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MOVER

                                                                                                        정국희



 

 

      피터언더우드는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승리하자!” 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이 책을 펴냈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던 바로 2012년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방식을 버려야 산다!“는 이런 주제로 창의성과 다양성을 키우는 교육과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로 탈바꿈하자는 메시지를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메시지는 경제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바로 내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지침서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세 아이들을 키워 당당한 사회인으로 내 놓은 중년의 여자지만 나부터라도 캐캐묵은 의식의 덩어리를 벗어버리고 퍼스트 무버의 주인공이 되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

 

      피터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 는 고종 때 선교사로 한국으로 와서 연희전문대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의 증손이다. 호러스 언더우드는 한국에 뿌리를 둔 서양인으로서 조선에서 교육과 선교를 하다 양화진에 아내와 함께 묻혔으며 2대손, 3대손까지도 양화진에 묻혔다. 언더우드 가문은 127년째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서울 토박이다. 삼겹살과 소주를 즐겨먹는 피터언더우드는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일본에서도 약 4년간 거주한 적이 있지만 그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같은 사람으로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는 한국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우리의 강점을 지키되, 버릴 것은 냉정하게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 한국적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되, 더 나은 진전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서양의 문화는 과감하게 채택해야 한다”. 라고 직설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열린 마음을 갖는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가 걸린 생존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피터언더우드의 진정한 뜻을 간단하게 풀이하자면 이렇다.

 

      첫째, 한국이 극복해야 할 단점과 한계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대부분의 문제점은 바로 50년 넘게 우리 스스로가 장점이라고 믿었던 것들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라이고 단 하나뿐인 고유한 특성을 가진 나라이다. 코리아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함께 단일 민죽이라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또한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작원리를 갖추고 있는 문자(한글)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왕에 대한 신격화를 기반으로 목숨을 바쳤던 일본 가미카제의 쳥년들과는 달리 한국인은 그런 신격화 없이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전쟁으로 모든 국토가 폐허가 된 1950년대에 세계 100위 밖의 최빈국에서 2011년엔 세계 13위의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다시 말하면 목표를 향해 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우리나라의 고유한 특성에서 비롯된 온전한 우리만의 성과라고 하겠다.

 

      한국이 이토록 빨리 성장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우선으로 꼽는 것이 우리라는 개념이다. “나와 너는 하나의 공동체다라는 확신과 믿음이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끊임없이 우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한다. 나는 한국이 이뤄낸 경제 발전의 뿌리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이끈 또 다른 토대인 교육열도 마찬가지다. 한국 부모들의 극진한 교육열은 바로 가족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감에서 유발한다. 세계 모든 나라의 가족이 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한국만큼 가정을 하나의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나라는 많지 않다. 삶의 수준은 낮았지만 배출되는 인재들의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던 이유는 가족의 희생에서부터 출발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한국 국민들이 참여했던 금 모으기 운동은 어떤 경제학 이론으로도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에서는 출신을 가르는 일이 너무나 일반적이다. 서울대학교 출신, 충청도 출신 전라도 출신, 대략 묘사하자면 그것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굳은 신념으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한다. 우리나라처럼 애향심을 강조하고, 한국처럼 동창회가 발달한 나라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해병들이 여전히 기수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고참, 부하로 대접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뿐일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라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면 만난 지 딱 3분 만에 형 동생 관계가 성립된다. 그리고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결속력을 가지고 규모를 확대한다. 문제는 이 공동체가 정도를 넘어설 경우 필연적으로 끈과 연줄이라는 새로운 비효율을 낳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끈과 연줄은 중국에도 있다. ‘콴시 문화라고 하는 건데 콴시는 관계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콴시가 없으면 나무젓가락도 만들 수 없고, 콴시만 있으면 핵폭탄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까지 있다. 하지만 중국의 콴시는 돈과 경제적 이익으로 생겨난 특수 관계다. 그래서 한국의 공동체 문화하고는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현상이 미래 한국의 발전을 막는 상당한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자기 사람을 심는다라는 말은 곧 누군가가 조직에서 자기 파벌을 만들려고 한다는 뜻이다 실제 한국의 공동체 문화는 이처럼 파벌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누구의 직계니 또는 누구 사람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기업이나 정치에서도 파벌이야기가 나돈다. 서인과 동인으로 시작된 조선시대의 파벌은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고 노론은 다시 벽파와 시파로 나뉜다. 이런 파벌이 아직까지 이너지면서 새로운 파벌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파벌은 앞에서 밀어주고 뒤에서 끌어줘 이 사람이 다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결국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파벌은 스스로 확대되며 내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식은 대물림된다.

