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 작품 감상

2017.01.21 02:23

정국희 조회 수:974

이상의 날개작품 감상

 

 

 

나는 소설보다 날개라는 영화를 먼저 봤던 것 같다. 그래서 날개하면 이상의 날개가 떠오르는 게 아니고 신성일이가 낯선 사내를 껴안고 있는 아내의 방을 지나서 자기 방으로 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영화의 한 컷이 때론 소설보다 더 크게 뇌리에 박힐 수도 있나 보다.

 

처음 날개를 읽었을 때는 이상이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다. 이상은 그저 좀 난해한 글을 쓰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상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난 뒤부터 이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재정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시를 다시 읽고 또 날개도 다시 정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작품성이 참 높은 글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원래 작품을 대할 때는 그 작품만 가지고 논하는 게 정상이지만 작가의 생애를 먼저 알고 작품을 읽으면 훨씬 더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실 이상의 날개는 우유부단한 한 지식인이 파괴되어가는 일인칭 소설로서 한국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실  첫 문장부터 이상하긴하다. 거의 한 장 반 정도의 서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맨 처음 나온 첫 문장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 유쾌하오.” 이렇게 시작된다. 서론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문장과 문장이 연결이 안 되고 앞뒤가 끊어지면서 횡설수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들만 이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굿바이, 하고 끝이 나면서 밑도 끝도 없이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말하자면 본론으로 들어가는 첫 마디가 스토리의 첫 시작이 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시작된 소설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막상 스토리가 전개되고 나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 긴장감이 없는 듯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끌고 가면서도 텐션을 주는 것은 이상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구성 방식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시 같다고나 할까, 깔끔하고 매끄러우면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길지 않고 대체로 곱다. 책보만한 햇빛이라든가, 송이송이 꽃송이라든가, 사뿐사뿐 발자국소리 등 이런 여성적인 문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작가가 마치 이 책의 주인공처럼 참 연약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인 나는 18가구가 주욱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 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 같은 여자들만 살고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33번지 18가구의 모든 여자들이 얼룩진 이부자리를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고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자는 창녀촌의 여자들이 사는 곳에서 살고 있다. 대문은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어서 장사치들이 오면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만 열고 두부를 산다. 그런 여자들 중에서도 제일 작고 한 떨기 꽃처럼 이쁜 여자를 아내로 삼아 방 가운데에 미닫이를 만들어 놓고 아랫방은 아내가 살고 컴컴한 윗방은 주인공인 나가 살고 있다. 행복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핀둥핀둥 게으르고 만 있으면 만사가 그만이다. 오직 근심이 있다면 빈대를 미워하는 것만이 근심이다.


이 대목은 좀 뭔가 어색하다. 왜냐하면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에게 물려서 피가 날 정도로 긁는다고 한다면 여름에는 아마 온몸이 피부병 환자처럼 장난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빈대가 바로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연심이 방으로는 가지 않았 다는 거다. 빈대는 한 마리만 있어도 번식력이 강해서 금방 퍼지기 시작 한다는 걸 작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연심이 방에도 빈대가 있어서 약을 치고 야단법석이 났어야 소설이 더 실감이 났을 텐데 말이다.

 

처음에는 이 소설을 그냥 읽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연심이 남편이 처음부터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둘이서 남편과 아내로 만났을 때는 분명히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었음은 물론 아마 잘생기고 학식도 있고 멋쟁이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심이가 정신이 좀 나간 것 같은 남자와 함께 살았을 리가 만무다. 아마도 연심이와 살면서 점점 바보가 되었고 또 더 바보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 틀림없다. 거기에는 분명 아내의 음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또한 든다. 왜냐 하면, 연심이가 이불속 사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서 자기 방으로 간다. 그래서 화가 난 연심이가 매무새를 풀어 헤친 채 쳐들어와서 남편을 물어뜯고 때리고 난리를 친다. 그런 와중에 아내의 외간 남자가 와서 아내를 한 아름에 덥썩 안고 나간다. 아내는 다소곳이 안겨 나가는데 어쩌면 그 남자 때문에, 혹은 둘이서 함께 비밀한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는 손님이 가고나면 돈을 준다. 그러나 남편은 돈을 쓸 줄을 모른다. 아내의 매춘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주인공은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십 전짜리 은화를 그에게 왜 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모아둔 은화가 가득 담겨 있는 벙어리 저금통을 변소 속에 넣어버리기도 한다. 또 아내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러면서 개가 주인을 따르듯 아내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런 남편을 무슨 못된 계략으로 벌써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매일 음식에 자는 약을 탓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아스피린인 줄 알고 받아먹었던 약이 자는 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잠만 자게 되고 바보 멍청이가 되어가는 것일 게다. 따라서 정신은 점점 더 흐릿해 지고 아랫도리가 홰홰 거리면서 어지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반면 아내인 연심이는 남편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옷도 빨아주지 않고 밥도 정성스레 차려주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하며 내객을 맞을 뿐이다. 사근사근하고 나근나근하게 외간 남자들을 대하면서 밤이나 낮이나 외출도 자주한다. 삶에 불편함이 없는 연심이는 오직 남편만 불편할 뿐이다.

 

그런 연심이는 착한여자인 척 하면서 분명 독한 여자이다. 어쩌면 남편을 골방에 가둬두고 생각나면 밥을 모이처럼 주면서 쫒아내지도 않고 함께 사는 걸 보면 필시 그리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함께 살기 전에 남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던가, 아니면 은혜를 입었다던가, 하다못해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산 부잣집 아들이었다든가 분명 뭐가 있긴 있을 게다. 그렇지만 오래 살다보니 신물도 나고 싫어져서 이불도 햇빛에 말려주지 않고 골댄 양복 한 벌에 자리옷인 스웨터, 그리고 사루마다밖에 주지 않았을 게다.

 

하긴 이 소설이 1920.30년대의 이야기니까 망정이지, 요즘 시절 같으면 택도 없다. 아니. 연심이 같은 여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먼저 주위에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왜 그러고 사냐고 대들거나 아니면 정신 나간 여자 취급내지는 또라이 취급을 받을게다. 아니면 벌써 도망을 쳤던가 또는 살인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소설속의 주인공 같은 그런 남자도 있을 수 없긴 하다.

 

날개는 주인공이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가 끝이 나는 소설이다. 스토리 중에서 딱히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다고도 꼬집을 수도 없고 지루한 느낌도 없다. 통속의 느낌도 없고 상투적인 용어도 없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마음을 울리는 그런 느낌 있는 소설이다.


작가들은 누구나 살아온 환경과 자기가 배운 전문적인 것을 배제하고 살 수는 없다. 의사는 의학적인 용어를 애용하기 마련이고, 약사는 약학 용어를 아무래도 더 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상역시 건축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시에 건축학 개론이 나온 건 자명한 일이며 또한 불치의 병마와 싸우므로 인해 내적 심리가 심화되어 얼마든지 낯선 표현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글을 대하는 평론가나 독자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작가를 함부로 이상한 작가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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