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버린 거울

2007.02.21 04:19

정해정 조회 수:1099 추천:38

  공옥숙 여사는 증기로 가득찬 뿌우연 목욕탕 거울을 손으로 닦았다.
  “ 야! 니가 정말 공옥숙이냐? 니가 진짜로?”
  거울 속 에는 탕 속에서 적당히 익어 분홍빛이 된 물기젖은 촉촉한 몸둥이가 육감적이다.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스믈스믈 여성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 혼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오똑한 콧대와 도톰한 아래입술,  거기다가 약간 꺼진듯한 눈은 여러겹으로 쌍커풀이 져 있어 매력적 이지만 어딘지 낯설기도 하다. 살짝 웃어봤다 콧등에 주름이 잡힐리 없다.
  공여사는 물이 뚝뚝 흐르는 몸둥이를 조심스럽게 커다란 타월로 감싸고 목욕탕을 나왔다.
  오늘 새벽에 LA 공항에 내렸을 장준호를 생각 한다. 밖에는 바람이 지나가는지 화장대 옆 유리창에 나뭇잎 하나가 날아와 창살에 걸린다.
  공여사는 옷장을 열었다. 죠지알마니 향수냄새가 확  얼굴을 휩싼다. 뭘 입을까. 은색 투피스를 입을까. 보라색 니트 원피스를 입을까 . 자기도 놀랠만큼 일년 사이에 비싼 옷들이 옷장에 가득 찼다. 공여사는 거울을 드려다 보면서 이옷 저옷을 옷걸이체 목에 대본다. 옷에 벤 라임향기가 코 끝에 스민다.
  오늘이 바로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장준호를 두번째 만나는 날이다. 정확히 십일개월 엿새 만이다. 공여사는 콧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만족한 기분으로 공여사는 혼자 중얼거린다.
  “미인은 아무꺼나 입어도 다 잘 어울려.”

  장준호를 알게 된것은 제 작년 가을 서울에 잠깐 나갔을 때 였다. 사촌오빠로 부터 소개받았다. 여고 일년 선배인 올케는 딸린 자식 하나 없이 낼 모래가 오십인데 재혼자리를 알아보라고 오빠를 졸랐다고 한다.
  올케가 서둘러 등을 미는 통에 공여사는 방배동에 있다는 <뭉크>라는 찻집을 찾아갔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화려한 크리스탈 샹데리아가 눈부시다. 먼저 와 있는 오빠는 저 쪽에서 손을 번쩍 들어 위치를 알린다. 부자집 거실같은 폭신한 소파에 유럽풍 실내장식이 잘 정돈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딘지 어색한 것은 마치 벼락부자가 된 촌 사람이 서양의 고급 파티복장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 할까
  공여사는 특유의 버릇인 고개를 약간 숙이고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평소 유머러스하고 성질 급한 오빠는 대뜸 말했다.
  “이쪽은 시집간지 육 개월만에 남편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과부가 된 내 동생. 공옥숙. 또 이쪽은 삼년전에 암에게 마누라 뺏기고 홀아비가 된 내 대학친구. 장준호. 이몸은 꽤 괞찮다고 생각하는 과부와 홀아비를 손가락질 했으니. 다음은 두 분이 알아서 자알 해 보시고……할말은 태산같으나 시간관계로 눈물은 머금고 이 몸은 그만 자리를 뜨겠나이다.”

  공여사는 자신의 외모중에 가장 맘에 걸린부분이 코다. 콧등이 내려앉아 자연 콧구멍은 위로 향했다. 거기다가 웃을 때 콧등에 주름까지 잡히니 이것은 도저히 치명적이라 해야 되겠다. 그런데 눈만은 약간 꺼진듯 하면서 여러겹으로 쌍커풀이 져 있어 까만 눈동자가 젖어있는듯, 슬픈듯 선해 보인다. 그렇지만 얼굴 중앙에 있는 코 때문에 눈이 제빛을 발휘하지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거기다가 피부가 하얀 편이라 얼굴이 더 넙적해 보이고 코가 더 들어나 보인다.
  공여사 몸매는 타고났는지 먹을것 구애없이 먹어도, 운동을 하지 않아도 전혀 군살이 붙지 않는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반바지를 입거나 무릎이 올라가는 치마를 입어도 보기에 전혀 흉하지가 않았다.

