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애비뉴의 비둘기들

2007.03.18 13:36

정해정 조회 수:1230 추천:39

옆자리에 양말을 다 펴놓고는 먼지털이를 들고 좌판을 탁탁 털면서 조지엄마가 부지런을 피우고 있다. 쌍꺼풀 수술을 한 눈을 빠르게 껌뻑이는 대로 큰 소리가 톡톡 튀어 나온다.
“쳇, 재수없어, 개시도 안했는데 어쩌자고 돈을 줘요? 흥, 밥먹으라고요? 저 거지새끼가 밥먹으라면 밥먹을줄 알아요? 원! 순진하기는. 이길로 약 사러 가요. 약, 마약!”
  마약 이라는 소리에 힘을 주며 어른이 애들한테 야단치듯 마구 나를 닥달 하고는 이번에는 소리를 약간 낮추어 양말을 정리하면서 말을 잇는다.
  “돈도 많네. 돈 많으면 자선사업이나 할 것이지 뭣 땜에 길 바닥엔 나왔어?”
나는 대꾸를 안하려고 아랫입술을 가만히 깨물고 고개를 숙였지만 조지엄마의 비웃으면서 흘기는 눈이 내 오른쪽 뺨에 따갑게 꽂혀왔다.
  내가 짐을 막 풀고 있는데 ‘썬’이 쓰러질듯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틀을 굶어서 배가 몹시 고프다고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미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달러 한장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밥 먹어라. 꼭 밥 먹어. 응? ”
이런 광경을 보고 조지엄마는 혼자 흥분해서 그렇게 말했던것이다. 나는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가슴으로 말한다.
‘허어! 돈이 많아서요? 아니지요. 조지엄마, 당신은 인간의 배고픔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나 있어요?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에요. 우리 자식들이 어느 낯선 곳에서 진짜로 배가 고팠을 때를 말이요.’
  나는 잠시 일하던 손을 멈춘다. 고개를 젖힌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언제부터였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 하는 버릇이다.
회색 빌딩 사이로 길다랗게 조각이난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때마침 은빛 작은새 같은 제트기가 하얀 금을 그으며 빌딩 사이로 사라진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 온지 육개월이 좀 넘었을때다.  나는 이민 온 직후부터 세탁소에서 잡일을 하다가 그 세탁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다음 일자리를 초조하게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코리아 타운 내의 식료품 가게에서 뜻하지 않게 옛 친구를 만났다. 어릴 적에 한동네에서 같이 자랐고 늘 소식이 궁금했던 친구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를 금방 알아 봤는데 친구는 나를 보고 잠깐 주춤한듯 했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뜨더니
“오매, 오매, 이게 누구여. 죽지 않고 상께 요렇게 만나는구먼. 잉”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반가워라 손을 붙들고 팔짝팔짝 뛰다가 일단 가까운 우리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구는 핸드백을 뒤적이더니 담배갑을 꺼내 한 개비 입에 물다 말고 급하게 말한다.
  “야! 첨 너를 딱 봤을때 깜짝 놀라면서도 긴가민가 했제. 여그서 너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몰랏응께.”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모금 길게 빤다.
  “그나저나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갑다. 하아, 대한민국 전라도 한쪽 귀퉁이서 태어나 이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까지 밀려와서 요렇게 또 만나다니. 어쨌든 출세 했당께. 하아,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여.”
금방 재가 떨어질것 같은 담배를 끼운 손가락이 겨울나무 가지 같이 엉성하다. 나는 친구의 손가락에서 그의 지나온 세월을 보았다.
  “그래, 정말 얼마만이야. 우리가 서울서 마지막 본게 70년대 초반인가. 그랬지? 너나 나나 애들이 아주 꼬맹이들이었으니까. 참, 그때 니가 미국 이민 수속중이라고 했던거 기억이 나. 명동 뒷골목 ‘훈목’ 다방인가 고향친구들 여럿이 만났지 아마.”
친구는 반쯤 탄 담배를 비벼끄더니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숏커트한 머리를 두어번 쓸어 넘긴다. 다시 약간 가라앉은 소리로 얘기를 계속한다.
  “너도 알다시피 내 나이 서른둘에 남편을 잃고 병아리 같은 두 새끼를 끌고 무작정 서울로 와서 살길이 아득허드란 말이다. 책 외판원에서부터 우유 배달, 보험 외무사원, 돈없는 과부가 그짓만 빼놓고 할 짓을 다 했어.” 그짓이라는 말에 우리는 똑같이 픽 웃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니가 미국 가서 재혼하지 않았나 했지.”
친구는 담배 한 대를 다시 문다.
“재혼? 찝쩍거리는 놈들이 더러 있기는 있었지만 혹이 둘씩이나 붙었는디… 나 좋자고 또 어뜬 놈이 애들까지 책임져 준닥해도 짠한 내 새끼들 눈치뵈게 헐수도 없어 한국서나 미국서나 혼자 몸으로 상상도 못할 고생 무지허게 했제.”
  “애들은? 아들만 둘이었지?”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를 비벼끄고 침을 한번 꼴깍 삼킨다.
  “그때 그 꼬맹이들이 지금은 둘다 대학생이여. 알량한 이 에미가 에미노릇도 못했는디 하느님이 대신 돌봐 주셨는지 공부를 곧잘 하드니 한 녀석은 보스턴에서 의과대학에 댕기고 한 놈은 뉴욕에서 회계사 공부를 하는디 두놈 다 여자친구도 생겼는갑드라.”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한다.
  “고맙게도 녀석들이 잘 커줬고, 나는 인자는 고생이 끝났는갑다 허고 생각 헝께 건강만은 자신 있었든 난데 웬지 몸뚱아리가 와그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몸은 한군데도 성한데가 없이 아퍼쌌고,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만 들어. 그럴때문 나한티서 진즉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든 눈물이 어디가 고여 남어 있었등가~.”
그는 클리넥스를 뽑아 휑 하고 코를 푼다. 나도 코허리가 시큰해져서 얼른 빈 커피잔을 들고 도망치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쟁반에 오렌지 몇알을 내왔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넌지시 말했다.
  “얘, 너 언제부터 이렇게 줄담배를...?”
  “하아, 이거? 유일한 내 애인이지. 애들도 몸에 해로우니 끊으라고 하지만 죽을때 죽더라고 나 이 애인 없으면 잠시도 못 살거야.”
친구는 쓸쓸하게 웃는다. 나는 다시 말을 바꾼다.
  “얘, 뭐라구? 지금 허무하다고 했니? 네 훌륭한 인생은 두 아이들 한테서 잘 결실을 맺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니가 주어진 인생을 거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대가야. 이게 바로 성공한 것이야.정말 존경스럽고 훌륭해.”
나는 약간 소리를 높여 말했다. 존경스럽고 훌륭하다는 대목에서는 진심으로 힘을 주면서.
  웬지 나는 이 친구 앞에서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내 얘기들을 터놓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나는 자초지종 빈 손으로 온 이민살이의 어렵고 막막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내 얘기를 다 들은 그는 자기가 이민와서 얻은 지론을 그럴듯하게 펴놓았다. 이 나라가 부자고 자유로운 나라지만 첨에는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고생을 해야만 그것이  밑천이 되어 나중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쉽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적 부터 나와는 달리 매사에 적극적이고 결단력이 강한 친구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를 만난 며칠 후 내가 생각해볼 틈도 주지 않고 버려진 고아의 보호자라도 된듯 어리둥절한 내 등을 밀다시피해서 다운타운에다 조그만 노점상 하나를 차려주었다.