 

      개인은 조직의 부품이 아니다. 개인을 조직의 부품으로 보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고 구시대의 유물이다. 따라서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인연의 끈을 끊고 이성의 기둥을 세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생각이 사장되면 각 개인의 창의성은 발현될 수가 없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말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어 시대의 문화다. 개인은 조직의 부품이 아니다. 따라서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생각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북돋아야 창의성이 생기는 법이다. 개인을 개성 있는 존재로 시도를 할 때, 그것이 조직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일본사람은 끈질긴 반면, 한국사람은 뜨겁다.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즉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도 초과 달성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오일 달러를 벌어오자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청년들이 너나없이 사막으로 달려가 청춘을 바쳤다. 이 뜨거운 한국의 인부들은 5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사막과 산악지대를 뚫고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첫 삽을 떴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리비아 사람들이 불여준 별명은 사막의 불사조였다.

 

      비록 우리나라가 불가능은 없다라는 훌륭한 생각과 자질로 인해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지만 현실은 변화무쌍해서 우리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장점으로 적용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믿어왔던 그 50년의 장점이 미래에는 우리가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숨 가쁘게 달려온 50년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이제 새로운 백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의하고 있다.

 

       둘째, 지금 우리가 직면한 시대는 우리에게 패스트 팔로어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기를 요구한다. 뒤따르는 자가 아니라 선도하는 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금 차원이 다른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위기는 아니지만 고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그래서 우리는 대비를 해야한다. 바로 지금이 한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한국이 이렇게 긴 역사를 보내는 동안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시기는 없었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내놓았을 때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아이패드의 대향마를 만들 기업으로 꼽은 곳이 삼성전자다. 한국 경제의 위상의 이미 그만큼 세계적인 수순이 됐다. 지금 나타나는 성과는 패스트 팔로어로서 성실하게 일해 왔던 수십 년의 성과가 누적된 결과이다. 이제 삼성은 세계에서 1위를 달리는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됐다. 변화를 위해서는 운명을 걸어야 한다. 그 핵심에는 창의력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다. 많은 회사들이 새롭고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려 노력하고 수많은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20년 전과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시스템, 똑같은 기업들만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창의적인 도전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먼저 틀을 깨면서 치고 나가는 것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사 혁신도, 경영 변화도, 교육 시스템도 남들을 따라하는 건 잘했는데 앞서 뭔가를 하는 것은 경험이 없어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훌륭한 패스트 팔로어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도, 정부 중심의 경제 체제도, 학교에서 문제 푸는 훈련을 열심히 받는 교육 시스템도 변화해야 한다. 인사 혁신만 봐도 그렇다. 말로는 인사 혁신 하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자기 주위에는 말 잘 듣고 아부 잘하는 사람들을 중용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룹의 수장이 창조적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와 오너의 눈에 잘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쓰고 싶은 인재는 창의적이고 혁선적인 세력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내 지위를 보전해줄 충신이 필요할 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냥 바뀌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바뀌어야 한다. 웃기는 말로 머리만 아니라 몸통째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업은 무슨 중세 봉건 왕조처럼 운영하는 재벌 총수들이 바뀌어야 하고. 혁신과 개혁을 운운하면서 정작 자리보전에만 있는 최고 경영자들이 바뀌어야 하고. 윗사람들을 욕하면서 자신도 학연이나 지연을 챙기는 습관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이다. 한국에는 한국다움이 있다. 정말로 한국다움이 있었기에 한국이 이루어낸 성과는 눈부신 것들이다. 지금 한국처럼 성장을 갈망하는 개발도상국에게 한국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어보라하고 조언한다면 그들이 우리만큼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한국인이기에 한국다움으로 높은 성을 쌓기까지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진지하게 한국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국다움으로 잘못된 관습은 무엇인지 성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건 쳐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달라지기 때문에 그 장점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던 많은 장점은 어느덧 미국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장점 가운데 살릴 것은 살리고 그 위에 창의적인 새 시대의 인프라와 새로운 문화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문제가 있으면 눈앞에 닥친 안건만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본질을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 우리가 지금 시도해야 할 변화는 뿌리를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다움의 대안은 서양다움이 아니다. 말하자면 현상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다움의 대안은 새로운 한국다움이다라는 뜻이다. 이 새로운 한국다움에 충분한 역량이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 질문은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이다.

