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시집 "설중매" 발문 <기영주 시인>

2009.06.13 23:03

정용진 조회 수:1204 추천:350



문학자료실


(발문)

설중매(雪中梅)로 피어 오른 시심(詩心)의 향연(饗宴)

기영주(시인. 미주문협 이사장, 의사)

수봉秀峯 정용진鄭用眞 시인은 1971년에 도미하였다.
지난 35년동안 농장을 경영하면서 시를 써오고 있다. 한때 농장에 장미나무가 6만여 주나 있어서 <에덴장미농장>이라고 부른다.
81년에 첫시집 <강마을>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5권의 시집과 2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미주문학상, 한국 크리스챤 문학대상 그리고 The International Library of Poetry와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에서 각각 상을 받았다.
한국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80년대부터는 미주문인 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미주 한국문인협회의 이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미주 문협 이사이고, <오렌지 글사랑 모임> 고문이다. 또한 <샌디에고 문장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근면함과 매사에 성심을 다하는 생활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에는 도전에 대한 호쾌하고 활기찬 반응이 나타나 있다.
정 시인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이다. 그의 고향사랑은 대단하다

산노을 붉은 이 저녁
신륵사 천년의 종소리가
여강 물결에 티없이 번지는데
오늘도
마암을 굽이돌며
한양을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저문 강물소리
      <조포나루> 부분

  다시 그의 고향 찬양 시 <영릉에서>를 보자.

여기는
경기 땅 여주 고을, 왕대마을
천년 노송들도
성덕을 기려
주야, 사시장철
고개숙여 푸르른데

미물(微物)
멧새들도
천지 사방에서 몰려와
ㄱ ㄴ ㄷ ㄹ
ㅏ ㅑ ㅓ ㅕ
나라 글을 익히네.

오늘도
임의 먼발치에서
미진(微盡)한 이 몸
훈민정음으로
시를 쓰는 기쁨이여.
    <영릉에서 부분>

《설중매雪中梅》는 정 시인이 고희를 맞이하여 펴내는 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집을 낼 때 몹시 아끼는 시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집에 집어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정 시인은 이 시집에 요즈음 쓴 시들과 함께 그가 아끼던 시들을 많이 포함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정 시인의 사상과 인간적인 솔직한 면을 볼 수 있는 시들이 많다. 이 시집의 맨 앞 <시인의 말>에서 정 시인은 ‘글은 곧 사람(文卽人)’이라고 했다.
이 시집에는 정용진이라는 사람이 들어 있다. 또한 이 시집의 이름을 설중매로 정한 것은 깊은 의미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아침
세한삼우歲寒三友
올곧은 선비의
지조志操로운 천품天稟으로
산가山家를 가득 채우는
설중매의 그윽한 향기
      -<설중매>의 마지막 연

정 시인은 근면한 농부이면서 선비 같은 지식인이고 순박하고 정겨운 시를  쓰는 서정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가정은 시인의 집안이다. 여동생 정양숙 시인. 남동생 정용주 시인이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집안에서 당대에 세 명의 시인이 나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나 이제 추계동秋溪洞
새 고향에 짐을 풀리라.

-<수봉 귀거래사秀峰 歸去來辭>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다.

부귀를 원하였으나
이 모두 부질없고
공명을 바랬으나 허사임을
이제 늦게 깨달았노라.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시간이 참 나의 시간이요
오늘 내 모습이 참 나 자신이로다.

고희에 이르러 인생을 바로 보고 그대로 정리하고자하는 시인의 고뇌를
우리는 보아야 한다.

첫째 묶음 <꽃>에는 24편의 시가 있다.
정 시인은 꽃에 대한 시가 많아서 백여 수가 넘는다고 한다. 어쩌면 모든    시인은 탐미주의자일 것이다.

  꽃이 되고 싶다
  청초하게 피어
  임을 기다리는
  그 마음
      -<꽃>의 첫연

  마음이 허전하기에
  빈 접시 하나를
  창밖에 내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더니

  이른 아침
  접시에 가득 담긴
  가을 향기
      -<추향秋香>의 부분

  미주로 이민 온 지
  어언 서른여섯 해

  새 싹이 돋고
  꽃이 필 때마다
  찬바람에 잎을 떨굴 때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기울였다
      -<무궁화꽃>의 처음과 끝부분


오늘 밤도
뜰 앞에
여름 달빛이 차다.

