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의 시 두 편 감상

2017.04.06 15:13

정국희 조회 수:308


정현종의 시 두 편 감상

                                            정국희




1) 가을, 원수 같은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이여, 원수 같은

 

 

 

 

      가을, 하면 낙엽이 생각나고 여지없이 닥터 지바고의 낙엽 쌓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렇게 낭만적이고 또 풍성한 가을이 원수 같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붉은 감이 누런 나락과 함께 농촌을 풍요롭게 색칠하는 것도 좋지만 코트 깃을 세우고 낙엽 쌓인 길을 걷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의미를 주는지 모른다. 이런 우수의 계절이 원수 같다는 건 납득이 안 가지만 가을을 타는 남자는 이 계절이 어쩌면 원수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 이처럼 실의 맥락을 해체하고 사실적 의미를 균열시킨 점은 화자 자신에 대한 좌절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으로 풍경을 배제하고 의미론적인 공허를 과잉되게 구축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화자가 바라보는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고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은 존재의 위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비판하므로 서 현실과 자연과의 대립을 날카롭게 포착하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라고까지 할 수 있을까. 실로 가슴에 사무친 원한이 아니고서야 이토록이나 폭력성의 언어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토록 살의를 야기케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그냥 유신체제의 정치적 억압이 극심하던 70년대의 이념갈등에서 온 화자의 극단적 표출이라고 해두자.

 

     한 편으로 <<정현종은 사물화된 세계와 자아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취교감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시집 나는 별아저씨에서 그는 바람이라는 초월적 이미지를 통해서 억압적인 현실과 비루한 언어의 세계를 초월하고자 한다>>  라고 정현종의 시세계를 설명하고 있다.>문학사 P375(민족문학연구소)





 2). 최근의 밤하늘

 

 

 

옛날엔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이 있었으나

지금은

빵 하나 나 하나

빵 둘 나 둘이 있을 뿐이다

정신도 육체도 죽을 쓰고 있고

우리들의 피는 위대한 미래를 위한

맹물이 되고 있다

 

최근의 밤하늘을 보라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별들은 자기들의 빛으로

가슴 깊이 감싸 주고 있다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들을 향하여

유언 같은 별빛을 던지고 있다.

 

 

  

     어린 날,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이런 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의 우리는 과학적인 사고에 기반을 둔 금성 목성 토성 등의 현상을 보고 있지만, 옛날 어린 날의 별들은 목성과 금성이기 전에 등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꿈의 나라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처럼 티비나 장간감들이 없던 시절인데다 특히 전등불이 없는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연히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고 그에 따라 별 하나 나 하나는 어린이들의 영원한 상상의 나래였다.

 

     그러나 최근의 밤하늘에서는 그런 동화적 별은 더 이상 없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가 정신적으로 병든 까닭도 있지만 그 이전에 절대 권력의 사회구조가 너무 난폭한 이유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없는 사회 속에서 안정감이 없는 불안감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군부 독재의 횡포에 직면하면서 그가 애써 찾아낸 삶의 가치를 포기해야하는, 그래서 현실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별을 쳐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밤하늘은 한마디로 강한 자유에의 열망이 짙게 배어 있는 고통의 시라고 하겠다

 

     “정신도 육체도 죽을 쓰고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들을 향하여란 이 대목은 자유의 허용치를 말하고 있다. 강제적 요구 중에 창의성까지 제지하는 것만틈 난폭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까지 속속들이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가난에서 오는 배고픔까지 불안감으로 등장한다면 당연히 별에서 빵 하나 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 된다.


     한 편으론 경제적인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별들이 빛으로 감싸주고 있다는 말은 별을 하나의 보호자처럼 옛날의 그 별로 보고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우주든 사물이든 그것은 발견하고 느낀 자의 마음이므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다. 즉 머나 먼 별이지만 그것에 대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매개의 고리가 이어진다고 하겠다.

 

     정현종 시인은 <<우리는 시를 숨 쉽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 안되거나 살기가 어려울 때 답답하거나 숨 막힌다고 말합니다. 또 곤경에 처하거나 급박한 상황 또는 어떤 일의 와중에서 잠시 벗어날 때 우리는 한숨 돌린다. 심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지요.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이지요. 시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해방이나 열림의 순간을 체험케 합니다.>>( 정현종<시란 무엇인가> 정현종 깊이 읽기문학과 지성사) 이처럼 숨, 가벼움,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자신의 시적 에너지로 표현하고 있다.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6
전체:
87,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