 

      셋째, 새로운 시대의 핵심은 노벨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 오랫동안 궁금해 온 사항이다.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가 약하고 학문적 토대가 충분치 않다. 또한 교수진 구성이 부족하고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다양한 의견이 많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노벨상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인지를 살펴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온다. 노벨수상의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Unique Contribution For Better World" . 쉽게 말해 노벨상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독창적인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는 뜻이다

 

      철강 산업을 발전시키고 성능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도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로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일은 누눈가가 만들어놓은 일을 바탕으로 그것을 더 개선했을 뿐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개척한 유니크하고 독장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수장자가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벨상은 창조적인 사람에게, 유니크한 사람에게만 주는 상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욱 시스템 자체가 창조성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 전체 구조도 창조성과는 둥떨어져 있기 때문에 노벨상은 불가능한 것이다. 공부하는 목적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는 잘살기 위해서라면 절대로 더 나은 독장적인 기여는 나올 수 없다.


      2006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남의 인생을 살지 마라. 네 목마름을 추구하라. 바보같아도 좋다이 말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라는 뜻이다. 기존에 누군가가 풀어놓은 답을 베끼는 것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논술 시험을 가르치는 한국의 유명한 학원에서는 창의성과 개성 있는 글의 사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따른 가르침을 준다고 한다. 이런 글을 달달 외워서 논술 시험을 보면 과연 그 학생들은 창의력과 개성이 뛰어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판단력은 떨어질 것이다.

남의 인생을 살지마라는 뜻은 기존에 널려있는 답을 찾지 말고, 단순한 극복 대상을 찾지 말고,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미래를 창조하는 방법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과 실패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가슴 속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정답은 두 개 이상일 수 있다! 한국은 수학 강국이다. 답을 찾아내는 데에는 정말 귀신같다.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한국이 줄곧 5위권 이상의 성적은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차 방정식을 풀면 근이 세 개까지 나온다.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기가 막히게 그 세 개의 근을 다 찾아낸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세상에 나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면 그 문제의 답이 한 개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답이 하나이지 둘이나 셋이 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3차 방정식은 기가 막히게 잘 풀면서 왜 3차 방정식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상 문제에선 답이 하나 이상이라는 생각을 못할까? 그것은 수학을 겉으로만 배웠기 때문이다. 문제 푸는 요령은 멋지게 깨쳤는데, 정작 문제의 본질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모른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논리적 사고를 통해 식을 세우고 변수를 설정하느냐에 있지 않고 정답은 하나라는 가르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답을 찾는 것(find the answer) 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solve the problem)은 다르다. 한국 교육은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 새로운 핵심은 창의력이다. 이 창의력은 기존에 누군가가 풀어놓은 답을 암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교사는 조력자일 뿐, 교육의 주체는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문단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느리고 고통스럽다. 한국 교육은 이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빨리 1번 문제를 풀고 2번 문제로 넘어가야지 오래 있는 꼴을 못 본다. 그래서 스파르타 식 학원에 더 많은 문제의 답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퍼즐을 맞추는데 잘 못 끼우면 여기에 끼워야지하고 끼어든다. 아이들이 숱한 실패를 겪으면서 결국 정답을 찾아가는 그 느림의 시간을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저장 장치가 아니다. 미래의 인재들은 저장이 아니라 활용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므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학교별로 특색을 갖춰야 한다. 대학의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그러므로 왜 한국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지 못할까 하는 그 대답은 여기까지 충분히 설명 했다고 생각한다.

 

       넷째, 권위의 나라 한국, 한국에서 권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가운데 하나다 윗사람의 권위가 한국만큼 강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윗사람이 한마디 했을 때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실행이 되는 나라는 얼마 없다. 그래서 피터 언더우드는 한국은 왕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왕이고, 아버지는 가정의 왕이고, 기업의 오너는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에 가깝다. 따라서 왕의 한마디를 존중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6.70년대 경제 개발을 위해 온 국력을 쏟아 부을 때도 왕의 문화는 효율적인 구석이 있었다. 대통령이 중화학공업으로 가자한마디 하면 온 나라가 중화학 공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물가를 잡자제안하면 모든 경제 시스템이 물가 안정에 집중한다.