  공여사는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이 이렇게 놀렸다.
  “납작코. 빈대코.옥숙아 뭐 하아니…”  한패가 받아서
  “밥 먹느은다--”
  “무슨 바안찬—“
  “개구리. 아니, 빈대 바안찬__”
  이럴 때 면 공여사는 막대기를 휘젓고 돌멩이를 던지고 했지만 진짜로 화가 난건 아니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여고시절 이었다. 공여사가 자란 소 도시에는 남자 고등학교가 둘 여자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단짝친구들과 종종 들르는 빵집에서 일이었다. 빵집을 들어서자마자 한쪽 구석에 있던 한 패거리 남자 학생들 중 모자를 삐딱하게 쓴 녀석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이 쪽을 향해 주먹으로 자기코를 탁 치는 시늉을 한다.
“어이! 야구방망이로 한대 맞았냐? 야! 비온다. 우산 바쳐야 겠다. 내가 우산 사줄까? 빵강우산? 파랑우산? 찢어진 우산? 낄낄낄……”
공여사는 그날로 이불을 쓰고 누어버렸다. 집안식구들이 놀래서  묻는말에 입을 봉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모두들 자기코에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 거리는 꿈을 수 도 없이 꾸곤했다. 어느날은 자기코가 풍선처럼 부푸는 꿈도 꾸었다.
아무도 없는곳에 가서 자살해 버릴까.
일주일을 결석하고 학교에 다시 가기는 했지만 심한 우울증에 아주 다른 사람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후 오늘 까지 남앞에서 정면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습관이 베어 버렸는가 하면 도통 말이 없어저 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번 선을 봤지만 이루어지지 않은것도 코때문일꺼라고 지례단정지었다. 공여사는 점점 움츠러 들어 연애 같은것은 엄두도 못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공여사는 식구들이 서두루는 바람에 사촌오빠의 소개로 결혼을 했다. 남편은 고아나 다름없는 미술학원 선생이었다.
  결혼 초 였다.남편은 전라도 어느 섬에 스케치 여행을 떠나면서 함께 가자는것을 공여사는 때마침 입덧을 시작 했기 때문에 그냥 집에 남았다.
어이 없게도 남편은 돌아오던중 비행기 엔진 사고로 인연의 끈을 허망하게 풀고 영 가버렸다. 그 충격으로 뱃속의 아이는 자연유산이 돼버렸다. 공여사는 몸부림 치다가 이런 비극 까지도 자기의 납작한 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제는 결혼같은것은 절대로 하지않으리라고 굳게 마음 먹었다.
남편이 죽자 친정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하고 계약 결혼을 시켜 서둘러 미국으로 보냈다. 죽은 남편의 꽤 많은 보험금을 지참하고 왔지만절대로 그 돈은 건드리지 않고 영주권이 나올때 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식당 웨츄레스, 마켓 케쉬어, 당구장 카운터, 세탁소 잡부, 아파트 청소 등등… 여름에는 반바지 두 벌에 티셔스 몇장. 겨울에는 긴바지 두벌에 긴팔 몇개. 석달에 한번씩 풀리지않게 뽀글뽀글 퍼머. 다행히 피부가 고와 화장품 일라고는 밀크로션 하나, 이것이 전부였다.
주변에서는 ‘또순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모두 <꽁여사>라고 불렀다.
공여사는 영주권을 받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계약결혼한 남자와 이혼을 했다. 공여사는 그동안 미국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을 했고 돈도 모을만큼 모아 한인타운에 조그만 선물가게를 차렸다.공여사가 운이 닿았는지 가게를 내자마자 매일매일 한국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귀국선물 이랍시고 관광객이 한번 지나가면 가게가 텅 비워 버릴 정도로 싹 쓸어갔다.    
종업원 네명을 대리고도 돈은 눈덩이 처럼 불었다. 이럴때마다 공여사는 기쁨의 비명을 지르면서 펄벅의<대지>에서 세상을 휩쓸고가는 메뚜기 때를 상상했다. 관광객이 메뚜기 때로 보였기 때문이다.

