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장날

2007.03.29 02:47

정해정 조회 수:518 추천:29

서울이 너무 많이 변했다는 소문은 수 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보니 정말 깜짝 놀랐다. 대다수 사람들의 씀씀이는 꼭 벼락부자라도 된듯 했고, 완전히 서구화 되어 있었다. 그중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건축양식이 거의 사라져 버린점이다. 어쩐지 서운하다.

길거리가 은행나무 가로수로 온통 샛노란 어느 일요일 이었다.
일요일 마다 칠일장이 선다는 인사동에 친구의안내를 받아 나갔다.
  입구에서 부터 장날 축제분위기로 북적북적 요란했다. 사물놀이 패가 꽹과리를 치며 한바탕 지나간다. 길 한 복판에 남녀 고무신을 수백컬레 나란히 늘어놓고 도복을 입은 남자 두명이 선을 하듯이 좌정하고 눈을 감고 있다. 몇걸음 더 가니 남녀 대학생 인듯 엿판을 벌려놓고 가위질에 마추어 신나게 디스코 춤을 추고 있다. 호박엿을 춤을 추면서 리듬에 마추어  구경꾼 입에 한점씩 넣어준다.
길 바닥에 천막을 치고 긴 담뱃대를 든 젊은이가 사주궁합을 보고 있다. 문전성시다. <내일은 헤어져도 오늘은 궁합을 보자>라는 팻말이 천막끝에 달랑 거린다. 남녀 개량 한복집도 여럿이다.
십수년전 필자가 한국에 살때만 해도 대도시 일수록 간판 이름이 외국어, 즉 영어, 프랑스어, 스패니시 등등이었다. 꼬부랑 이름 일수록 새련되고 멋있게 보인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어떤 간판은 국적도 없고 뜻도없는 희한한 것들도 많았었다.

  인사동에서  간판 이름들이 변한것에 우리의 건축양식이 변한것보다 더 놀랬다.
  인사동 몇블럭을 걸친길에는 거의 주점, 전통찻집, 식당 들이다. 나는 간판이름이 하도 재미있어 눈에 띄는대로 적어 보았다.

  <대장부> <질경이 우리옷> <돌 실나이> <깔아놓은 멍석 놀고 간들 어떠리> <오늘같이 좋은날> <솟대> <오! 자네 왔는가> <꽃을 던지고 싶다> <토방> <우리 그리운날> <나에 남편은 나뭇군> <지대방> < 영산강> <항아리 수제비> <풍류 사랑>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 사랑은 구름을 비로내리고> <하늘아래 모퉁이> <학교종이 땡땡땡> 등등

안내한 친구가 개그맨 전유성이 주인이라는 찻집겸 주점인 ‘학교종이 땡땡땡’에 가서 차한잔 하고 쉬어가자한다. 교실문을 드르륵 밀고 들러갔다. 자욱한 연기 속에 손님이 가득 찼다. 기억에서잊었던 초등학교 시절 교실모습 그대로다.
  작은 책상에 작은 걸상, 석탄 난로, 낡은 풍금. 앞쪽 벽에는 칠판이 있고 분필로 메뉴가 적혀있다. 한쪽 구석에는 떠든사람 아무개라고 써있다. 가운데는 좀 두껍고 큰 글씨로 <급구: 주번구함> 이라 써있는것이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모양이다.
  우리 옆 자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데 안주 담은 그릇이 노란색 사각 알미늄 도시락이 아닌가. 우리는 유자차 한잔씩 마시고 그 곳을 나왔다.

장날이라 해도 거의가 젊은이들로 들끓어 덩달아 우리도 생동감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골무 한쌍과 주먹만한 옹기항아리 두개를 샀다.

나는 LA에 살면서 짬이 나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찾는곳이 있다.
주말 저녁을 이용해 가는 샌타 모니카 3가길이다. 이 거리는 자동차가 없다. 거리의 연주,거리의 춤, 관중들과의 연극, 비누방울 묘기등등. 그들은 자기가 하고있는 일에 누가 보든지 말든지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이런 광경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고, 스파게티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면서 걷는다. 이민살이의 지친 피곤을 잠시 씼어주고, 내일의 활력소를 얻는 곳이라 할까.
  인사동 거리가 그리워 질때 샌타 모니카 3가길을 찾아야 겠다. 인사동과는 너무니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자유와, 안식과, 내일의활력을 얻을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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