한국은 이런 왕의 명령에 헌신적으로 노력을 바치는 착하고 부지런하며 똑똑한 국민들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 특유의 권위를 존중하는 문화에다 군사 문화가 합쳐지면서 강력한 군사 왕권국가에 더 가까워졌다. 굳이 표현하자면 돌격 문화라고 해야 할까. 지휘자가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 모든 조직원이 목숨을 걸고 돌격한다. 한 예로 병사가 장교에게 군화가 작습니다라고 말하면 발을 군화에 맞춰라고 답을 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게 한국식 돌격 문화다. 이처럼 왕의 한마디는 온 국민이 충성을 바쳐 지켜야 하는 헌법이고 윗사람의 돌격 앞으로 명령하면 모두 목숨을 건 돌격전을 벌여야 하는 게 한국이었다.

 

       놀랍게도 권위주의와 돌격 문화는 한국에 큰 성장을 가져왔다. 문제는 이런 과거의 경험이 과연 미래의 성공까지 담보해줄 수 있느냐다. “권위주의는 타파해야 할 잘못된 문화다라고 말은 한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이 문화가 너무나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 왜냐하면 군림하는 것은 윗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을 절대 권력을 놓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부터 새로운 전제를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열어보지 못한, 아주 궁금한 그 무엇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군림과 권위는 설 땅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세계를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하나만의 두뇌가 아니라 수만 명 대중의 지혜가 필요한 걸 인정하면 생각이 열리기 시작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새로운 문화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버려야 할 가장 시급한 문화는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망상이다.

 

       권위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지금 한국의 문화 속에서 가장 시급히 각성해야 할 계층은 아랫사람이 아니라 윗사람이다. 본질을 혁신하려면 윗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윗사람의 권력을 한 번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려하지 않는다. 윗사람은 군림하지 않고 설득해야 한다. 반론이 없는 것은 조직에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고 다양성이 없는 것은 조직에 창의성이 죽었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아이디어를 들고 왔는데 쓸데없는 잣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라고 말하는 순간 그 조직은 죽는다. 마음에 안 든다고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누가 그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그 아이디어가 잘못인지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살고 창의력이 살아난다.

 

       ‘미국이 힘이라 불린 한 장의 사진, 이 사진은 앞에서 들었던 사례와 얼마나 비교되는지 독자들께 보여드리고 싶다. 이 사진은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미국 워싱턴발로 전 세계에 전송된 사진이다. 한국의 한 언론은 이 사진을 두고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라고 소개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사진이야 말로 실로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왼쪽에 두 번째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리고 가장 크고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합동특수작전 사령부의 마셜 웹 준장이다. 이 자리에는 모두 내노라하는 장관들이 동석해 있었다. 그런데 상석은 주요 인사의 차지가 아니었다. 고작 준장이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을 제쳐놓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이 상석에 앉지 않았다고 세계 어느 누가 오바마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겠는가.

 

       3M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박사는 당시 강력접착제 개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실수로 이상한 접착제를 만들고 말았다. 이 접착제는 접착력이 약했지만 붙였다가 떼어내도 흔적이 남지 않는 엉뚱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이상한 발명품을 놓고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물을 바로 회사에 보고하고 그 실패물의 장점을 살려 제품발표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 접착제는 세계 문구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제품으로 탈바꿈 했다. 3M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절대 죽이지 않는 회사 풍토를 가지고 있다. 연구원들이 연구할 떼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해봐라, 해보고 안되면 고쳐라라고 장려한다.

 

      포스트잇의 개발에는 분명히 우연과 행운이 따랐다. 그 우연이 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바로 그 우연의 장소가 3M 이었기 때문이다. 수억 명의 생명을 구해 ‘20세기 인류 최대의 발견이라고 불리는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자 알렉산도 플레밍고도 실수로 실험 접시에서 피어난 더러운 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의 단초를 찾았다. 만약 플레밍고가 에이! 실험을 망쳤네하며 접시를 씻어버렸다면 지금 인류의 평균수명은 30세에도 못 미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창의성리란 이런 것이다. 창의성은 바로 실패를 딛고 시작된다.

 

      다섯째,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의 하나가 재벌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 재벌은 기업보다는 왕국에 가까운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사의 오너는 재벌 2세다. 그들의 아버지는 한국 경제를 이끈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똑똑한 왕의 자식이 왕이 된다고 해서 그 아들도 똑똑하다는 법은 없다.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7공자라는 그룹이 있었다. 술과 도박, 여자가 있는 곳이면 항상 함께 한다는 방탕함과 안하무인에 사람들의 혀를 차게 했던 그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국가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재벌들이었다.