해마다 날마다 호황을 보이다가 지랄같은 아이엠 에픈가 뭔가 하는것이 떠들어 대더니 메뚜기 떼들이 약을 친것 처럼 뚝 끊어 졌다. 가게는 늦가을 쓸쓸한 밤 처럼 고즈넉 했다. 장사는 하는둥 마는둥 하나로 줄인 종업원 에게 맡기고, 육년만에 첨으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달이 공교롭게도 공여사가 결혼을 한 달 이었다.정말 오래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남편 생각이 각혈하듯 울컥 목으로 넘어 왔다. 사촌오빠 집에 짐을 풀고, 다음날 덕수궁 근처 남편의 미술학원에를 가 보았다. 미술학원이 있던 자리에는 무슨 법률사무소가 몇개 들어앉아 있었다. 정동 길로 들어섰다.
아! 샛노란 은행나무 가로수는 아직도 여전히 그대로이고 노랑빛을 눈부시게 쏟아내고 있었다. 신혼초 남편이 학원을 끝내면 둘은 이 노랑 속을 걷는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들 곁을 지나가는 바람마져도 온통 노랑색 이었다.공여사의 귀에는 지금, 천성이 순하고 소극적이었던 남편의 목소리가 또렸하게 들린다. 아프게 가슴을 훑어 내린다.
“야! 이 노랑색. 이 노랑색과 당신의 눈이 어쩐지 어울려.언젠가는 꼭 노랑색 속에 당신의 촉촉한 눈을 그릴꺼야. 근데 이 노랑색깔을 낼 수 있을까? 하느님이 만드신 이 노랑색 깔을…”
그럴때 공여사는 얼굴에 빨간색 꽃 물이 들고 가슴이 터질듯 행복 하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한다. 지지리 못생긴 코가 화가인 남편한테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뭉크에서 오빠가 자리를 비운 다음 장준호와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공여사는 몸에밴 습관대로 장준호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아까 이곳에 막 자리에 앉을때 장준호의 보기좋게 오똑한 콧날과, 훤칠한 이마가 눈에 들어왔는데 뭔가 모르게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들고 있음을 어설프게 느끼고 놀란다.
장준호는 아들이 하난데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자 호주에 이민가 있는 처가댁에서 데려가 지금은 대학 졸업반 이라 했다. 장준호는 그동이ㅏㄴ 수출 박스 공장을 그럭저럭 잘 해왔는데 아이엠 에프 때문에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공장문을 닫고 지금은 쉬고 있는중이라 했다. 비교적 솔직하게 살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다음날 공여사는 엘에이 행 비행기를 탔다.
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요. 변동하는 것은 계획인 모양이다. 공여사는 오래동안 남자를 모르고 살았다.돈을 벌어 양로원 봉사나 하면서 일생을 보내는것이 목표였다. 자기 속에는 남자같은것이 들어올 틈이 없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지금 공여사 마음속에는 장준호라는 인물이 하나가득 찼을 뿐 아니라 매 초마다 새록새록 살아 움직인다. 자신의 마음속도 혼란스럽게 따라 움직인다. 거리에도, 땅 에도, 하늘에도 온통 장준호 뿐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사는 점점 시원치가 않았다. 가게를 샀으니 망정이지 요즘같아서는 랜트비도 못낼 형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통화를 하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장준호의 편지를 받지만 공여사는 답장 보다는 전화를 주로했다. 무슨할말이 그리 많다고 길고 긴 통화를 하지만 수화기를 놓는순간 또 아쉬워 진다. 한 번 본 장준호의 숨결이 그렇게도 그리운걸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 가고 싶고, 스물네 시간 내내 전화 통을 붙들고 있고 싶은 심정이다.
‘마음을 정했다. 결혼하자. 미국에서 살까. 한국에서 살까. 아니면 반반씩 살까. 보고싶네요. 오세요. 그래 갈께요…’
공여사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 부지런하고 검소한 성격은 어딜가고 아예 종업원한테 열쇠를 맡겨 버리고 늦으막히 출근한다. 같은 몰 안에 있는 헤어살롱 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샤핑도 가고 사우나에도 가고,이틀에 한 번 꼴로 맞사지를 받기도 한다. 이 무렵 공여사는 헤어살롱에서 눈섭과 아이라인에 타투를 했다. 미용사에게 눈섭과 눈을 맡기면서 바늘로 꼭꼭 찌르는 아픔 보다도 자기의 보배인 눈에 험이 갈까 봐 불안했다. 벌겋게 부운 반달 눈섭과 눈부위가 겁이 났으나 미용사는 괞찮다고 했다.  

