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요약

2016.12.05 00:36

정국희 조회 수:481

한국문학사  (김윤식, 김현 공저)

                                                                                                정국희    

 

 

1장 방법론 비판

 

     <시대 구분론> 도대체 문학사란 무엇일까?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사란 과거의 집적물에 대한 사적 기록이다. 물론 이때의 집적물이란 문학적 집적물을 의미한다. 맨 처음 주의해야 할 것은 문학사는 역사와는 엄연히 다른 감정적 차원에서 기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감동의 세계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문학적 집적물은 반드시 감동과 정서적 반응을 요구한다. 문학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이중의 어려움을 지닌다. 그것은, 문학사라는 어휘 자체에서 벌써 그러한 어려움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지만, 문학사가 문학과 역사를 동시에 포용해야 한다는 어려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사는 문학 비평도 아니며 역사도 아니다.


      이를 테면, 문학사의 경우, 그것은 정치적 문서, 경제 행위와 마찬가지고 문학적 변주 또는 문체의 변이와 이행, 타문화와의 관계 등의 밝히는 전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것들은 당대의 어느 계급의 정신적 분위기, 예외적 개인을 가능케 하는 집단의식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많은 부분을 놓칠 우려가 있다. 뉴턴의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의해 수정 기복되며, 유클리드 기하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소정 보완된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그럴 수 없다. 호머의 작품이 토마스 만의 작품에 의해 보완되는 법은 없다. 졸라가 발자크의 <인간희극>을 모방하려 했다고 해서 그가 선배를 보완한 것은 아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이 끝내 채원지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학 작품이 수정될 수 없다는 것은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이 시대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수정될 수 없다면, 왜 어느 작품은 좋게 느껴지고, 어느 작품은 나쁘게 느껴지는가? 그러한 질문은 문학 작품의 유사성 문제로 사고를 유도한다. 문학 작품은 옳거나 틀리거나 하지 않는다. 작품이 유효한가, 유효하지 못한가를 따지는 것은 그 작품의 역사성 여부를 따지는 것과도 같다. 일반적으로 가장 행복한 유효성을 획득하는 작품은 생산하였을 때의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같은 것이 그것이다. 자기가 속한 시대의 풍속을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그것은 당대의 유효성을 그대로 획득한다. 허균의 <홍길동전>같은 것이 그렇다. 그 시대의 모순인 서얼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유교적 이상 국가관을 그대로 견지한다는 어려운 일을 그 작품은 떠맡고 있다.

 

     <한국문학은 주변 문학을 벗어나야 한다.> 임화는 그의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신문학사의 대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신문학사의 대상은 물론 조선의 근대 문학이다. 무엇이 조선의 근대 문학이냐 하면 물론 근대정신을 냉용으로 하고 서구 문학의 장르를 형식으로 한 조선의 문학이다조선 근대 문학의 대상을 정의한 임화의 진술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끈다. 첫째는 그가 무언중에 근대정신을 서유럽의 문물이 들어온 이후의 소산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임화뿐만 아니라 근대 문학, 근대정신에 관심을 쏟은 거의 모든 문학사가의 문학 비평가들이 기본 태도를 이루어, 1955년대에 전통의 단절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까지 이끌어 내게 한 것이다


     근대정신을 소위 개화기 이후로 잡는다면 고대 문학과의 연결점은 객관적으로 단절된다. 개화기 이후의 문학은 근대정신이 있는 근대 문학이라는 간명한 명제가 곧 성립된다. 개화기 이후 일제 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토속어의 가능성에 주의를 한 몇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문인들을 보편성. 보편인 이라는 미망으로 몰고 간 것은 언어 의식 없는 서유럽적 장르에 대한 무조건의 신봉이다. 일본이 재빨리 근대화된 것은 서유럽의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유럽의 문물제도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열병 같은 유학 열이 번지고 서유럽적인 모든 것이 맹목적으로 추종된다.

 

     <한국 문학의 인식과 방법>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세계적인 대문명에 버금하는 문명이 산출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모든 것이 신의 섭리다 라는 비논리적 섭리주의에 빠지지 않는 한, 논리적인 귀결을 얻을 수 없게 한다. 한국 문화의 식민지성 , 혹은 주변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의미망 속에 끌어넣어 이해하여야 한다. 민족성, 반도 근성 등의 자비적인 어휘들이나 반만 년 배달민족이니 뭐니 하는 어휘들을 척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한 국민의 정신적 궤적을 이해함으로써만 한국 문화의 주변성은 극복의 계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우선으로 들 수 있다.