어머님의 무덤가에
쏟아지는
한여름 푸른 달빛.
     -<여름 달>의 부분

이민 일세들은 유랑민의 슬픔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둘째 묶음 <새소리>에는 시 20편이 있다




밤마다 꿈을 꾼다
꿈마다 호랑이를 만난다
걸음아 날 살려라
     -<<소품 6수> 중 삶>의 전문

바가지만한 귀를 세우고
틈만 나면
인내를 반추하는 소.

항상 멍에를 메고 사는
너는 무죄다.
    -<소>의 전문

자신의 설움을
털어내듯
두들겨 패는 방망이소리
때 묻은 죄밖에 없는 빨래들이
후줄근하게 몸을 푼다.
    -<빨래터>의 부분

종은
어떤 염원이
한처럼 쌓였기에
그 소리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흐느끼며 울려 퍼지는가.
    -<종鍾>의 부분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감사하노라
감동하노라
감격하노라.
   -<달력 한 장>의 부분

앞에서 이민일세는 유랑민의 슬픔을 체험하며 산다고 했다. 억울한 일도 있고 슬픔도 있어서 염원이 한으로 쌓이지만 이제 고희에 이르러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세 번째 묶음 <정情>에는 24편의 시가 묶여 있다.

산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죽음이란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떠나는 일이다.
    -<흔적痕迹>의 첫 연과 마지막 연

정 시인은 살면서 여섯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수필집을 펴냈는데, 이제 그 흔적 지우기 쉽지 않을 것 같으나 정 시인은 그의 산심山心, 곧 무심無心으로 지우리라.

네 번째 묶음은 여행 중에 쓴 시들과 한시들이다.
다섯 번째 묶음은 14편의 축시이다.
필자가 정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95년 5월, LA에서 있었던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 시낭송회에서였다. 한국에서 문병란 시인과 김준태 시인이 참석했고, 미주에서는 고원 교수, 이세방 시인, 장소현 시인, 정용진 시인, 그리고 필자의 시가 낭송되었었다.
정 시인과 나는 39년생으로 토끼띠이다. 그해 8월에 문인귀 시인과 정 시인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오렌지 글사랑 모임>에서 우리는 의기투합했고,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남가주에는 39년생 토끼띠 문인들이 여럿 있다. 문인귀 시인, 석상길 시인, 은호기 교수, 정어빙 시인, 조만연 수필가, 정용진 시인, 그리고 나까지 해서 7명의 띠거리가 있다. 어쩌면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 너무 길어졌나 보다.
정 시인은 사회참여시를 많이 썼다.
민주화운동이나 사회 참여시들은 시집<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 두고> 등에 많이 실려 있다. 이 시집 다섯 번째 묶음 <드리는 시>14수 중에서 열둘은 잡지나 신문에 실린 축시祝詩, 창간시, 또는 신년시 들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축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축시祝詩는 문학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자를 축하해주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정 시인에게는 특별한 재능과 열정이 있다.
‘미주 한인들 모두는/ 승리의 꿈을 안고/ 신대륙에 닻을 내린/ 코리언 파이어니어들……. 이렇게 시작하는 미주 한국일보 창간 38주년을 기념하는 축시<한얼의 종소리로 울려라>는 아래와 같이 힘차게 결론 짓고 있다.

이 푸르고 광활한 대륙에
한민족이 내일의
역사 창조의 주역임을 알리며
더 높고, 넓고, 멀리
한얼의 종소리로 울려라.
미주 한국일보여!

<오렌지 카운티 한인 이민 30년사> 발간에 부치는 축시<민족혼의 푸른 꿈을   심자>는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다.

  웅대한 백두산의 정기를 품고
  힘차게 달려 온 개척자들이여
  이 나라 이 땅에
  위대한 주인이 되자.
위의 두 시의 끝맺음에서 보듯이 우리 한민족의 후예들이 역사창조의 주역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이 되자고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온 손님이 아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이 땅을 개척하고 타 인종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 이 땅의 주인이 되고자 이 나라에 왔다.

여주신문 창간 12주년 에 부쳐서 쓴 축시도 있다.


우리들의
자랑스런 고향 여주는
성군 세종의 음덕이
세세연년 청솔로 살아 푸르르고
국모 명성황후의
애국혼이 넘쳐흐르는
천하제일의 복지.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대왕님표 자채쌀로 우리
모두는
육신을 강하게 키우고
백운거사 이규보, 목은 이색, 스승들의
문학정신을 가슴에 익혀
나날이 정진하기를 바라네.
<새 여주 창조의 횃불이되라>의 부분


이제 두서없이 쓴 발문을 접어야겠다. 이 시집을 천천히 읽으며 정 시인과 똑같은 서정에 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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