미용실 손님이 뜸한 어느 수요일 이었다. 공여사는 맛사지 실에서 살구씨 팩을 하느라 누어 있었다. 갑자기 미용실 안이 왁자지껄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안면이 있는 미용실 단골손님 '비비안'이다. 자기가 젊었을 때 비비안리를 너무 좋아해서 대한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거푸 네번씩이나 봤으며, 미국에 이민와서 자기도 남들처럼 미국이름을 갖고 싶은데 마침 남편의성이 이씨라 두말할것도 없이 ‘비비안’이란 이름을 했다는 환갑이 넘은 여자다. 자식을 낳아 본 적이 없어 늘 자유로우며 어딜가나 시끌시끌 하고 재미있는 손님이다.
“야. 이게 누구야? 어떤 아가씬가 했네.누가 환갑넘은 노인이라 하겠어?”
“청년들이 졸졸 따르겠네.세월이 꺼꾸로 가는 모양이야.”
저마다 한 마디 씩 건넨다.
“그 동안 잘 들 있었냐? 허어 정말 젊어 보이냐? 나 커피 한 잔 다오”
비비안이 받는 소리다.
“6사실은 말이다. 석달전에 센 프란시스코 언니네 가서 주름살을 펴고 왔지. 티 안나냐? 머리 속에 금을 긋어 찢고  잡아 올렸어, 여러번 하다 보면 배꼽이 목까지 온데 낄낄낄…?
“뭐하러 그런 고생을 했어요. 요새는 볼톡스 주사가 얼마나 간단한데…”
“나도 모르는건아닌데 볼톡스는 육개월 밖에 안간다지않니…”
“아 어디봐? 그래서 이십년은 젊어 보이는 구나. 피부가 계란 껍질이야.”
“야.야 말도 마라 예날에 . 그래 옛날이지 십구년이 됐으니, 쌍커풀 수술을 하러가서 의사보고 비비안리 같이 해주세요 했으니 의사가 얼마나 비웃었겠냐? 히히.그것보다도 눈두덩에 반창고 부치고 누어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어디 다친줄 알고 기겁을 하지 뭐냐. 쌍커풀이 들통이 나 꼭 보름을 말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어. 답답해 미치겠대…”
“그래서요?”
“그럭저럭 부기가 빠지고 눈도 제자리를 잡아가니까 자긴들 별 수 있어?”
비비안은 커피를 마시는지 잠시 후에 다시 말을 한다.
“근데 말야. 코 수술 하고는 정말 이혼 당하는 줄 알았어, 남편은 노골적으로 어디 양코백이 젊은놈 하나 숨겨놨냐?. 니 코가 어때서 또 칼을 댔냐. 나는 니 얼굴 중에 코가 젤 맘에 들었다. 사실은 내 코가 약간 작기는 하지만 미운코는 아니였거던. 밥쳐먹고 그렇게도 할 지랄이 없더냐. 칼을 댄김에 아예 다 잘라버리지 그랬냐. 나가라. 당장 내눈 앞에서 꺼져버려!”
