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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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기억에 남는 모사방의 발걸음

2009.12.25 00:28

남정 조회 수:288 추천:64

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수녀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제 언어의 나무.

주님,
제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저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제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 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님,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 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제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내뱉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더 분별있는
사람의 말을 하게 하소서.

제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주님.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제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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