빠른 속도로 뱅뱅 돌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 꼬리가 아니라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꼬리를 물려고 악을 쓰며 몇 바퀴를 돌고 돌았다.
그러다가 헉헉 거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비눗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한 채 대충 목욕을
끝내고는 먹이를 주었다.
그럴 때는 아주 온순한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너무 반가워서 강아지를 쓰다듬자,
녀석의 눈매가 사나워지며 막내의 손을 물려고 으르렁대더니,
또다시 자기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돌며 미친 듯이 짖어 댔다.
온 식구가 겁에 질려 녀석에게서 물러앉았다.
첨에는 강아지가 긴장을 한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이 되자 더욱 예민해진 강아지는,
식구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으르렁대며
꼬리를 물려고 뺑뺑이를 돌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온순해 진다.
나중에는 근처에 누군가 다가가기만 해도 이를 드러내며
공격태세를 갖추는 바람에 모두 피해서 다니거나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큰딸은 다리를 물려서 피가 나기도 했다.
강아지의 얼굴은 처음 볼 때의 모습처럼 귀엽기는커녕
작은 늑대를 연상하게 했다.
그렇게 일주일 이상을 지내고나니 식구들이
모두 강아지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녀석을 할 수 없이 셸터로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아이들에게 통보를 했다.
그런데 딸아이들이 금세 눈물을 글썽이면서
절대로 안 된다고 가로 막는 것이었다.

먼저 주인에게 한 번 버림을 받았는데 두 번째 버림받는 것도
불쌍하고, 셸터로 가면 저애는 아무도 입양 안 할 테니까,
결국 안락사 시킬 것 아니냐고 극구 말렸다.


셸터로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할 수 없이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갔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제트는 멀미를 하는지 차안에다
먹은 것을 잔뜩 토해놓았다.

진단을 받아보니, 꼬리 부분을  
심하게 구타를 당했거나
아니면 다른 사고로 꼬리 부분에 어떤 나쁜 기억이 있어서
그곳에 조금만 충격이 와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하였다.
일종의 정신적인 불안증이라고 했다.

유심히 관찰해보니 나인이가 꼬리를 약간 들어올리기는 하는데
흔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꼬리뼈를 다친 모양이었다.


나는 버나드씨를 찾아가 제트가 꼬리를 물고 뱅뱅 도는 증상에
관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제트는 세 마리중 제일 활동량이 많아서
때마다 말썽을 부렸다고 한다.
울타리 대신에 전자센서를 설치했는데,
목에 걸고 있는 센서가 울타리 센서에 가 닿으면 전기충격이
오는데도 열심히 전자 울타리를 넘어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도 많이 맞았는데, 나중에는 안아주려고
해도 때리는 줄로 오해를 하고
어찌나 빠르게 도망을 치는지,
이름을 제트라고 지었다는 말이었다.

버나드씨는, 하지만 꼬리를 다치게 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전적인 증상인가보다 생각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제트는 소리만 질러도 질겁하고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증상이 있었다.
품에 안겨 있다가도 순간 크게 짖으며
안고 있는 사람의 손을 물고,
자기 꼬리를 저주 하듯이 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가라앉곤 하곤 하였다.

나는 아내의 말만 믿고 제트를 입양한 것을 후회했다.
끝까지 반대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선 강아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다.
제트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에게 이름을 공모한 결과, 나인이란 이름이 채택되었다.

가급적 나인이 주변에서 큰 소리를 자제하고,
변을 집안 엉뚱한 곳에서 보더라도 마치 말을
알아듣는 아이에게 하듯,
여기에다 하면 안 돼, 하며 다정하게 말하도록 했다.
이렇게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며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집밖으로 튀어 나가거나,
식구들을 물거나 하는 일들이 계속 있었지만,
나인이는 사랑의 묘약을 먹으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 하였다.



그 후로, 나인이는 기분이 좋으면
얼굴을 바닥에 비비며 재롱을 떨기도 하고,
조용한 시간에는 옆에 와서
저를 쓰다듬어 달라고 앞발로 내 팔을 슬쩍
긁으며 보채기도 했다.

그동안 보살핌 없이 구박을 받으며 자라던 나인이는
어느새 우리 집에서 왕자가 되어 있었다.

나인이를 밤에 혼자 두고 나가면 측은하다고
한 사람이 집에 남아 있고,
나인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이고,
춥다고 옷을 사 입히고,
바닥이 차가울까봐 전기담요를 깔아주기도 했다.