 

     첫째, 유럽 문화를 완성된 모델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화라는 것은 물결의 흐름과 비슷하게 위에서 낮은 데로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주변국가의 콤플렉스는 보편성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되 수입된다. 상업혁명 이후의 서유럽의 모든 문물제도는 전 세계 후진국의 모범적 전례가 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개화기 이후 한국은 죽어라 하고서 유럽만을 쫓는다.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유럽의 문화적 변방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유럽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뒤쫓고 있는 서유럽 역시 그 한계를 지니고 있는 문화체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식 문화론과 전통 단절론은 이론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예의 임화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문학이 서구적인 문학 장르를 채용하면서부터 형성되고 문학사의 모든 시대가 외국 문학의 자극과 영향과 모방으로 일관되었다. 하여 과언이 아닐 만큼 신문학사란 이식 문화의 역사다.> 서유럽의 제도를 탁월하고 높은 단계의 것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 그것은 채용은 아무런 논리적 감정적 비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조장된다. 더구나 그것은 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 문학은 그 나름의 신성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문화는 그 문화를 지탱해 주는 성스러운 것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탱시키고, 일본은 천황의식이다. 한국은 주변 문화이긴 하지만 삼국 시대의 불교적 애국주의, 조선 시대의 유교적 교양주의이다.

 

     <한국 문학은 개별 문학이다.> 한국 문학사가 개별 문학이라는 의미는 한국 문학사의 기준이 한국사 총체 속에 있다는 사실의 소박한 인식을 뜻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진술은 편협한 지방성, 파행성의 노출로 오해되기 쉬우며 심지어는 배타적 독선적 쇼비니즘 내지는 문화의 보편성을 압살하는 사고방식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체 민족의 행복에 감성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화 파악력은 역사의 추진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2장 근대 의식의 성장

 

 

     한 사회가 안정되어 그 나름의 사상이나, 윤리 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금기가 풍속의 측면에 폭넓게 정착되어야 한다. 풍속과 굳게 결합하지 아니한 사상이나 윤리는 그 하회 구성원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창조적 노력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 풍속과 사상이 조우하는 최초의 장소는 가정이다. 가정과 가족은 한 사회가 그 자체로 존속하는 것을 지키는 초소 단위이다. 조선의 가족제도는 기본적으로 유교적 제도이다. 개인의 각성을 중요시하는 선과 과거 제도의 폭넓은 확산, 전파는 그러한 제조정의 결과이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확인 것이 무신란이다. 무신란 이후에는 소위 사대부라 불리는 기능 집단이 대두한다.

 

     유교적 가족 제도의 모순은 가장의 권위를 극도로 신장시켜 다른 구성 요인들에 대한 교려를 거의 하지 않은 데 있다. 그 모순의 피해를 크게 받은 것이 여자와 서자이다. 질투를 금한다는 명목으로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자유롭게 토로할 수 없게 만들고 첩의 소생이라고 하여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든 것은 유교적 가족 제도의 경직화가 빚어낸 가장 첨예한 모순이다. 조선 후기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려는 사상적 조류는 실학이라는 명칭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실학파의 노력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목민심서> 조선 말기에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는 그 사회 자체의 구조적 갈등에 의해 그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전보주의자들과 그것을 은폐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갈등 역시 더욱 심해진다. 그러한 갈등 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구차한 행위를 하면서도 정약용은 주자주의의 여러 전범에 의거하여 고법에 맞는 이상 국가를 이상적으로 구축하며 최제우는 하층민들의 에너지를 민족주의와 결합시켜 한국 사회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정약용의 숱한 저서 중에서 그 날카로운 현실 파악과 전거 제시로 해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이 <목민심서>이다. 그의 시편에 토로되고 있는 농민의 궁핍화 현상에 대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이상국가의 건설에 대한 상상적 저작을 가능케 한 것이다. 목민심서는 하나의 상상적 걸작이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이 그리고 있는 이상 국가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가 그리는 목민은 한 고을의 그것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중록> 은 산문으로 된 내간체 기록 문학으로 <한중만록>으로 불리는 작품인데 영조의 진노를 사서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소작이다. 그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오랜 후에 재구성한 것인데 궁중 귀부인의 문체와 조선조 후기 가족 제도의 모순을 첨예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 작품은 사실의 기록으로서,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     열하일기> 조선 후기 사회 구조의 모순을 자체 내의 에너지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열하일기>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인 저술은 없다. <열하일기>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달리 일기체 기행문이다. 이 작품은 26권으로 되어 있는데 1980년 박지원 이 삼종형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중국에 들어가 성경, 북평, 열하 등지를 역람한 기행문이다. 거기에는 청의 문물제도, 풍속, 사회, 종교, 종교, 예술 전빈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고도의 구성력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러한 저술이 가능해진 것은 작가가 이미 서물을 통해 당시 중국 연경의 풍물, 제도, 내력, 생업 등에 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운몽> 이 조선 후기 사회에 우뚝 솟아 있다는 진술을 용납하려면 몇 가지 진술이 필요하다. <구운몽>은 완결의 양식의 한 전형적 작품이다. <구운몽>은 동양의 극수인 <>라는 숫자의 상징적 안배에서 역학상의 우주 질서로서의 순환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 없으면서 가장 명확한 시작과 끝을 맞물고 있는 것이다. 천상과 지상으로 환행하는 모티프가 <구슬>이라는 상징물이고 다치 천상에의 희귀 모티프가 <피리소리>라는 상징물로 구성된 것도 원래 자체의 완벽성을 확보한 것이다.