비비안은 흥분해서 목소리가 엄청 커진다.
“별의별 소리를 다 해도 나 죽여줍쇼. 하고 가만히 있으니 성이 안풀리나봐.  그때는 코 수술 한것이 약간 후회 되기도 하드먼.  근데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가니까 마누라 얼굴도 이뻐졌고, 남편 맘도 자연히 사그라지드구먼”
“에이그 못말려. 이번에는 암말 안해요?”
“하아. 이번에는 언니집 에서 석달이나 있으었으니 수술 한지도 몰랐단다.   떠억 보더니 당신 언니집 에서 잘 해줬나봐. 젊어졌어”
공여사는 이런 모든말을 침대에 누어서 다 들었다.
공여사는 퍼뜩 머리에 스치는것이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성형수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배우같은 특정인들만 하는것으로 알았으니까.
내. 코.코. 그래 장준호가 오기전에 내 코를 성형수술 하자. 내 일생을 망친 이놈의 코.코를 …
공여사는 자기의 오똑한 코를 상상한다. 하기야 뭐 성형수술이란 화장하는것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날 부터 이곳 저곳 성형외과를 알아보았다. 결국 헐리욷 배우들이 단골이라는 제일 비싸고 실력 있다는 의사를 골라 수술날자를 잡았다.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공여사는 ‘또순이’ 꽁여사’라는 별명을 스스로 벗어 버렸다. 놀라울 정도로 씀씀이가 헤퍼졌다. 특히 자기 몸에 부치는 것에는 물 불을 가리지 않았다. 헤어살롱에서 비비안으로 부터 엑서사리 보석도 한 웅큼이나 샀다.
공여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술대 위에 누었다. 무서워 몸에 쥐가난다. 참자. 장준호를 생각한다. 불안하다. 조금만 참으면 평생 원했던 오똑한 코가 생긴다. 참자…
콧구멍에서 부터 코 위 껍질을 걷어 오리고 뼈를 넣었다. 코도 눈도 입도 찾아볼수 없을만큼 온 얼굴이 풍선처럼 부었다. 일주일 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때 의사는 성공적이라 했다. 간김에 도톰한 입술을 만들기 위해 아래입술에 주사 두 방을 맞았다.입술이 불에 댄듯 부풀어 올라 내 것이 아닌것 같다. 간호원의 차차 자리를 잡을꺼라는 말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왔다.