나는 장사하고는 거리가 먼 가정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내 자신도 장사를 해본 경험도 없고 거기다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처지라 이 일이 이만저만 통 큰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장소는 남의 가게 뒤 담벼락 밑 거지들의 잠자리 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폐허처럼 돼버린 LA 다운타운이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하자 유대인들은 재빨리 가게 뒤에 줄지어 서있던 쓰레기통을 치우고 노점상 세를 놓았다고 한다.
  쓰레기통이 있었던 자리라 그런지 아침에 나와 보면 전날 음식 찌꺼기와 휴지 나부랭이, 담배꽁초, 빈 병, 빈 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내 자리가 어딘지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날마다 쓰레기를 치우고 좌판을 펴놓고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가방 도매점에서 주로 핸드백을 사다가 파는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아무리 둘러봐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었다.
“그래, 내가 나한테 가리는 것이야.” 하면서.
  먼지와 햇빛 때문에 핸드백을 털고 닦는 일이 장사만큼 힘들었다. 또 아침에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고 좌판에다 물건을 펴놓고, 저녁에는 가방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조심 보따리에 싸는 것이 장사보다 더 힘들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고 한참 동안은 손님이 내 앞으로 다가 오면 뒤로 물러서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님이 그냥 가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간혹 험상궂은 손님이라도 올 때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좌판 밑으로 숨어버렸다. 마치 거북이가 무엇엔가 놀랄때 등 껍데기 속으로 머리를 잽싸게 넣어버리듯이.

  언제나 다운타운의 새벽은 웅성거림으로 눈을 뜬다. 노숙자들은 지린내와 쓰레기속 에서 부스스 일어나고 비둘기들은 덩달아 아침이나 얻어 먹볼까 하고 땅에 내려앉아 종종거린다. 장사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 그리고 물 호스를 들고 자기 상점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 멀리서 가까이서 소매상들이 도매 물건을 사러 바삐 뛰고, 빵빵 거리고, 하면서 서서히 생동감이 번진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지린내위에 몇번이고 더 갈겨놓은  야릇하고 독한 냄새 때문인지 다운타운에 나오기 시작해서 상당히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머리만 멍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차차 시일이 지나면서 나도 제정신이 드는지 하나씩 하나씩 뭔가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가장 적응을 잘 하는 것이 ‘인간’이라 했던가.
제일 먼저 내 눈을 자극한 것은 수도 없이 많은 거지 들이었다. 다운타운에서 생활하면서 차차 알게된 사실이지만 부자나라 미국의 노숙자들, 이들은 집이 없어 길로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어쩌다 일에 실패해 가진것 다 잃고 가족에 의지할 수 없어 길거리 신세가 돼버린 사람도 있지만 한국전쟁을 포함해 몇번의 전쟁에서 몸이 불구가 됐거나 정신이 불구가 돼서 스스로 가족을 버리고 길고 나온 사람들도 있다.
  또 기억상실증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 취미로 가출한 사람, 구속된 삶에서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거리를 떠돌다가 알콜중독도 되고 마약도 접하게 되고 정신병도 얻게 되고… 이런 무리들이 노숙자들이다. 며칠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LA의 노숙자 수는 8만7천명이라고 했고 조사 결과 거의가 고학력자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요즘 한창인 시의원 후보 중에 노숙자도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오장육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기억력을 상실한 사람 중에는 혹 행운을 만나면 제정신을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프리웨이 에서 잘못 들어선 선을 바로잡는 셈이랄까.
  날이 밝으면 자기네들의 보금자리를 뺏긴 저들은 낮동안 어디가서 있다가 해가 지면 다시 돌아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브로드웨이면 브로드웨이, 메이플이면 메이플, 한길로만 똑바로 하루 종일 왔다갔다 한다. 그것도 어디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지 한시간이면 한시간, 두시간이면 두시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계 추 처럼 행인에 섞여서 어슬렁 거리며 지나 다닌다. 나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참 신기하게 생각이 됐다.

