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峯 歸去來辭

2006.12.17 08:33

정용진 조회 수:886 추천:228

                        鄭用眞

나 이제 추계동(秋溪洞)
새 고향에 짐을 풀고 살리라
한 때는 온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날뛰고 방황하였으나
이 모두가 헛꿈이요
헛일이로다.

마음을 펴려 하여도
펼 자리가 없고
선을 행하려하나
악의 뿌리가 너무 깊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험한 인생의 밭을 갈면서
삶의 고귀함을 배웠고
이웃과 더불어 정을 나누며
후회 없이 살아보려고
동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서산에 황금빛 노을이 걸릴 때까지
땀 흘려 일하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애를 썼나니

그 어느 누가 나를 탓하며
내 누구를 원망하랴
부귀를 원하였으나
이 모두 부질없고
공명을 바랬으나 허사임을
이제 늦게 깨달았노라.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시간이 참 나의 시간이요
오늘 내 모습이 참 나 자신이로다.

내가 남을 향하여
웃음을 보내면
남도 나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내가 남을 향하여 얼굴을 붉히니
남도 나에게 화를 내는 구나.

나의
진정한 고향은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여주읍 가업리(稼業) 50번지
북성산(北城山)과 구곡산(舊谷山)이 마주보고
연하천(煙霞川)이
마을 심장을 굽이도는 황금들    
송진덩이 같이 찰진
자채쌀이 풍년인
청명한 땅 이지마는
하늘이 내게 명하여
San Diego County Fallbrook(秋溪洞)에
아브라함처럼 옮겨와서
아내와 함께 자식들을 키우며
시심(詩心)을 닦았나니
이 땅 여기가 바로
나의 새로운 고향이로구나.

나는 이 새 터전에
인생의 닻을 내리고
남은여생
창작의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며
후회 없는 삶을 엮으리로다.


내가 남을 탓하니
남도 나를 원망 하는 도다
어허!
이 모두가 빈 꿈이요
허영에 찬 가식이로다.

하늘은
땅을 향하여 빛을 발하고
산천초목들은 단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구나
철따라 백화가 만발하고
그 향기가 울안에 가득 하여라.

여름에는
곡식과 과목에
물과 거름을 주고
가을에는
주렁주렁 열린
과일들을 거두어 드리며
찾아오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리라.

그러나 나는
신륵사(神勒寺) 종소리가
여강(驪江)에 울려 퍼져
푸른 물굽이로 요동치고
백자를 굽는 학동(鶴洞)의
저녁연기를 잊을 수가 없구나.

어릴 때 벌거벗고 미역을 감던
고향의 정겨운 친구들
이제는 머리에 서리가 내려
하나 둘 이승을 떠나가고
어린것들이 미루나무처럼 자라서
눈앞에 가득하니
이제 무엇을 더 바라며 원하랴
참으로 가슴 벅차고
감사가 넘쳐나네.

떠나온 조국이 하도 그리워
문 앞에는 우리나라 국화(國花)
무궁화를 심었고, 울 가에는
산수유, 대추, 사과, 배, 밤, 자두, 포도, 앵두,
석류, 감, 오렌지, 레몬, 자몽, 목련, 개나리,
장미, 국화와 세한삼우(歲寒三友)를 심었도다.
이들이 철따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하며 열매를 맺으니
참으로 고향인 듯싶구나.

미주문협에서 문우들과 시심을 논하고
오렌지 글 사랑 모임에서 후진들의
창작지도에 힘을 쏟으니 이보다 더한
삶의 보람이 어디 있으랴

나 이제 새 고향에 머물며
미주의 문물을 더욱 익히고
성경을 읽고, 공맹(孔孟)의 덕을 쌓으리라

날이 맑으면 과원에 나가
과목을 다듬고
날이 흐리면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고전을 읽고, 시를 쓰면서
고금의 진리를 깨우치리니
내 고향 여주인(驪州人)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시심을 닮기를 원하노라.

나 그동안
한얼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심정으로
시를 짓고 글을 썼으며
동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꽃을 심고 과목을 다듬으며
농작물을 길렀도다.

추계동산가에는
봄에는 장미주가
가을에는 국화주가
숙성하여 향을 발하나니
함께 나누어드세나

천명이 다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의 육신은
Rose Hills Memorial Park
Adoration Meadow 3435-3,4에 쉬며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 주님을 섬기면서
영생의 축복을 누리고
밤에는 은빛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별을 헤이고
낮에는 태평양 넘어 떠나온
조국을 바라보면서
후예들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조국과 미국과 이웃을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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