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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봄소식/입춘첩(立春帖)

2007.02.16 06:27

박영호 조회 수:317 추천:55





며칠 전 고향의 老母께서 직접 보내신 '立春大吉' 입춘첩(立春帖)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첫째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지요.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봄이 나무가지에 돋았습니다.
마당에도, 산기슭에도, 나무마다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나무가지가 겨우내 헐벗은 채 웅크리고 버틴 것은
온몸으로 봄을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한 안간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몰고 왔습니다.

2월 4일은 기나긴 동지(冬至)의 어둠을 뚫고
대지(大地)는 서서히 따스한 양기(陽氣)로 돌아서는
봄의 문턱인 입춘인 것입니다.
입춘은 사물이 왕성하게 생동하는 기운이 감도는 때이며
모든 것의 출발이고 또 한해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입춘(立春)을 맞이하는 때
집집마다 한해의 좋은 기운이 감돌아
경사(慶事)가 넘치는 정해년(丁亥年)이 되기를 빕니다.

옛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대문마다 입춘첩(立春帖)을 붙여서
한 해의 복된 기운을 맞이해 보십시오.
입춘대길(立春大吉)의 의미는 한해의 시작인 입춘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소망(所望)이며,
건양다경(建陽多慶)은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로운 일이
많으리라는 기원문입니다.

저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움츠렸던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희망의 어깨를 펴고 아파트 현관문에 '立春大吉'이라는 입춘첩을 붙여 봐야겠습니다.
그러면 더욱 가까이 따스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桐千年老恒藏曲
梅一世 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항상 거문고의 소리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습니다.
매화는 다섯 장의 순결한 백색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러나 꽃이 피면 오래도록 매달려 있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요?
매화 또한 덧없이 피었다가 지고 마는 것이
미인의 모습 같다고 하여
옛 시가에서는 미인에 곧잘 비유되곤 합니다.
절개의 상징인 매화와 댓잎을 비녀에 새긴 것이
매화잠(梅花簪)입니다.
머리에 꽂아 일부종사의 미덕을 언제나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축일에 부녀자가 머리에 매화를 장식(梅花粧)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모습에서 선비의 기질을 봅니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
그리고 매화(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로 즐겨 다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하지 않던가요?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매화(梅花)

白放天寒暮(백방천한모)
黃肥雨細時(황비우세시)
看兄一生事(간형일생사)
太早亦遲遲(태조적지지)

 - 강희안(세종 때 문신)

추운날 저녁무렵 흰 꽃이 벌고 가랑비 내릴 때
열매 노랗게 살찌내
매화의 일생을 지켜보건대
너무 이르고 또한 너무 더디누나.


매화는 벚꽃을 닮기는 했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상(靑孀)스럽지가 않습니다.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격조 있는 꽃이 바로 매화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장원 급제를 하면 머리에
매화를 꽂는 의식이 진행되곤 했지요.



고려시대의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며, 학자였던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 선생은
매화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고려의 국운(백설)이 다 기울어져 간 곳에
간신(구름)들이 득세하여 야단들인데,
반가운 매화(임금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지?(피었는가?)
참으로 답답하고 궁금하구려.
노년(석양)에 홀로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임금님을 향한 지조의 둘 곳을 찾지 못하네.

고려의 쇠망을 막아 보려고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세력을 저지하려다가 실폐하여 유배 생활로
여기 저기 전전하던 때에 매화를 임금으로 지칭하여 지은 詩라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은 매화 이야기로 '立春'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24절기의 첫째 立春을 맞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여기에 사용한 이미지는 지난 해 봄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제가 직접 담은 이미지와
  인터넷에서 고운님의 작품을 일부 담아온 것임을 밝힙니다.
* 배경 음악은 가수 불명의 '어머니 아리랑'을 직접 인코딩 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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