 

      한국에서 재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국재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한국은 텅스텐을 팔아 경우 달러를 마련하던 세게 최후진구에서 21세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자리에 올랐다. 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중심에는 삼성, 현대, LG, SK 등 재벌 그룹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경제 성장의 과실을 모두 이들 재벌이 가져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기업이란 기본적으로 그 기업이 발을 딛고 있는 사회의 토대 속에서 성장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창업주들의 현명함과 개척 정신도 분명이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지금 한국의 경제를 주도하는 재벌이 이뤄낸 성과는 그 가문 창업주만의 공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헌신적인 희생이 결합되면서 현실화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있다. 그 핵심 가운데는 바로 우리 국민의 끊임없는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재벌이 누리고 있는 많은 성과들은 창업주 가문뿐 아니라 그 기업이 자라난 토양을 제공한 사회 공동의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창업주들의 훌륭함에 한국 국민들의 희생이 함께 결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한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008년 세계 정보기술 업계의 거목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이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의 은퇴는 한국 재벌 총수들이 보여주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일선 후퇴가 아니라 진짜 은퇴였다. 그는 은퇴 후 재단을 세우고 기부와 환경 운동 같은 사회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매주 5권의 책을 읽으며 매일 아이들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 준다. 그의 아내는 은퇴 후의 게이츠에 대해 지금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황제가 은퇴하기에 너무 이른 그때의 나이는 56, 그러나 그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 새로운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게이츠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였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어떤 시기가 되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는 구시대 지도자가 되게 마련이다. 그는 40조에 가까운 돈을 털어서 조용하게 기부하고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고작 조그마한 돈만 남겼다.

 

      빌 게이츠는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만인이 듣는 자리에서 내 예측이 맞았다라고 자랑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실수하지 않는 황제보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황제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존속하는 한 게이트의 천재성과 그의 헌신을 영원히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회사를 통해 엄청난 권력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를 사회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도전 정신을 그 회사에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도 평생 정직한 기업 경영과 성실한 납세, 헌신적인 사회 기부 활동으로 한국 경제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 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고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일군 기업의 경영권을 자손에게 일절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기업은 사회의 공유물이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능한 경영자가 한국의 미래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실로 많은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다양한 영역에서 인재들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경영인들도 실력으로 경영해야 하고 경쟁을 통해 더 훌륭한 경영인들이 많이 양산돼야 한다. 한국 경제에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리더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리더가 겸손해야 하고 리더기 비전이 있어야 하며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학벌이 한국 사회에서 과도하게 인정을 받는 이유는 이미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이들 명문대학 출신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이 이렇게 명문대 출신으로 한 번 고착돼버리면 정작 출신들조차 스스로가 반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도전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림동 고시촌을 가보라. 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한 단면이 이 신림동 고시촌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모든 인재들이 오로지 법관이 되겠다고 인생을 걸만큼 그 직업이 중요한 중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수많은 인재들이 이 고시에 인생을 건다. 다시 말하면 법관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명문대를 가고자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명문대학 졸업장을 따야 거만한 상류층 의식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보수성이 훨씬 더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수많은 인재들이 대학졸업장을 따겠다고 10대의 나이에 밤을 지새고, 대학에 진학하면 고시에 합격하겠다고 고시촌에 모여든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개방은 경쟁력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도심 한복판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대학 강단에서 수백 명의 외국인 교수들이 강의를 하며, 전경련 모임에 수십 명의 외국인 최고 경영자가 참석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한국인은 외국인데 대해 큰 장벽을 두고 살아간다. 외국인이 스스로 정열적인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야 겨우 그들을 대화의 일원으로 끼워준다. 그렇지만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거리감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다. 다른 피부 색깔, 다른 모양의 얼굴다른 발음의 외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진정한 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순혈주의라는 말을 많이 쓴다. 순수 혈통이라는 말은 곧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순혈끼리 모여서 우리는 적통의 자손들이다라며 스스로를 고귀한 척하면 자기들끼리 폼은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유전자적으로는 결국 퇴화하게 마련이다. 한국은 문호를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외국 것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실력이라는 것은 더 많은 것들을 접하고 더 많은 외부의 요소들과 섞일 때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효율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단어 빨리빨리한국인의 스피드 감각은 세계 어느 라라 사람도 쉽게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아예 외국인들은 한국의 이 독특한 문화를 빨리빨리 문화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외국인이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았던 긍정적 대답은 부지런하다였고 가장 부정적 대답은 빨리빨리였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외국 비즈니스맨들에게 설명할 때 우스갯소리로 한국은 발사조준 준비의 나라다라고 설명한다. 준비건 조준이건 필요 없이 일단 쏘고 나서 뒷일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다른 한 가지는 동시동작이다. 동시동작은 빨리빨리 문화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시작하고 두 가지도 부족해서 세 가지, 네 가지 일을 동시에 손에 쥔다.