공여사는 은색 투피스를 입기로 정하고 가슴에 흑진주 알이 다섯개 박힌 부로치를 달았다. 죠지 알마니 향수병 뚜겅을 열었다. 귀옆에 뿌리려고 어께를 들었다. 그때 부로치가 뚝 떨어졌다. 핀 마무리가 잘못되었나 싶어 주우려는데 진주알 두 개가 빠져 딩굴었다. 부로치를 바꾸어 달고 공여사는 하늘을 쳐다보고 커다랗게 심 호흡을 했다. 끝간데없이 넓고 파아란 하늘이다. 그때 바로 누군가 놓쳐버렸는지  분홍색 풍선 하나가 멀리멀리 외롭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여사는 지난달에 바꾼 하얀색 랙서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장준호와 약속장소인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이 십오분이나 남았다. 진한 커피색깔 육중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섰다. ‘엘칸도 파싸’ (철새는 날아가고) 멕시코 음악이 실내를 가득 매우고 있다. 공여사는 어항이 있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콤팩트를 꺼내 다시한번 얼굴을 점검했다. 괜히 얼굴을 몇번 토닥거렸다. 살짝 웃어봤다. 콧등에 주름이 잡힐리가 없다. 스스로 완벽한 미인이라 생각하고 얼른 장준호 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십 오분이라는 시간이 왜 이렇게도 긴 걸까. 공여사는 장준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일주일 예정으로 왔다니 어디어디를 구경 시킬까? 우리집에서 지내자고 해 볼까?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자고 하면 싫다고 할까? 우리 남은 인생 여행만 하고 살아도 다 못하고 살껄…
공여사는 눈을 아예 출입구에 고정 시켜 놓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문이 스윽 열린다. 카키색 바바리를 입은 장준호가 나타났다.
아! 어쩌나. 순간 공여사는 숨이 막히는 것도 같고, 오줌이 마려운것도 같고, 온 몸에 쥐가 나는것도 같다.
공여사는 손짓도 하지않고 온몸이 마비된 양 가만히 있었다. 스스로 찾아와 주기를 바라면서…
장준호는 카운터 에서 뭐라고 하는것 같더니 이 쪽을 흘끔 쳐다본다.아! 봤구나.  봤어.뚜벅뚜벅 걸어온다.피가 멎는듯 하다. 눈을감았다. 조용하다. 내 앞에 서 있겠지. 가만히 눈을 떴다.
없다.
두리번 거렸다.내 앞을 지나 어항 뒤쪽에 앉아 막 신문을 펴 드는 참이었다
장준호는 성형수술을 한 공여사를 몰라본 것이었다.
공여사는 자기도 모르게 용수철 처럼 발딱 일어났다. 장준호 앞에 섰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는다. 기어드는 작은 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 아- 안녕-하아-세 요오—“
장준호는 신문 너머로 눈을 치뜬다. 섬찟 놀라는듯 하더니 신문을 내려놓고 공여사를 조심히, 자세히 살핀다.
“저예요. 오옥수욱…”
“아! 아 네에. 아안 녕 하셨어요?”
순간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갑고 섬뜻한 선이 번개처럼 지나가는 것을 둘 다 동시에 느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둘은 똑같이 몹시 어색 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카사 브랑카’ 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먹는 둥 마는 둥. 산 타모니카에 있는 ‘문 셰도우로’ 자리를 옳겼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쉼 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린 만남 이었던가.
전화에서 처럼, 편지에서 처럼 똑같이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데, 어딘가 진이 다 빠진것 같은 푸석푸석함을 둘은 똑같이 느낀다.  그럭저럭 자정이 넘었다. 장준호의 고집으로 토랜스에 있는 친척 형님네 집으로 바래다 주고 돌아오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비몽사몽간에 수화기를 들었다.
장준호 였다.
공항이라 했다. 일주일 예정 이었는데 서울에 급한 일이 생겨 떠나니 다시 연락하마고 하고 짤깍 끊었다. 공여사는 맥없이 창앞에 섰다. 새벽 바람이 세게 부는지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어둠보다 더 짙은 한 뭉치가 되어 데굴데굴 굴러간다. 몹시 배가 고픈것도 같고, 온몸에 기운이 전부 스르르 빠져나가는것도 같다.

장준호의 편지를 받은것은 그로부터 두달 후 였다.

<공옥숙 여사께.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시대인데 성형기술 쯤이야 오죽 발달 했겠습니까?
요즘 거리를 나가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마내킹 미인들이 득실거려 너무나 싫었습니다.
이번에 공여사를 만나고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공여사를 처음 뵜을때 다소곳한 태도와 한국적인 코와, 웃을때 잡히는 콧등의 주름살에 끌렸던것 같습니다. 제가 아끼는 들 꽃에 누군가 화학약품을 쏟아 버렸다는 겁니다. 그 아름다운 들꽃이 플라스틱 꽃으로 변해 버렸네요.
많이 생각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울에서 장준호.

공여사는 헛개비 처럼 일어섰다. 거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반달 눈섭에슬픈 눈.
오똑한 코에 도톰한 입술의 완벽한 마네킹 미인이 표정없이 공여사를 보고있다. 화장대 위에 죠지 알마니 향수병을 들었다.
마네킹 미인을 향해 있는힘을 다해서 던졌다.

“쨍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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