이런 다운타운에서 내가 '썬'을 처음본 것은 초여름이 막 시작 해서 인지 아침부터 투명한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이었다.
양말장수 조지엄마는 금방 개시를 했는지 달러 한장을 손에 들고 퉤! 퉤!하고 침을 뱉고 있다. 나는 조금 늦게 나왔기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때 스무살이 채 못돼 보이는 앳된 백인 청년이 다가왔다. 요즘 유행하는 허리에 차는 백을 만지작 거리더니 다음에 오겠다고 한다. 그는 꼭 끼는 청바지에 노란색 티셔쓰를 입었다. 몇권의 책과 헌 성경책을 노끈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있었다. 전형적인 아름다운 백인 청년이다.
  금발머리와 하얀색 얼굴과 노란색 티셔쓰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내 앞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물건을 고르러 다니느라고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넘겼다. 그는 다리가 아픈지 내 옆에있는빈우유상자에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아차! 그러고보니 이 청년도 노숙자대열의 새로운 한 사람 이구나.’  
나랑 눈이 마주치자 그가 웃었다. 웃을 때 앞니 사이가 약간 벌어지고 입술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간 것이 아주 순하고 예쁜 인상이었다. 그러나 하늘빛 눈에는 어딘지 불안하고 지친 표정이 스며있는 듯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는 내 앞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 지치면 내옆 빈 우유상자에 걸터앉아 쉬곤 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나와 익숙해졌다.
"훳츄어 네임?"
"썬~"
  12월이되면 열일곱살 이라했다.
그러면 지난달에 열일곱이된 우리 막내아들 ‘시몬’과 동갑이다.
'썬' 나는 멀거니 그를 바라다 보았다. 나는 엉뚱하게도 썬의 얼굴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의 부모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떤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우리 시몬을 낳았던 열일곱해 전 12월 어느날로 거슬러올라갔다.
미국. 숲이 우거진 어느 조촐한 병실에서 아들을 낳고 누워있는 젊은 여자와 침대 옆에서 붉은 장미 한 바구니를 들고온 금발의 그의 남편이 보인다. 남편은 아내 이마의 땀을 하얀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아들을 얻었다면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볼에 몇번이고 키스를 해준다. 그리고 둘은 아기 이름을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지어놓은 '썬'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그 병실 밖에는 하얀 함박눈이 천천히 내리고 있었면 더 좋겠다.