 

    <춘향전> 은 두 개의 언어 체계에 의해 씌어졌는데 그렇게 된 것은 독자를 양반과 서민 양쪽에 둔 데서 발상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춘향전>이 어느 한 가지 언어 체계로만 씌어졌다면 춘향전의 기품 없고 상스러운 작품이 되었거나 아니면 괴물로 전략했을 거다. 이 양자의 균형을 이룩한 것이 춘향전의 강점이 되는 것이다. <춘향전>에서 중국 고사를 지문에 사용한 것은 그대로 당시 사회의 봉건적 권위 질서 그 자체를 반영한 것이며 일상어를 대화 속에 사용한 것은 당대 사회에서 존중하는 새로운 역사 측면의 반영인 것이다.

 

 

3장 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

 

 

     개화기는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의 해결이라는 임무를 맡은 시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라를 잃게 되는 가장 비극적인 시대에 속한다. 개화기는 당연한 결과로서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던 북학파와 역관 계급에 의해 사상적으로 개발되어 온 소수 관인 엘리트들이 전자를 이루면, 주자주의의 이념에 깊숙이 침윤된 관인들, 유림, 농촌 지식인들이 후자를 이룬다.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와 척사파 사이의 대립은 개항 결정을 내리는 데서부터 점차로 노골화되기 시작하여 갑신정변이라고 흔히 불리는 귀족 혁명, 그리고 동학 농민 혁명 등에서 날카롭게 혹은 음험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두 사상적 조류는 결국 민권 사상과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사상으로 전개되어 나가 합방 후의 가장 큰 항쟁인 3.1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이룩한다.

 

     <기록문학의 두 노작> 황현의 <매천야록>과 김옥균의<갑신일록>은 개화 초기가 보여준 두 편의 탁월한 기록 문학이다. 그 두 편의 저서는 한 편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한 편은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이 본 개화기의 전모를 혹은 일부를 서술한다.

<매천야록> 황현은 은 1864년의 대원군 집정에서부터 1910년의 한일합방에 이르는 47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한말의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이해시키는 그 어떤 사료보다도 진실한 가치를 갖는다.


     <갑신일록> 김옥균은 1884년의 귀족 혁명의 전말을 그 이듬해에 망명처인 일본에서 서술한 보고분이다. 저작 동기는 정벌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정변의 전말을 적어둘 책임을 느꼈고, 한편 정변 전후에 일본정부가 취한 배신적 행동을 규탄하려는 데 있었다. 그것은 또한 188112월부터 18849월에 이르기까지의 3년간에 걸친 조선의 정치 정세와 일본의 대조선 정책을 간단히 논한 서론 부분과 죽첨 공사가 휴가차 본국에 갔다가 귀임한 1884930일부터 혁명이 실패한 12월까지의 38일간을 서술한 본론으로 되어 있다.

 

<서유견문> 은 유길준이 미국 유학 후 귀국하여 개학파라는 죄명으로 포도대장 한규설의 집에 연금되어 있는 동안 씌어진 것으로 1892년에 완성되어 1895년에 동경에서 발간되었다. 자비 출판된 그 책 1천부를 유길준은 무료로 각 계층의 인사들에게 배본하였는데, 그것은 사상적으로 개화에 관심을 가진 거의 모든 지식층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서유견문>은 북학파의 이용후생 사상에서 연원하여 동도서기론을 거쳐 형성된 개화사상을 가장 폭넓게 그리고 깊게 체계화한 저서이다.

