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잘공

2009.07.01 22:49

정용진 조회 수:1185 추천:311

               정용진

조선조 말기에
미국 선교사 내외가
학교 운동장에서
정구를 치고 있었다.

전신이 땀투성이가 된 이들을 보고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종놈에게 시켜 치게 하시지
왜 손수 치면서 기운을 빼시오.

머리에 힘을 주면 선비가 되고
어깨에 힘을 주면 두목이 되고
손에 힘을 주면 박서가 되고
발에 힘을 주면 펠레가 되는데

내 나이 고희(古稀)에 이르러
담당의사가 운동을 권하기에
골프채를 들고 필드로 나섰다.
프로 골퍼가 렛슨을 시키며
마음을 비우고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은 공에만 집중시키고
여인을 다루듯이
아주 부드럽게 치세요.

무룹을 굽히라면
초등학교시절 담임선생님한테
벌스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별로 안 좋고
어깨를 돌리려면
몸통이 앞서 돌아가고
숨을 죽이려면  
기침이 먼저 터져 나오니
공이 엉뚱한 숲속으로 달아난다.
어쩌다 한번
총알 쏘듯 제대로 쳤다 싶었는데
공을 창작 패듯 두들겨 패시면 안 됩니다.
즉시 시정명령이다.

힘에 받쳐 농사를 그만두고
골프나 치려하였더니
이는 밭 갈기보다 더욱 어렵고 힘들다.
에라 나도 이놈을
머슴을 시켜 치게 하고 말까보다.

푸른 하늘
신작로처럼 펼쳐진 그린에
오잘공을 날려놓고
호기로이 걸어가는
백인 노인이 부럽다.

성성한 백발위로 내리는
저녁노을이 꽃보다 붉다.

ㅇ 오잘공 : 오늘 제일 잘 친 공
ㅇ 펠레 ; 남미의 축구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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