  손님이 와서 내 좌판을 두들긴다. 잠에서 깨듯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비둘기 한마리가 내 발 옆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오늘도 되게 뜨겁겠구먼!"
아침에 도매상을 둘러 서둘러 나갔더니 조지엄마가 물 호스를들고 궁둥이를 가볍게 흔들며 청소를 하고 있다.
  "안녕! 조지엄마 일찍 나왔네요. 웬일로 물청소를?"
의아한 얼굴로 내가 물었다.
"아…글쎄 말이요.  오늘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서 휴지를 줍고 있는데 뭐가 물크덩 하드란 말요. 이 거지 새끼들이 여기다가 밤새 똥을 한 바가지나 싸 놓고 휴지로 덮어 놓았지 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금세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런데 묘하게도 조지엄마는 평소와는 달리 화가 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굴 전체에 웃음을 가득 띠고 있는것이 아닌가. 조지엄마는 내 자리까지 물을 뿌려 주면서 작은 소리로 말한다.
  "오늘 매상은 세배가 넘을꺼요. 세배!"
손가락 펴보이며 활짝 웃기까지한다.
조지엄마는 이 기쁜소식을 전할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말을 한다.
  "거기도 가끔 이런 일이 있을테니 이럴 땐 복권 맞았다 생각하고 즐거운 맘으로 처리하슈~"
맙소사! 이 엉뚱한 문화권에서 엉뚱한 미신을 저토록 철저하게 믿다니, 더구나 나보다 열살이나 젊은 여자가. 나는 아찔했다. 매상이 세배가 아니라 세배가 줄어도 좋으니 제발 이런 일이 내 자리에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말이요. 집 주인보고 수돗물 좀 틀어 달라고 사정사정 했지 뭐요. 내 더러워서. 자릿세 받아 처먹고, 수돗세는 아깝고, 누가 유대인 아니랄까 봐 지독하니까. 정말."
지독하다는 말을 할때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면서도  주머니에 들어 올 달러를 상상하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어쨋든 덕분에 나도 모처럼 물청소를 한 개운한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나는 좌판위에 물건을 보기좋게 늘어놓고 보온병에서 커피 두 잔을 따라 한 잔을 조지엄마 한테 건네며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만약에요. 아침에 우리가 나왔을 때 말이요. 저 사람들이 그때까지 자고 있으면 어쩌지요?"
아침마다 다운타운으로 나오면서 쉽게 보는, 아직도 길에서 뒹굴며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떠올리며 조지엄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닌게 아니라 해가 늦게 뜨는 겨울철 에는 그럴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럴 땐 말이요”
조지엄마는 방금 내가 건네준 커피잔을 양말사이에 끼워 놓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연극 하듯이 설명한다.
  "그럴 때는 이렇게 돌멩이를 막 던지거나 긴 막대기로 꾹꾹 쑤시면서 이 새끼야, 일어나, 빨리 일어나,빨리, 이새끼야 하고 크게 소리지르면 슬금슬금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가요."
높은데 물건을 걸고 내리는 (끝에 쇠붙이가 붙어 있는) 긴 막대기를 들고 꾹꾹 쑤시는 시늉을 한다.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몸살 났을 때도 있을것이고, 늦잠을 자고 싶은 날도 있을텐데..."
  "늦잠이요? 늦잠 같은 소리하시네. 그 새끼들을 사람 취급하다 언제 돈 벌어요?" 조지엄마는 립스틱이 묻은 커피잔을 손으로 닦으며 계속 말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 같은 말씀만 하시는데 첨엔 나도 그랬어요. 좀 더 이 바닥에서 살아봐요. 돈만 생긴다면 열번 백번 유다스로 둔갑해도 모자랄껄요. 그때 가서는 틀림없이 조지엄마가 한말이 다 옳았다고 할거요."
  나는 한 장소에서 낮에만 사는 사람과 밤에만 사는 사람중 누가 주인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낮에는 행인에섞여 묵묵히 어슬렁 거리면서 어두워 지기만 기다리는 그들은 해가 저도 자리를 비키라고 돌을 던지지도 않고 막대기를 쑤시지도 않을 것같은 순한 그들의 눈동자들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뭔지 모르게  쓸쓸했다.

그러던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인타운 에서 식당을 하는 친척 집에 볼 일이 있어 잠깐 들른 적이있었다. 나는 주인을 만나러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흑인 남자 한사람과 히스패닉 여자 한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친척과 나는얘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친척은 그들을 쳐다볼 때 눈도 바로 뜨지 않았다. 그들에게 일을 지시 하는데도 말끝마다 '시팔' '시팔' 하면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상스런 욕을 퍼붓는 것을 보았다. 내가 듣기에는 친척이 그들에게 퍼붓는 말이 식당 주방일을 지시하는 평범한 내용이다. 하등에 욕이 필요없는.그런데 노예처럼,아니 그 보다 더 심하게 멸시하면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귀는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눈은 바로 보일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친척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시간당 최저임금은 받나요?"
"뭐요? 최저 임금을 주려면 뭣 땜에 저런 새끼들을 써요? 영주권이 있는것들은 몰라도 태반이 영주권이 없는것들이니까 최저임금 반만 줘도 줄을 서요. 저런 새끼들은 사람 취급할 필요도 없고 오래 쓸 필요도 없어요."
언젠가 TV 다큐멘타리 프로에서 본일이 있다. 미국 이민 초창기에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듯 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 조지엄마가 흑인 손님 한테 양말을 팔고 거스름 동전을 흑인 손이 징그럽다고 좌판위에 던지는 모습도 겹쳐서 떠 올랐다. 오래도록 이 광경들이 내 머리속에 남아서 여름인데도 나는 한기를 느끼며 쓸쓸했다.