 

    <개화기 소설> 신소설이란 명칭은 이인직의 <혈의 누> 광고란에서 발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로 김태준, 임화, 김하명, 백철, 조연현, 정광용 등 여러 문학사가들에 의해 이 명칭이 고대 소설과 이광수 이후 소설의 중간 단계의 장르 개념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1906년에서 1917년까지에 걸친 개화기 소설은 번안. 번역, 저작을 통틀어 대략 130여 편쯤 된다. 소위 신소설이란 것의 대부분이 특히 후기로 갈수록 조선 후기 소설보다 훨씬 기괴한 양상을 드러내낸다. 가령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자유종>등은 다소 신학문, 신교육 사상의 창도에 그 주체의 일부를 놓고 있다.

 

     <최남선의 계몽주의> 개화기의 계몽사상은 중인 계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중인 계급은 조선 사회에서 일종의 기능직을 담당한 계층인데 청구 문명에 일찍부터 접할 수 있어 개화열에 불탄다. 그러나 조선 사회를 완전히 개화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계급 출신의 지식인들이 문화 전면에 나서게 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최남선이다. 최남선은 대체로 세 가지의 율문 형식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은 신시, 창가, 시조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시를, <경부선 철도가><한양가>등은 창가를 그리고 <백팔번뇌>는 시조를 각각 대표하는 작품들이었다.

 

     <이광수와 주요한의 문학사적 위치> 이광수와 주요한은 개화기 시대를 문학적으로 완성하면 서 다음 세대로 새로운 형태의 문학적 도전을 가능케 해준 이중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두 작가는 다같이 1910년에 이르는 개화 과정을 투철하게 지켜 볼 수 있는 여건 밑에서 자라났으며, 나라의 현실이 갖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한다.

 

    <이광수> 의 개화의식은 1884년의 귀족 혁명과 1894년의 농민 혁명, 그리고 독립협회의 국권 민권 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정>은 이광수 최초의 장편 소설일 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 최초의 장편 소설이면 이광수의 문명을 단번에 날리게 한 그의 출세작이다

 

     <주요한> 의 문학사적 위치를 밝히는 것은 시조라는 정형시의 파괴와 새로운 형태의 시의 발견이라는 명제를 밝히는 것과 맞먹는다. 주요한 이전의 운문 문학은 시조의 형태적 파괴와 새로운 시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시조라는 이름의 정형시의 붕괴는 한국에서의 한문시의 변형과 함께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문학적으로 확인케 해준 사실이다.


 

4 장 개인과 민족의 발견

 

 

     식민지 시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수탈이 얼마나 악랄하고 무서운 것이었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완전히 뿌리를 뽑히고 한반도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국내에 잔존한 한국 민족 역시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공잔 노동자의 한다. 일본 식민지 정책이 소위 문화 정책으로 전환된 것은 3.1운동 이후의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무마할 임무를 띤 사이토 미노루가 경성에 부임한 후부터이다. 그리고 농촌의 궁핍화는 토지 수용, 동양척식주식회사, 식량수탈, 고리체 등의 과정을 밟아 행해진다. 일본의 한국 토지 조사는 1911년 토지 수용령에서부터 시작된다. 1919년 이후에는 상당량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 농민들에게 식량 수탈이 악랄하게 행해진다.


     일본 제국주의의 음험하면서도 악랄한 조직적 식민지 수탈에 대한 전 민족적 항쟁인 191931일의 민족 대 운동은 1884년의 귀족 혁명,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의 뒤를 이어 한 국민이 자체 내의 힘으로 사회의 제반 모순을 극복하려 한 민족 운동이다. 그리고 식민지 치하의 정치적 저항은 상하이 임시정부로 상징된다. <정치적 저항>으로서 1919410일 상하이에서 성립된 상하이 정부는 한일합방 후의 모든 민족 투쟁을 정치적으로 합법화시킨다.


        그리고 <경제적 저항>으로서 조선 물산 장려 운동이다. 그 두 운동은 <일본 산업 자본의 진출에 대흥하여>,<민족 기업의 설립 및 그 육성을 촉진하고, 민족의 경제적 자주자립 태세를 확립하려는> 운동이다. 또한 <사회적 저항>으로서 농촌 계몽 운동과 형평 운동이다. 농촌 계몽 운동은 좌파의 농민 조합 운동과 우파의 문맹 퇴치 운동으로 배별될 수 있다. 좌파의 농민 조합 운동은 농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며, 문맹 퇴치 운동은 농민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의도의 소산이다.

