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에 대한 소개, 비평적 감상

                                                                                                                              정국희

 

 

영화제목: The Pianist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주인공 스필만 역), 토마스 크레슈만(독일장교 역) 에밀리아 폭스

수상: 75회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 작품상, 촬영상,

수상: 60회 골든그로브상(남우주연상), 55회 칸영화제(황금종려상).


 

         <피아니스트>는 근래 보기 드문 대작으로서 2차 세계대전 중 참혹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는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전쟁드라마다. 총 제작비 35백만 달러와 1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촬영세트를 준비했다. 감독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인 폴란드 출신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지만 자신이 또한 유대인으로서 어렸을 적에 보고 겪은 체험을 삽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수천 명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 오디션을 위해 모여든 배우가 1400백 명이었지만 감독은 스필만과 흡사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프랑스에서 촬영 중인 애드리언 브로디를 찾아가 부탁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이 영화를 위해 14kg을 감량하며 진솔한 땀으로 감동을 이끌어내고자 쏟은 결과로 29세의 최연소 나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불편한 실화였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내가 유대인인양 울분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조상이 일제치하에서 36년 동안 당했던 원통한 DNA가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황은 질적으로 달랐지만 말살하려는 의도는 일본이나 독일이나 똑같았다. 한 사람의 생각이, 그리고 그 사람을 따르는 군인들이 그토록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전 세계의 국가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런 의구심이 일어났다. 그나마 불편한 심리가 조금 가신 건 끝부분에서 유태인들이 반격을 가하게 되고 러시아 군인들이 쳐들어와 독일군들이 수용소에 들어가는 것에서 분이 좀 풀렸다고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하나 발견한 게 있다면 그것은 출연진들의 대화가 아주 짧고 간결했다. 군더더기가 없이 필요한 말만 했는데도 말을 많이 한 것 보다 훨씬 더 임팩트 있게 전해졌다. 우리나라 영화들은 안 해도 될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 거기에 비하면 이 영화는 대화들이 전부 간단해서 오히려 더 깊게 감동되는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말이 많은 것보다는 없는 게 훨씬 더 좋은건 소설이나 영화나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시작은 피아니스트인 스필만이 쇼팽의 야상곡(녹턴 20)을 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이 비교적 부유하게 살고 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스필만은 193991일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독일군의 폭격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죽음의 역경이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게토(빈민지역, 여기서는 유대인만 갇혀 사는 특정지역) 지역으로 쫓겨나 갖은 고생을 하다가 끝내는 수용소로 가는 열차를 타게 된다. 독일군은 유대인을 때리고 싶으면 죽도록 때리고 죽이고 싶으면 총을 싸서 죽이고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너무 잔인해서 눈을 감은 적도 많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절하고 비굴한 생활을 해야 했던 유대인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참혹하게 죽어야만 했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게 비쳐졌다. 마치 더러운 짐승같이 취급되어 카페는 물론 공원의 벤치에 앉는 것까지도 금지되었으며 인도로 걸어 다녀도 얻어맞았다. 그야말로 독일군들의 야만성은 하늘을 찔렀다


       잔잔한 여운이 도는 장면이 있다면, 아마 수용소행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어미손가락만한 카라멜을 사서 그것을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 가족이 한 쪼가리씩 먹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마지막 가족만찬이 된다. 이 장면은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런 다음, 주인공 스필만이 가족과 함께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오르려고 하는 순간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발견한 한 유대인 경찰이 얼른 그를 낚아채어 자기 뒤로 빼돌린다.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따라가려는 그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소리친다. 그게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된 순간이었고 그 기차에 탄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 영화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라고 하겠다. 인간이 저렇게 독한 동물이었나 환멸이 느껴질 즈음에 독하지 않은 독일군 장교를 한명 만난다. 다시 말하면, 스필만이 독일 장교가 보는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다. 다시 말하면,연주를 하고 있는 스필만의 눈빛과 그것을 바라보는 독일 장교의 눈빛이 아련하게 비춰지는 장면이라 하겠다.

스필만이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고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 속에 은신처를 마련한다. 거기에서 굶어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목숨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을 때 주변을 돌던 독일 장교 호젠벨트에게 발각된다. 그가 너는 누구냐고 물을 때 나는 피아니스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마침 폐건물 안에 피아노가 있어 쳐보라고 명령하자 스필만은 그동안 굳어버린 손을 한참 쳐다보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치기 시작한다.

         그 다음날 장교는 음식을 가지고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군에 밀려 철수하기 직전 더 많은 음식을 주면서 몇 주만 더 버티라고 말해준다. 자기는 떠나지만 너는 그때가 되면 살 수 있을 거란 뜻이다. 그러면서 추워서 떨고 있는 스필만에게 코트까지 벗어준다. 이렇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장교는신이 너를 도운 거다라고 말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는 영화 속이 아닌 실제로도 아주 잘 생겼고 멋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유대인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또한 폴란드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연합군에게 생포된 그는 1952년에 포로수용소에서 죽게 되지만 스필만에게는 잊지 못할 큰 은인의 상징으로 남는다.

          그동안 유대인 학살에 관한 영화는 여러 편 봤다. 신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을 봤는데 가각 다 유명하고 각각 다 가슴 뭉클한 영화였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피아니스트라서 인지 아니면 피아노의 선율이 고와서였는지 잠자리에서도 계속 장면들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생명이란 게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다시 느낄 수가 있었고 그런 귀중한 인생이기에 값지게 살아야겠다고 나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떠나서 가장 불편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히틀러가 죄 값을 받지 않고 죽었다는 거다. 감옥에 오래오래 있으면서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자기가 얼마나 나쁜 인간이었는가를 확실히 알게 한 뒤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 못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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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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