세월도 쓸쓸하게 흐르고 있었다. 썬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행색이 초췌해갔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탓이겠지만 며칠도 안됐는데 등에 멘 책들은다어디다 팽개쳤는지 없어졌고 옷은 남루할대로 남루해 갔다.
얼굴도 군데군데 상처가 난데다 땟국이 자르르 흘고 눈은 축 쳐졌다. 걸음걸이 마져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렸다. 마치 강한 햇빛에 연한꽃이 금세금세 시들어 버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빨리 돌아가는 필름의 화면을 보는 것도 같다.
그는 내 앞을 지날 때면 꼭꼭 인사를 하곤했다. 그럴 때 마다 행색과는 상관없이 양쪽 입술끝이 살짝 올라가며 앞니 사이가 약간 벌어진 이쁜 입술은 그대로였다. 웬일인지 나는 썬의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히틀러와도 같이 한 손을 번쩍 들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칠줄도 모르고 왔다갔다하는 키가 큰 콧수염.
커다란 검은 색 풍선을 불어 놓은듯 한 집채만한 큰 덩치에 옷은 있는대로 겹쳐있고, 주렁주렁 헝겊을 머리에 달고,그무게에 눌려 뒤뚱거리면서도 열심히 지나다니는 흑인 뚱보가 내 눈과 마주치자 한 쪽 눈을 찡긋한다. 새끼줄 처럼 여러 갈래로 가늘게 땋아내린 머리에 졸랑졸랑 달린 핀들까지 함께 떡이 돼버린 까만여자가 아무거나 가르키며 이것이 비닐이냐? 가죽이냐? 묻는다. 그냥 아무렇게나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입을 열어본 적이 없는듯 꽉 다문 입과 초록색 눈으로 땅만 보고 걷는 잘 생긴 구레나룻, 왕년에 유명한 영화배우 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특별한 볼일이나 있는듯 열심히 왔다갔다 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를 연상케 하는 남자.
내가 아침마다 좌판에다 장사 준비를 다 해놓을 시간이면 어김없이 낡은 카트 끄는소리와 시궁창악취와 휘파람소리가 묘한 하머니를 이루며 내앞을 휩쓸고 지나간다. 몇 블락 건너에 있는 꽃 시장에서 오는듯 카트에는 축쳐져버린 오만 잡동사니 꽃들이 넘치도록 실렸다. 이 남자는 목에서부터 가슴, 어깨까지 용의 문신을 한 비교적 젊고 건강한 사람이다. 만신창이가 된 꽃들이 머리채를잡혀 끌려다니는 창녀와도 같다. 이들 모두가 한동네 다정한 이웃인양 모두 반갑다.

나는 장사보다도 이들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서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다 이들 중 누군가 한참동안 보이지 않으면 그 사이 죽었을까. 아니면 병원에 실려갔을까 슬그머니 궁금해 지기도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길이 없지만) 그들은 어쩌다 자기가 다니던 길을 놓혀버리면  예전의 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로스앤젤레스 스트릿이나, 피코 나. 다시 한 길 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을 또 기약도 없이 게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속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비둘기 일지도 모른다.

다운타운 주변에는 유난히 비둘기들이 많다. 먹을 것이 넘치는 이 땅의 비둘기들은 통통 하게 살도 찌고 윤기도 반지르르 흐른다. 동그란 신호등 안에서 쉬다가 불이 들어오면 불빛에 비둘기 모습이 새까맣 게 되 그 선이 그림처럼 아주 곱다.
언제부터 였는지 나는 이곳에 나온 후 비둘기를 보면 발가락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동물의 천국이라는 이 나라인데 비둘기들의 연하고 빠알간 발가락들이 성한놈이 하나도 없이 죄다 뭉그러졌다. 어떤 놈은 숫제 발가락 이하나도남지않고 발목만 있어 마치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됐을까?’
처음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그럼 밤에 전깃줄을 잘못 밟아서 일까? 먹이를 잘못 먹어서 일까? 어느날 다운타운에서 십년을 넘게 바느질을 하고 있는 친지가 들렀길개 나는 발 밑에 종종거리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궁금한 이 사실을 물어봤다.
“그거요? 비둘기 발가락이요? 잠 잘때 쥐란 놈이 뜯어먹어서 그래요”
. 친지는 아주쉽게 대답해 주는데 나는 섬뜩 했다. 가끔 내 좌판 밑으로 휙 지나가는 강아지만한 쥐가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비둘기들에게 하루 중 제일 한가한 오후 세시쯤 깨끗한 모이를주리라고 마음 먹었다.
한 이틀쯤 지나니까 그 시간을 용케도 알고 어디 가 있다가 모여드는지 내 주변에 수도없이 많은 비둘기가 내려앉아 종종거린다. 행인들이 걸어갈 틈도 주지 않고 그야말로 비둘기 밭이 된다. 나는 조지엄마 눈치를 보면서 이들에게 가만히 말한다.
“이 녀석들, 소문도 빨리도 냈구나. 더 이상 소문 내지 말아라.나 복잡해. 알았지?”
그리고 나는 다시 중얼거린다.
“이 풍요로운 땅에서 발가락이 뭉그러진 것이 어찌 너희들 뿐이랴! 노숙자도, 이민자도, 썬도, 나도 다 너희같은 발가락이 뭉그러진 비둘기란다.”