 

     <현실과 초월의 의미> 주요한의 뒤를 이어 한국시가 과제로 짊어지게 된 두 가지 문제,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면서 한국인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 형식을 찾는 다는 어려운 문제와 씨름한 사람은 김소월, 한용운, 이상화다. 이 세 시인들에게 공통되어 있는 것은 새로운 시형의 탐구이다. 시조의 창속에 갇혀있던 한국어를 해방시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새 형식을 찾는다는 것은 식민지 초기의 시인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임무이다. 그 임무를 그 세 시인은 충실하게 이행한다.

 

     <김소월>은 식민지 초기에 정형시에 가장 깊은 관심을 쏟은 시인이다. 그가 즐겨 실험한 정형률은 7.5조이다. 그의 대표적 자품인 <산유화>, <진달래꽃>, <초혼>, <접동새>등은 7.5조를 대담하게 변조시킨 것들이다. 시에서 중요한 것이 자수가 아니라 한 뭉치의 어휘를 읽는 기간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시를 통해 명백하게 보여준 최초의 시인이 김소월이다. 그 결과 앞의 시들은 완벽한 리듬이 생겨난 것이다. 공식적인 자수 율격을 해체하여 새로운 정형시에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그의 완전한 공로이다. 한용운, 이상화는 김소월과 다르게 자유시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이상화의 경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의 침실로>등은 완연한 자유시이다. 한용운과 이상화를 통해 한국 시는 하나의 공간을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상상 체계 속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개인과 사회의 발견> 이광수에 의해 어느 정도 진전을 본 한글 소설 문체를 발전시키면서, 식민지 시대의 어둡고 답답한 세계를 그대로 그려내야 한다는 어려운 임무를 맡아서,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작가가 염상섭 최서해이다. 그 두 작가만큼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식민지 시대를 산 개인의 고뇌를 무난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가로 김동인과 현진건을 추가할 수 있다.

 

<     염상섭 혹은 개량주의자의 자기 선언> 염상섭을 둘러싼 가장 빈번한 논란 중의 하나는 그의 문학이 과연 어느 유파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논란을 그의 자연주의론이 서구 문학의 문맥 속에서의 그것과 매우 상이하다는데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염상섭의 자연주의 이론은 유전학을 그 골자로 하고 있는 서구의 자연주의 이론과는 매우 다른 낭만주의 선언과 같다. 가능하다면 염상섭의 자연주의론은 다른 명칭, 가령 한국 자연주의라든가 개성주의라는 것으로 붙여두는 게 어떨까 한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 역시 이론을 훨씬 뛰어넘는 걸작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최서해 혹은 빈민의 절규> 최서해는 염상섭과 다른 차원에서 식민지 시대 초기의 민족 궁핍화 현상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식민지 초기의 농민, 노동자 등의 하층민들의 빈궁상을 그를 통해서 그 문학적 표현을 얻는다. 그 자신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머슴살이, 나무장수, 물장수,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소설은 빈궁에 대한 박진력 있는 묘사로 일관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강렬한 절규가 있다. 그의 소설의 절규는 그의 주인공들의 극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극단적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서해는 서한체와 정경 묘사체를 겸용하여 사용한다. 서한체의 절규는 이해를 바라는 절규이다.

 

     <최만식 혹은 진보에의 신념> 채만식의 여러 작품들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의 아이러니는 그의 작품을 이루는 문장 하나하나와 그 문장 사이의 행간,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즐겨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다 같이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그 자신이 찬표를 던지고 있는 긍정적 인물이고 또 하나는 그 자신이 부표를 던지고 있는 부정적 인물이다. 그의 아이러니는 강력한 비판 정신의 소산이다. 일제의 잔인한 검열 제도를 피하여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역설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가장 힘들여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 교육의 모순과 고리대금업, 도박 같은 비정상적 자본 이동의 현상이다.

 

      <이상 혹은 자아의 파산> 이상은 태도의 희극이라는 문학적 주체를 극한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 식민지 시대의 유일한 작가이다. 한 개인의 의식의 추이와 그것의 반영인 행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정위 시키려는 의식적인 태도의 희극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금기체계 내에서 생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들을 다 같이 부정한다. 이상의 문학사적 위치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그가 부정적인 자기 폐쇄를 통해 사회와의 통로를 차단당한 인간의 파산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다양한 실험 정신이다.