사랑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말 못하는 나인이가 사납던 얼굴까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식구들이 외출하려고 하면
기분이 언짢아져서 입매가 축 늘어진다.
기분이 좋을 때면 입모양이 작고 동그래진다.


아직도 꼬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여전하지만
횟수도 줄고 증상도 훨씬 가벼워졌다.
품에 안고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꼬리에 대한 나쁜 기억을 지우게 해주려고 노력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온 가족이 식구의 개념으로 나인이를 사랑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인이 아빠, 아내는 엄마,
딸들은 누나가 되고 아들은 형이 되었다.
이모도 있고 동생도 생겼다.
나인이는 신기하게도 이런 호칭들을 모두 기억했다.

가족 중 누가 밖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알아채고 집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푸푸 소리를 내며 현관과 방 사이를 오가며
연신 뛰어다니며 알린다.

우리 집에 온 지 6년이 지난 지금,
나인이는 가끔 심장장애로 호흡을 어렵게 내쉬고,
허리가 아픈지 꾸부정하게 자세를 하고
끙끙 거리며 괴로워하곤 한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너무 일찍 노쇠 증상이 나타났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매를 맞고,
계속 아픈 기억 속에 살다가 이제 잊을만해지니까
몸이 저모양이다.


의사는 푸들 종자가 특히 심장과, 호흡기,
그리고 척추 부분이 대체적으로 약하다고 하면서
호흡 곤란이 오면 지체 말고 데려 오라고 한다.

책을 보고 있는 내 옆에서
배를 주욱 깔고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있는 나인이!
언젠가, 그 수명이 끝날 때를 생각하면
다음에는 도저히 또 다른 개를 키울 자신이 없다.

그동안 식구처럼 우리들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고,
가족의 사랑을 온통 받고 있는 저 나인이를
먼저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 나인이와의 여러 가지 추억들이 생각나 가슴이 아파진다.

발톱에 긁혀 팔에 난 상처,
울타리를 넘어 차가 달리는 눈길로 달려 나가 버린 일,
딸애의 다리에 남은 이빨 자국,
하마터면 셸터로 보낼 뻔 했던 일,
집안에 온통 실례를 해대고,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달려들어 위험할 뻔 했던 일,

지나가는 셰퍼드에게 달려들다가 같이 산책 중이던
딸애가 대신 물렸던 일.

뒷마당에 나가 너무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에서 애니멀 컨트롤에 신고했던 일.

내게도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많지만
사랑으로 변해가던 나인이와의 시간들,

언젠가 그 추억만을 품에 안고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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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Young,

I am really sorry for the death of Nine. 
You really loved him to the end and I do 
sympathize with you, for I myself too lover of animal.
There is a hymn and based on its stanza, English vegetarian, James Herriot, wrote many lovely books on animal lives, which I enjoyed enormously reading together with Gail.

The hymn is praising God that He created all things:

"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
All creatures great and small,
And all things wise and wonderful;
The Lord God made them all."

God made them all for our pleasure, including Nine.
As I think of Monty, I praise God that He created him for our pleasure that Gail and I love him.

May God's love and comfort to you as you misses His creation, Nine.

"The wolf and the lamb will feed together,
and the lion will eat straw like the ox,
but dust will be the serpent's food.
They will neither harm nor destroy
on all my holy mountain."   Isaiah 6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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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이 저희 집에 오신 날, 외출 후 집 앞에 도착하니 
나인이 생각이 울컥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식구들이 오면 방울소리 울리며 계단을 뛰어내려와 
문앞에서 기다리곤 했는데....

엘크리지로 이사와서 살았던 십년 동안 집안에 하루도 나인이가
없었던 날이 없었지요.
아시는 대로 먼저 주인한테 학대받아서 사납기가 그지 없던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변화되었어도 아픈 기억을 지우지 못해서 애쓰더니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진 마지막에는 꼬리는 물론 
온 몸을 쓰다듬어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더군요.
저는 그래도  녀석이 마침내 맘의 상처를 치유받고
떠났다고 믿고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것들을 다 창조하시고 기쁘게 바라보셨을 테고,
마지막 날에 모든 만물을 회복하실 때에는 
이 땅에서 눈물로 이별했던 모든
사랑하는 자들을 데려오시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작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위로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성경구절 읽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최영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