많고 많은 노숙자들 중에서 썬과 나는 점점 친해졌다. 햇빛에 금이간  가죽 허리백 을 썬에게 주었다. 다리가 아프면 언제라도 쉴 수 있게 우유상자를 내 옆에 항상 비워 두었다. 이따금 아침에 점심을 사두었다가 주기도 했다. 나는 썬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막내아들 시몬에게 편지 한장을 쓰도록 했다.
  <<썬, 너의 집이 어딘지, 네가 누군지 나는 알고 싶지 않다. 웬지 나는 너를 볼 때 마다 어딘가 에 있을 ‘썬’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너의 부모가 생각나는구나. 이 세상 어디서든지 네 이름처럼, 태양처럼, 밝게 살 수 있는 날이 네 자리로 돌아가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그날이 어서 빨리 오도록 하느님께 기도하겠다. 신의 가호가 있를…>
  나는 썬에게 쓴 편지를 성경책과 함께 먼지가 끼어 재껴놓은 가죽 배낭에 넣어서 슬며시 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중 금요일을 정해 작은 달러를 주마 했다. 그랬더니 요녀석, 그 후 금요일이면 나보다 먼저 나와서 달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치빠른  조지엄마는 발밑에서 종거리는 비둘기들을 신경질적으로 쫓으며 또 흥분한다.
“아이구 저놈 좀 봐라. 주인보다 먼저 수금왔네.거지새끼들은 꼭 저런다니까. 떽! 저리가! 재수없어.개시나 하거든와! 나중에 와!”
오른쪽 발을 땅에 탁탁 치면서 썬에게 소리질러 쫓고는 나를보고 노골적으로 뱉는다.
  “성인이 따로없어! 못 말려.정말.”
고개를 숙이는 내 귀에는
“흥! 주제파악이나 해라. 웃기는 여자 야.” 하는 소리로 들린다.
썬의 몸은 날이 갈수록 더 엉망이 돼가는 듯 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은 썬에게 향한 내 마 음이 텔레파시로 전해졌는지, 무언가 알수 없는 생기 같은 것이 솟아나는 듯 느껴졌다.
썬은 세수도 말끔히 하고 머리에 물을 묻혀 가지런히 뒤로 넘겨 하나로
묶었다. 이럴때 금빛 머리가 햇빛에 반짝이고 알맞게 튀어나온 뒤통수 모양이 보기 좋았다.
눈은 호수처럼 파랗다. 썬 은 어디서 몽당 빗자루를 가져와서 내 주변을 쓸어주기도 했다. 빗자루는 낡고 썬은 기운도없어 담배꽁초 하나도 쓸어지지도 않고 헛 손질만 하지만 내가 고맙다고 하면 썬은 아주 좋아  했다.

토요일이었다. 시몬이 엄마를 도와 주겠다고 다운타운에 나왔다.
그때 마침 썬이 와서 하이! 를 하게 됐다. 동갑인 그들은 우유상자에 걸터 앉아 콜라를 마시며 오래도록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프리웨이 자동차 속에서 였다. 계속 우울하게 앉아있던 시몬이 입을 열었다.
“엄마, 썬이 너무 불쌍해요. 나는 핸들을 쥔채 앞을 보며 시몬의 말을 받았다.
“어떤 이유가 됐던 간에 어른도 되기 전에 부모와 집을 잃어버리고 길바닥 신세가 됐으니 인간으로 그 이상 불쌍할 수가 또 어디 있겠니? 왜 썬이 뭐라디?”
“엄마. 그 세계에서도 텃세가 심한게 이만 저만 아닌 모양이야. 썬은 어떤 남자가 친절하게 굴길래 가까이 했더니 그 사람은 잠잘 때 자기 몸을 구석구석 더듬고, 너무 무서워 피하려고 하면 때리고 그 남자한데 진 빚이 불어나 갚지 못하니까 비위를 맞추느라 하자는 대로 하고…”시몬은 기가 막힌지 잠깐 슬슬 노을이 내리고 있는 차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말한다.
“엄마. 썬이 팔뚝에 난자한 주사자국도 보여주고,아직도 가슴복판에 피고름이 엉겨있는 칼자국도 보여주고요. 상처 투성이인 다리도 보여줘요. 엄마.”
시몬은 지금 눈앞에 그 광경을 보고 있기라 고 하는듯 오만상를 찌푸린다.
‘아, 그래서 썬은 두 어깨를 안으로접고.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었구나.’  
“엄마, 썬은 밤이 지옥같이 무섭대요. 밤새 귀찮게 구는 힘센 그 남자도 남자지만 음식찌꺼기와 피고름 냄새를 맡고 벌떼같이 모여드는 쥐 떼 들이 더 무섭대요. 이 말을 할 때 썬은 몸을 부르르 떨어요.”
시몬도 몸을 부르르 떤다.
  “엄마, 썬이 나보고 너는 좋은 엄마를 가져서 행복하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엄마가  어딘가에 있기는 있을텐데 통 생각이 안난다고 해요.”
이 말을 할때는 눈물이 글썽이더라는 시몬의 얘기를  들으면서 썬이 졌다는 빚을 내가 갚아주리라고 마음 먹었다. 나는 옆 자리에 앉아 차창 밖만 멀거니 바라보고있는 시몬의 옆 얼굴은 아직도 솜털이 남아있다. 보송한 옆 얼굴을 의식하면서 말했다.
“시몬, 이거 봐라. 이 많은 차들이 다 자기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칫 길을 잘못든 차도 있다는 생각은 안해? 나는 말야,프리웨이를 달리면서 우리 인생길 하고 비교해 볼 때 가 있어.신호등 없는 이 길을 잘못든지도 모르고 그냥 가기도 하고, 혹 알았더라도 다시 바로잡 기가 정말 어렵단 말야.”
  짙은 주홍빛 노을이 아스팔트 위에 가득히 깔려 있었다. 그리고는 착잡한 우리 모자를 깊숙히 빨아드렸다.
                  