 

     <김유정 혹은 농촌의 궁핍화 현상> 김유정의 소설적 관심의 대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농촌이다. 그 자신이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농촌 점묘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그의 초기 소설들은 주로 목가적인 사랑을 취급하고 있다. 그의 초기의 걸작들 <동백꽃>,<봄봄>, <산골>등이 보여주고 있는 농촌 세계는 농촌 청년들의 그것이다. 대개가 지주집 자식과 종의 사랑이라는 계층적 대립을 다루고 있으면서 초기 단편들에는 살벌한 증오심 대신에 유머가 가득 차 있다. 그 유머는 고전 소설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유머이며 그것이 그를 전통과 굳게 결부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소설은 비화해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화해적 결말로 끝나는 소설은 아주 드물다. 그는 하나의 소설적 트릭도 없이 있는 세계를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그는 그 어떤 작가보다 식민지 치하의 농촌의 궁핍상을 여실하게 묘파해 낸다.

 

      <정지용 혹은 절제의 시인> 정지용은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해 본 한국 최초의 시인이다. 그 이전의 거의 모든 시들이 한탄 슬픔 등의 감정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 그의 시는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감정의 생경한 노출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초기 에 보이는 것은 엄격한 감정 규제이다. 정지용의 또 하나의 특색은 그가 무한한 정열을 가지고 시 형식을 실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절제, 무욕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그의 시 형식 실험은 자유시 산문시에서 내재율을 찾아내려는 고전주의적 시인의 시 실험이었다.

 

     <윤동주 혹은 순결한 젊음>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식민지 후기의 저항시를 대표한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는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해방 후에 유시의 형태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속에 수록된다. 그와 이육사는 다 같이 저항시를 쓰고 옥사를 하였지만 이육사와 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서로 다른 체질의 시인이다. 윤동주는 초월적 세계에서 그 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슬픔을 이별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식민지 치하의 정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 것과 같이 식민지 치하의 가난과 슬픔을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극복한다. 그는 그가 가장 많이 괴로워한 것을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이라고 고백을 한다. 정지용이 윤동주가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어갔고나 하면서 윤동주의 시 앞에 무릎을 끓고 분향을 하였다 한다.

 

     <이병기 혹은 한국적 리리시즘의 재현> 이병기는 시조의 수사학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는 시조를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규명하고 거기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한 문학인이다. 그에 의해서 시조는 현대시의 한 장르로서 완전히 자리 잡으며 문학작품으로 음미될 수 있는 작품을 획득한다. 식민지 후기는 자유시, 산문시의 압도적인 유행과 팽창 속에서 새로운 정형시를 찾아내려는 꾸준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새로운 정형시와 대비되는 위치에서 1930년대에 이르러 시조를 부흥하고 새로이 전개시키자는 운동이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싹튼다. 그 운동은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복고주의, 국수주의, 봉건주의의 부활이라고 낙인찍힌다. 이병기는 시조를 시라고 분명히 못 박고 그것이 창과 다르게 문자로 기되는 것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5장 민족의 재편성과 국가의 발견

 

 

      1945815일의 해방은 한국의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이룬다. 많은 식자들에 의해서 지적된 대로 그것이 비록 독립이 아니라 해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문학적 조건은 그 이전의 문학적 조건과 판이하게 다르다. 제일 큰 문학적 조건의 변화는 한글로 사고하고 한글로 글을 쓰는 권리와 의무가 한국 문학인에게 부가되었다는 사실이다. 1945년의 해방은 그것이 자주독립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단을 아무 저항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분단은 문학인들로 하여금 식민지 시대 문학인들이 느끼지 못한 새로운 억압체를 느끼게 한다.

 

      해방 이후 1950년의 한국전쟁까지의 좌우익 논쟁과 전쟁 이후의 공산의 혐오 증세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관찰하는 데 많은 장애를 일으키게 한다. 해방의 의미가 식민지 치하에서 살아남은 몇몇 작가들 특히 채만식, 황순원 같은 작가들에 의해 천착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탐구의 결과를 보이지 못한다. 그것은 4.19 이후에 특히 최인훈의 고독한 작업에 의해 그 전모를 드러낸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민족 이동 및 그 재편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한국전쟁은 수백만의 이북인을 월남케 한다. 한국전쟁은 동시에 이광수, 손진태, 김진섭, 김억, 정지용 등을 남북케 하였고 김동인, 김영랑, 석주명 등을 잃게 한다.

