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감상문

 

 

     이 시는 다른 시들과는 달리 모던한 분위기에 차분하고 소시민적인 정감이 엿보인다. 백석의 사슴에 실린 시들을 보면 거의가 시골을 배경으로 유년 시절 고향의 모습을 재현한 시들이 많다. 조선 백성의 고유한 풍속을 재현하듯 그려내면서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사회 기억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가족과 친족들이 자주 등장하고 마을 사람들이며 산골에서의 신화적 이야기가 소박하게 들어차 있다. 또한 기층 민중들이 사용하는 향토적이고 거친 언어를 다듬지 않고 토속어로 삶의 경험을 생생하게 환기시킨 시어들을 썼다. 그러므로 그의 기억은 경험 자체보다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려는 의지적 기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러면서 세속적인 욕망들을 외면하는 마음으로 표현했다고 하겠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은 그에게 다 외면일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세속적이고 천박한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보면서 혼자 행복해 하고 있다. 여기에서 열거되는 내용들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나 자신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걸어가는 이유를 조단조단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자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날씨가 좋은 탓이고, 또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가서 좋은 탓이라고 한다, 구두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새신이 충분히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그런 동무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자신은 더 행복하다고 말을 한다. 이런 표현들을 보면 백석이 얼마나 감정이 소박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타인을 향한 따뜻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가진 게 별로 없는데다 욕심도 없어서 자신의 많지 않은 월급까지 고마워 하니 말이다. 작은 월급이 뭐 그리 대수라고... 따지고 보면, 하등 고마울 것도 없지만 저마다 행복의 우선순위가 다르듯 그의 행복은 작은 것에서 오나보다. 특히 언제나 같은 넥타이를 매지만 변함없이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은 갑자기 백석의 연인 자야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로 아름다운 기생 자야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팬들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은바 있다.

 

     또한 음식은 백석 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다. 여기서도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리는 탓이다고 여지없이 등장시켜 끝내 마지막 행을 채운다. 이런 음식은 백석의 시에서는 근원적인 행복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백석의 시들은 갖가지 토속 음식에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발효시켜 부분적의로 존재하는 일상들을 연결시키고 맥락화하는 사유의 힘을 끌어당긴다. 그런 탓에 백석의 시는 불안하고 끔찍한 것들은 없다. 말도 안 되는 생경함과 이질감으로 언어를 비틀어 놓은 것도 없다. 그저 삶의 실존적 현실을 다양한 형식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는 한마디로 세상적인 모든 것은 외면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모든 외면의 이유가 모두 자기 본위의 멋의 추구에 있다는 점이다. 즉 세상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모든 욕망들을 외면하고자 하는 뜻이다. 이를 테면, 타인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임을 인지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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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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