웰페어가 나오는 날이 임박하면 씻은듯이 손님이 없다는 사실을 터득하지 못하고 조지엄마가 가르쳐 주어서야 알았다. 조지엄마는 아침부터 손님이 없으니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에 썬이 왔다. 나는 썬에게 은밀하게 돈을 건네고 싶었다. 조지엄마가 올까봐 급한 나머지 미처 잔돈을 챙기지 못하고 큰 돈 석장을 주면서 빚 갚고 나머지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예상을 못한 썬은 눈을 크게 뜨며 고맙다고, 알았다고, 꼭 그렇게하마고 했다. 연신좋아라
“땡큐 맴! 땡크스 얼랏!”을 연발했다.
나는 조지엄가가 오기 전에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절뚝 거리면서도 금발을 나풀거리며 뛰어가는 그의 뒷 모습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생기를 처음으로 보았다.
                  

다음날도,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썬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서글 펐다. 허전했다. 춥고 쓸쓸했다.
나에게 노점상을 차려준 친구는 그 무렵 작은 아들이 있는 보스턴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떠 났다. 친구가 떠남으로 나는 혼신을 다해 기대고 버텼던 바위가 순식간에 부서져 버린듯한 느낌에 감당할 수 없는 허망함 속에 빠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썬이 나타나지 않은 충격은 거기에 비할 수 없 는 더 큰 허망함 이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언어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니야. 내 영어가 서툴러 떠듬 떠듬했던 것을 선이 잘못 알아 들었을까. 큰 돈을 건네준 내가 백 번 잘못이지. 아예 모른척 돈 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가. 힘센 남자가 몽땅 뺏어가 버려서 나에게 잔돈을 못갚아 나타나지 못 할지도몰라.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면서 날마다 애타게 혼자서 썬을기다렸다.                  
조지엄마는 새로운 사실이나 발견한듯 예의 쌍꺼풀 수술을 한 눈을 껌벅이며 고소하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기까지 한다.
“요새 썬이 안보이는건 틀림없이 마약으로 폴리스 한테 붙잡혀 감옥이나 병원으로 실려간 것이 틀림없어. 섭섭하긴 하겠지만 돈이 많이 세이브 되겠네요.”  
슬쩍 웃는 건방진 얼굴이 어쩐지 보기 싫어 내 발밑에 목발짚고 종종거리는 비둘기 들에게 팝콘 몇 알을 뿌려 주었다.