 

      <안수길 혹은 만주의 서사시> 안수길의 문학적 업적은 <적십자병원장>을 발표한 지 32년 후에 독자들에게 완결된 형태로 제시된 <북간도>이다. 1957년에 구상되어 1967년에 완간된 북간도는 만주에서의 우리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다는 그의 일관된 작업 태도가 결산이다. 그것은 곧 대단한 반을 불러일으켜 해방된 십여 년래의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민족 문학의 하나의 초석이 되어줄 만한 거작으로 인정받는다. 그의 상상력의 기점인 만주는 그의 최초의 중편 소설인 <>에서부터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간도>의 주제는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과 강렬한 민족의식이다.

 

      <황순원 혹은 낭만주의자의 현실 인식> 황순원은 그의 낭만주의적 성격을 구극으로 밀고 나가면서 거기에 적절한 규제를 가하려 한 작가이다. 그의 낭만주의적 성격은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체제와 질서에 대한 강렬한 저항 의식이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이 미에 대한 경사는 사춘기의 꿈에서 비롯된다. 황순원의 상당수의 주인공들은 사춘기의 떨림으로 환원시키는 소도구이다. 그의 초기 단편의 상당수는 <떨림>이라는 심적 동요를 기조음으로 삼고 있다. 자기감정의 내용을 뚜렷하게 분석하지 못하는 시기의 심적 동요를 그는 대부분 떨림이라고 표현한다. 낭만주의자의 떨림은 후기의 좌절감을 거쳐 구원의 미학에 이른다. <카인의 후예>의 용제 영감,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동호, <인간 접목>의 짱구는 그가 창조한 탁월한 낭만주의자들이다.

 

     <김동리 혹은 휴머니즘의 기수> 김동리가 경주 출신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요한다. 경주는 지금까지 많은 역사적 유물과 전설과 시가를 남기고 있는 문학적 지명이다. 그곳은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과 회한을 동시에 가능케 하며 인간은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가능케 한다. 김동리는 그러한 고향이 주는 풍토적 영향을 가지고 있는데다 유교적 교양이 첨부된 것은 그의 백형인 김범부의 영향인 듯하다. 그의 문학적인 업적은 좌파 문학 이론가들의 물질 위주의 문학이론과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된 제3휴머니즘과 그것을 그대로 작품화한 <사반의 십자가>이다. 그의 초기 단편들을 특색 짓고 있는 것은 닫힌 사회의 붕괴이다.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는 사회 속의 인간들이다. 그들이 속한 사회에 완전무결하게 얽매여 있음을 뜻한다.

 

     <손창섭 혹은 자기 부정의 미학> 손창섭 소설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소설의 형식을 빈 작전이 정신적 수기이며 도회의 취미를 띤 자기 고백의 과장된 기록이다. 그의 소설이 그 자신을 주로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자신의 모습이 늘 과장되어 계속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부정적 인간관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은 정상적인 육체와 삶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특히 초기 단편들은 심신 장애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울한 배경이다. 그의 대표작은 그의 인간적인 불행이 사회적인 그것과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낙서족>이다. 거기에는 표면적인 삶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소외되었지만 내면적인 삶에서는 민족의 독립을 바라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지지를 받는 한 과격주의자가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억압받고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때 그의 과격한 행위가 시작되는 것들이다.

 

     <최인훈 혹은 소외의 문학> 최인훈은 월남 작가들의 기본 도시를 이루고 있는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감상적으로 묘사, 그것을 망향 의식과 결부시키지 않고 ,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확대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이다. 그의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비전을 제시하여 그 자신의 소외를 보편화시킨다. <광장>에서 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을 따르면 이북의 공산주의나 이남의 자본주의는 둘 다 풍문에 의한 것이지, 그 사회의 자생적인 욕구의 결과가 아니다. 그 자신이 수락하고 있는 정치학은 <총독의 소리>,<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그의 문학은 그의 의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가 어떻게 해서 사회와 현실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는가를 밝히는 것은 그의 자전이나 전기가 출판되지 않아 어려운 일에 속하지만 그의 <회색인>이나 <광장> 등에 묘사된 인물들의 소외감은 자신을 그가 속한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노력의 좌절에서 얻어지는 소외감이다.