 

       한국은 속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 패스트 팔로워 시대에는 일단 빨리 해놓고 보는 것이 많았다. 혹시 그 길이 아니더라도 기동력을 발휘해 다시 시도하면 실패를 딛고 올라 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규모를 감안하면 우리는 이런 실패를 속도로 극복하기에 우린 너무 많이 와 있다. 지금은 후진국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은 실패했으니 다시 시작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앞으로 나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인가. 피터 언더우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조전 정신이 충만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자기 혁신에 철저한 나라, 도전과 성과에 대한 공정한 성취가 가장 잘 보장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가 나이가 들어 양화진에 뭍힐 때 한국이 바로 이런 나라가 되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한국인에 대한 분석과 관찰력이 놀라워 혀를 내둘렀다. 사실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이런 단점과 장점들을 확실히 잘 몰랐다. 그러나 외국에 나와 살면서 비교해보니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피터 언더우드의 말은 마디마디가 구구절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반복되는 말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 것은 앞의 말을 더 강조하기 위한 보충설명으로 확실히 집고 넘어가려는 것에 불과했다.

사실 이십여 년 전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친구 아들은 우리나라도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리를 해서 거짓말한다고 미국애 한테 얻어터지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기도 못 펴고 살다가 어느 날 골프선수 박세리가 화면에 등장한 이후부터 미셀위, 박찬우, 박지성 거기다가 한류까지 겹쳐서 기를 펴고 살만 하나 했더니, 요즘은 삼성과 엘지에 이은 하이테크로 우리나라는 기라성같이 선진국 대열의 앞자리로 점점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도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똑똑하다는 평판으로 곳곳의 주요 요직에서 일을 하는가 하면 돈도 열심히 벌어서 엘에이 중앙 윌셔거리는 한국인의 빌딩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거리가 되었다.

 

물론 하도 열심히 일해서 한국인은 돈만 안다는 낙인도 찍혔다. 그래서 한국인은 하다못해 시장봉다리 안에도 현금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흑인이나 라틴에게 타깃이 되는 단점도 있다. 또한 피터 언더우드가 말했듯이 빨리빨리문화는 여기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멕시칸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빨리빨리 라고 한다. 그들은 주로 한국 옷공장이 있는 다운타운 자바시장이나 혹은 한인타운에 있는 식당 그리고 세탁업, 페인트업 같은 곳에서 종사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오너의 빨리빨리란 말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만사가 느리고 세월아 네월아 바쁠 것 없는 그들에게는 참 신기하기까지 한 그 단어가 아무래도 재미있는지 지나는 코리언에게 실없이 그 단어를 던져보곤 한다. 또 한 예로, 한국의 근성은 김치 맛처럼 중독성이 강해서 여기까지 와서도 학연과 지연을 찾고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 책에서 언급한 우리라는 단어의 공동체 문화이다. 사실 외국에선 빽과 사바사바는 통할 리도 없고, 외로운데다 믿을 사람도 없다보니, 출신이 생기고 동향이 생겨서 어려움도 당하고 사기도 당하는 형태의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한국사람은 남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한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싸오려 해도 남이 흉본다며 말리고, 나이들어선 생머리를 해도 흉본다고 말린다. 그래서 시장이나 백화점에 갈 때도 차려입고 간다. 말하자면 흉보이지 않게 함이고 또한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한국사람들은 남을 흉보고 무시하면서도 남이 자기를 흉보고 무시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That's None Of your Business 라며 아무 상관 안하는 서양 풍습이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간섭할 때나 안 할 때나 나서는 것도 문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파마머리 대신에 생머리를 하고 있다. 미국의 카네기 멜런 대학 멋쟁이 며느리가 파티나 모임도 아니고 뭘 사러가면서 잘 차려입을 필요가 뭐 있느냐고 했던 것처럼 그런데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남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결론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비슷하다. 다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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