  친구가 내 곁을 떠난 허전함에다 썬마져 떠난것이 겹쳐 여름막바지를 발악하는 인디언 썸머 가 내게는 유독 불도가니 속을 허우적 거리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나기 시작한 어느날이었다. 나는 좌판 위에 핸드백을 나란히 정리해 놓고, 등을 돌리고 담벼락에 가방을 걸고 있었다.
  “ 도둑이야~~”
별안간 조지엄마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내 뒤통수를 쳤다. 나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내 좌판이 휑하니 몽땅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질겁을 한 조지엄마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보니 저만치 여자 한사람이 낀 일당 세사람이 커다란 검정 쓰레기 봉 지를 들고 반 뛰는 걸음으로 그러나 유유히 가고 있었다. 얼른 보면 세명이 사이좋게 조깅 하는것처럼 보인다. 조지엄마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에  지나가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모두 그쪽을 보고있었다.
  나는 순간 강한 전기가 지나간것 처럼 팔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내 가슴은 지금 저 좌판 처럼 텅 비어 있는데 어디서 방망이질을 치는 것일까. 또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것은 주체할 수 없고 그저 남들과 같이 멍청하 게 그쪽을 바라볼 뿐, 속수무책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 눈옆을 슬쩍 스치는 물체가 있었다. 행인들을 비집고 그쪽으로 뛰어가는 사람이었다.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뛰는 그 사람을 자세히 보려는 순간 어느틈에 자동차가 가려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것이 좀처럼 가라앉지가않아 허탈하게있는데 조지엄마가 코를 벌름거 리면서 거기다가 침까지 튀기며 흥분에 못이기는듯 숨이 찬 소리로 말했다.
“저놈들이 삼인조 도둑놈 들인데 왜 언젠가 얼굴 익혀 두라고 내가 일렀잖아요. 이런 일을 세번 이상 겪어야 이 바닥에서 살 자격이 있대나...나도 양말을 몽땅 도둑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녜요. 한번은 어찌나 약이 오르든지 에라,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한번 죽지 두번 죽냐 하면서 쫓아갔죠. 죽어라 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양말봉지 를 빼앗았더니 그놈이 말이요 태연하게 웃으며 껌을 짝짝 씹고 있는 옆엣 놈을 가리키며
‘히즈 쟙’
하면서 낄낄거리드라구요. 이 바닥에서 버틸려면 보통 배짱으론 어림도 없어요. 그리고 저 새끼들은 도둑질이 부끄럽다거나 잘못이라는걸 몰라요. 들키면 물건을 돌려주고 오분도 안되서 이 앞을 지나가며 하이~ 하고 웃으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런저런 꼴 다 봐도 어쩔 수 없죠. 아무튼 내가 조심하는 수 밖에 없어요.”
조지엄마는 아직도 떨고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여늬 때와 달리 아주 부드럽게 말하면서 커피 한잔을 건넨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독한 술을 먹었을 때처럼 팔다리에 힘이 없고 도무지 가슴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뒷벽에 남아있는 가방이라도 챙겨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려고 힘없이 벽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이었다. 등뒤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내 뒤통수를 또 때렸다. 주위에 모여있던 비둘기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오느는 소리도 동시에 들렸다.
나는 다시 놀라 몸을 돌렸다.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이 흙투성이가 된 어떤 남자가 내 좌판 위에 엎어져 있었다. 그 옆에 는 똑같이 흙투성이가 된 커다란 검정 쓰레기 봉지에서 눈에 익은 핸드백들이 삐져나와 뒹굴 고 있었다. 그것들은 바로 아침에 도둑맞은 내 핸드백들이었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뒤로 몇걸을 물러났다. 억지로 정신을가다듬고 가만히 내 앞에 펼 쳐진 광경을 보았다. 좌판 위에 엎어진 남자가 부시럭 대더니 흙이묻은 머리를 힘겹게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피범벅이 된 얼굴, 아! 그는 바로 썬이 아닌가.
그가 내 눈과 마주치자 살짝 웃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인 것은 휑하게 뚫린 시꺼먼 구멍이었다.
약간 사이가 벌어졌던 앞니가 빠져버린 것이다.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과 시커먼 구멍 이 섬찟 무서움으로 내 가슴에 와 찍혔다.
썬은 씨익 나를 향해 한번 웃는가 했더니 이내 곧 머리를 털썩 떨구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바로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가 다운타운 노점상을 떠난지 한해를 넘기고 집앞 가로수에 붉은색깔이 물들기 시작한 가 을 어느날이었다.
다운타운을 떠난후 처음으로 식구들 양말도 살 겸 조지엄마한테 들렀다. 명랑하고 부지런한 조지엄마는 여전히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이런저런 그동안의 안부말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듯 깜짝 놀라며 화제를 돌렸다.
“참! 썬 이 말예요. 나는 썬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순간은 최대 한도로 태연한 척했다. 다음 말을 다급하게 기다렸다. 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행방 불명이 된 애인의 소식을 막 들으려는 찰나이다.
“그날 썬이 앰블런스에 실려가고 며칠 후에 미세스 박이 장사를 치우고, 그랬지요?”
조지엄마 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그 후론 나는 미세스박은 종종 생각이 났지만 썬이라는 거지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서너달쯤 후 나 됐나. 어떤 백인청년이 오토바이를 이 앞에 떠억 세우더니 여기서 핸드백 팔던 사람을 찾더라구요. 나는자세히 보지도 않고 장사 그만 두었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썬이래요.썬~.”
조지엄마는 눈을 크게뜨며 연기를 한다.
나는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썬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그 청년을 쳐다보니 어머! 이게 웬일예요. 아주 자알 생긴 귀공자가 거기 서있 더라구요. 하얀 살이 통통히 찌고…” 한 손으로 눈을 비비는 시늉을 하며 다시 말을 계속한다.
  “내 눈이 의심적어 자세히 봤어요. 아! 그 파아란 눈, 금발머리. 영락없이 베벌리힐스에서나 사는, 아니 영화에서나 보는 멋드러진 귀공자드라니까요.”
조지엄마는 혼자 흥분해서 떠든다. 장사 고만 두었다는 말을 듣고 그날은 그냥 돌아가데요. 그러더니 며칠 간격으로 와서 묻고, 또 와서 묻고… 근데요 나중에 왔을 때는 까만색 뚜껑 없는 지프차를, 그것도 새로 막 뽑은 것 같은 새차를 몰고 왔어요. 사람 운명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추측에는 병원에서 제정신을 찾아 부모를 만났는가 봐요. 그러지 않고서야…. 맨 나중에 온 날은요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집을가르쳐 달라. 너희들은 같은 코리안 아니냐. 그럼 전화번호 라도… 하고 조르길래 이거 큰일났다 싶어 나는 모른다. 저어기 뉴욕으로 이사가 버렸다고 쌀쌀하게 쫓아 버렸어요. 뉴욕으로 이사 가버렸다는 냉정한 대답 후로는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까지 안오네요. 가르쳐 주었다가 무슨 해코지를 할지 어떻게 알아요?”
다시오지말라고, 재수없다고 침을 퇴!퇴! 뱉었지요
조지엄마가 맨 나중에 한 말이 내 가슴에 징소리처럼 울려 남아 있었다.
나는 ‘전화번호만 이라도 가르쳐주지 그랬어요? 이담에 다시 오거든…’ 하는 말을 결국은 못하고 마른침과 함 께 삼켜버렸다.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목으로 치밀려왔다. 고개를 젖혔다. 회색 빌딩 사이로  길다랗게 조각이 난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누군가 띄운 연이 빌딩 꼭대기에 걸려 축 처 진 꼬리가 힘겹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눈에 익은 비둘기 한마리가 내 앞에 사뿐히 내려 앉는다.
저놈도 발가락이 뭉그러져 있겠지.
나는 또 중얼거렸다.
                
그래, 이 풍요로운 땅에 발가락이 뭉그러진 것이 어찌 너희들 뿐이랴!

      -1994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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