 

      <서정주 혹은 불교적 인생관의 천착> 서정주는 한용운과 함께 불교에서 그 시적 영감을 얻은 일급의 시인이다. 1930년대의 씌어진 그의 초기 시들은 식민지 치하의 그 어떤 시인들보다도 더 절실하게 억눌린 정신의 아픔을 노래한다. 그의 정신적 갈등이 신분 자체에서 나온 것이라는 진술은 그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종의 자식이었다는 소박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제 치하에, 일본이라는 대지주 밑에서 종살이 하는 한 국민 전체의 그것으로 폭넓게 일반화함으로자신의 한계를 벗어난다. 서정주의 모든 문학적 노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계속적인 탐구 정신이다. 그는 같은 주체 혹은 소재를 되풀이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편차가 빚어내는 묘한 질감을 향유한다.

 

     <유치환 혹은 지사의 기품> 유치환은 신채호적 기질을 끝까지 밀고 나간 독특한 시인이다. 자학과 분노와 저주라는 예언자적 지식인의 역할을 끝까지 담당하려 한 몇 명 되지 않는 시인이다. 그는 조지훈처럼 음풍영월을 하지도 않고 이육사처럼 상징적 수사법을 도입하지도 않는다. 유치환의 자학과 분노는 그의 본래의 자아가 일상적인 자아에 의해 깊게 침윤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한다. 또한 그의 시는 거의 진술에 의거하고 있다. 그 진술을 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감정의 긴장 때문이다. 한 비평가의 평을 빌리면 그는 시인이 아니라고 자처했을 때는 참된 시인이었지만 시인이 되려고 했을 때는 시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두진 혹은 자연과 분노> 박두진은 정지용, 김현승과 함께 기독교에서 그 시적 발상의 상당 부분을 얻고 있는 희귀한 시인 중의 하나다. 그의 기독교는 정지용의 천주교나 김현승의 개인적인 초월의 기독교가 아니라, 구약 시대의 메시아주의에 가깝다. 박두진에게는 유치환의 자기 학대가 보여지지 않는다. 또한 직재적이고 직설적이지 않다. 유치환에게서는 매우 추상적인 어휘로 표시된 이념의 푯대가 박두진에게서는 신앙으로 육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두진의 초기 시는 현실의 고통을 참고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자의 환희를 힘 있게 표현한다. 해는 그의 초기 시의 상상적 중핵이다. 그의 낭만주의는 당연한 결과로 시의 형식을 개방시킨다. 그의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산문시이다.

 

     <김춘수 혹은 무의미의 시학> 김춘수는 서구의 상징주의 시 이론을 받아들여 그것을 소화한 희귀한 시인이다. 대부분의 서구 취향 시인들이 영미 계토의 모더니즘에 세례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의 상징주의 취향은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그의 상징주의 취향은 초기에는 무한 탐구로 후기에는 순수시 절대시의 탐구로 나타난다. 그의 무한 탐구는 릴케류의 기도에서 시작하여 절대에의 동경, 하늘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여성적 시이다. 그의 초기 시의 대표작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 대개 실려 있으며, 그의 후기 시의 대표작은 <처용단장>이다. 그는 서정주, 김수영과 함께 해방 이후의 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김수영 혹은 소시민의 자기 확인과 항의> 김수영은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가장 깊숙이 받은 시인이다. 초현실주의는 이상 이후 한국 시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문학사조이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기법에 한정시켜 낮선 이미지의 마주침과 성적 이미지의 도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에게 초현실주의는 문학사조가 아니라, 정신을 굳지 않게 하는 운동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뚫고 나가는 힘이다. 특히 4.19 이후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혁명 역시 상투화되기를 거절하는 그의 태도의 소산은 혁명의 완전을 향해 가는 부단한 자기 부정이다. 시는 자신을 완전히 던지는 행위이며, 그런 의미에서 조심할 것은 투신을 빙자한 안이성이나 행위이다. 그는 시인이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을 참여시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으로 미루어 보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새롭게 현실을 인식하자는 것이 그의 참여시의 골자를 이룬다.

 

     <고은 혹은 소멸의 시학> 고은은 서정주와 함께 불교에서 시적 영감을 얻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불교취는 그러나 서정주처럼 인연설에 기초해 있지 않다. 그의 불교취는 오히려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선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의 선적 발상은 서정주의 불교가 보여주는 샤머니즘적인 면모를 뛰어넘으려는 그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 결과 그는 서정주가 애용하는 토속어를 버리고 오히려 생경한 듯한 서구어를 실험한다. 그 서구어들은 김현승이나 김수영의 관념어가 아니라 주로 고유 명사이다.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색은 바다에 대한 집착이다. 바다를 노래하는 시들이 극히 희귀한 한국 시에서 그의 바다 시는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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