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도 병인가

2007.03.26 11:27

정해정 조회 수:339 추천:18

  이런 우스개 얘기들이 있다.
  중년여인 셋이모였다.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 얘기가 나왔다. A 여인 이 먼저 말했다.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음식을 꺼내려 왔는지,아니면 넣으러 왔는지 헷갈릴때가 많다.” B여인은 “그건 약과야.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금방 탔는지, 지금 내리려는지 깜빡할 때가 있어” 두사람 말을 듣고 있던 C 여인은 “아이구 저런! 난 그런 건망증이 아직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면서 태이블을 똑똑 두드리더니 “어머! 누가 왔나봐. 누구세요?”하고 목청을 돋으며 현관으로 달려간다. 웃기려고 좀 과장되게 지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들어 나도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

  나이 탓일까. 사람은 몇살때 부터 기억력이 부실 해 지는 걸까.
  중년이 넘어 노년에 들어서니 중요한 약속을 적어놓지 않았다가 아예 새까맣게 잊어버려 낭패를 본다던가, 꼭 회답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편지주소를 잘 간직하고는 찾을 수가 없어 이리저리 헤매기가 일쑤다. 생각지도 않은 용돈이 생겨 식구들 몰래 깊숙히 보관한다는 것이 오히려 꽁꽁 숨어버려 혼자 진땀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업은애기 삼년 찾는다’는 말이 있다. 돋보기 안경을 머리위에 올려 놓고 집안을 샅샅히 뒤지는 일은 허다하고, 책상앞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끼고 그위에 또 안경을 얹는실수는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건망증이라 치지만 식구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되는 실수도 심심찮게 한다.

  안경이 집에서만 문제가 아니다. 얼마전 일이었다. 안경을 바꾸려고 안과에 갔다. 의사말이 켈리포니아는 햇볕이 강하니 밖에서는 선 글래스를 잊지말고 착용하라 했다. 그 말에 짙은 써글라스에 아예 돗수를 넣어 장만했다.

그런 며칠후의 일이었다. 신문사 원고 마감 일자가 닥쳐 왔다. 원고 생각만 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않아, 볼일이 있어 외출을해도 온통 머리에는 원고생각으로 심란해하다 집에 들어왔다. 웃옷을 벗어 던지고 우연히 TV 를 켰다. 마침 ‘동물농장’ 프로여서 정신없이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광고시간이 되어 한숨 돌리고 거실을 둘러보니 너무 어두운것이아닌가. 그때 마침 막내 녀석이 내앞을 지나가길래
  “얘! 왜 이렇게 어둡냐. 불 좀 켜라.” 했다. 막내녀석이 나를 흘끔 보더니 픽 웃는다.
  “에구구! 울엄마 망령 나셨네. 거울 좀 보고 광명 찾으쇼.” 한다.
  집안에 들어와서 웃옷은 벗었지만 썬 글라스 벗는것은 잊어버렸던 것이다.

  또 근간에 이런일도 있었다.
그날은 K 선생님의 출판 기념회 날이었다. 행사장에서 접수 보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를 했다. 방명록도, 팬도 잊어버리지 않게 핸드백 옆에 두고, 옷을 고르고, 옷에 맞는 엑서사리도 꺼내놓았다. 보통 날 보다 더 정성들여 화장을 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향수도 은은한 걸로 치익칙 뿌렸다. 이만하면 준비가 완벽하게 됬다 싶어 핸드백을 들고 현관문을 막 잡으려는 순간 바로 그 때였다.

“엄마앗!!!”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뒤퉁수를 때렸다. 깜짝 놀라 돌아봤다. 딸아이는 손가락으로 내 아랫도리를 가르키고 있었다. 팬티 스타킹 차림에 재킷을 입고 핸드백을 든 내 꼴 이라니…

이런 건망증은 우리식구들은 아직은 애교로 봐준다. 그리고 깔깔 웃으면서 손님이 오면 소문내고 가벼운 실수로 쳐 준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슬그머니 심각해 지기도 한다. 이런 건망증도 정도가 심해지면 불치라는 ‘치매’가 되는건 아닌지. 기억력이 언제부터 부실해 졌는지, 다른사람도 다 이런 증세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 식구 들은 이런 나를 언제까지나 가벼운 실수로 쳐 줄런지 ….’건망증’은 과연 병 일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듀랭고 마을의 아침 정해정 2007.04.10 514
60 거라지 세일 정해정 2007.04.09 681
59 삶의 향기 정해정 2007.04.09 547
58 분수와 푼수 정해정 2007.04.09 583
57 아! 가을냄새 정해정 2007.04.09 558
56 주름살 정해정 2007.04.09 708
55 스승의 날에 정해정 2007.04.04 702
54 어린이 날과 초파일 정해정 2007.04.04 508
53 LA의 무궁화 정해정 2007.04.04 584
52 술이야기 정해정 2007.04.04 427
51 삶의 힘은 스트레스 정해정 2007.04.04 506
50 서울서 온 편지 정해정 2007.04.01 387
49 한솥밥 한식구 정해정 2007.04.01 478
48 <이야기할아비>와 <샌타클로스> 정해정 2007.04.01 395
47 미안해 로미오 정해정 2007.04.01 329
46 열쇠문화 정해정 2007.03.29 402
45 등잔 밑 정해정 2007.03.29 506
44 인사동 장날 정해정 2007.03.29 518
43 관포지교 정해정 2007.03.29 222
» 건망증도 병인가 정해정 2007.03.26 339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4,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