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론에서 다양체의 원리

2018.01.13 23:27

정국희 조회 수:486

                                

                           유목론에서 다양체의 원리의 예 (자수와 패치워크)


 

      먼저 다양체라는 말에는 이데아의 원형을 깨는 창조라는 날것의 의미가 있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플라톤의 영구불변인 하나(The One)의 전통이 아닌 상반된 개념의 여럿(multiplicity)의 반 전통을 말한다. , 현대철학에서는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비판하고 차이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다면 고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중심의 원리에 비판적 의식을 깨는 다양체는 어떻게 사유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현대 철학의 시발점인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현대 사유의 복수성인 질적 차이를 창안하면서부터이다.

 

      베르그송의 다양체와 들뢰즈의 다양체는 이론적인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베르그송의 다양체들은 많아지는 만큼 그 성질도 다양하다. 이를 테면, 다양체의 속성을 이데아의 공간적 성질을 띤 동일성(self identity)이 아닌 시간과 더불어 변해가는 시간성 속성을 띤 지속(持續)으로 본 차이다. 다시 말하면, 베르그송은, 실재 생성과 변화하는 그 자체로서 창조되는 존재의 속성을 본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반해 들뢰즈(Deleuze: 1925-1995)는 플라톤과는 정 반대의 대척점에서 베르그송의 다양체 이론(질적 복수성)만을 수용하면서 플라톤의 이데아 또한 다양체로 대체한다. , 다양체를 시간성과 공간성이 얽혀 있는 장(: field)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일반상대성이론처럼 공간과 시간을 분리할 수 없듯이 들뢰즈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함께 공존한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 논리를 유목론에 적용하면 이동 경로에 따라 유목민의 영토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궤적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접속이 되고 그 차이는 바로 유동적인 다양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정되고 다시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특성을 지니므로 오직 접속에 의해서만이 구축되고 해체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들뢰즈 철학에서의 존재론은 다양체의 창조로서 개체 자체의 존재들에 근원을 두는 차이생성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이의 생성론은 쉽게 자수패치워크의 개념쌍으로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테마나 모티브가 먼저 존재하고 색실로 그 정형화된 공간을 채워가는 자수와는 정 반대로 천 조각 하나 하나를 연속적으로 이어가면서 낱낱의 개체들이 접속해 가는 패치워크의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패치워크의 유목론적(또는 차이 생성론적)특징은 개체 자체에 창조적 역능(potential)이 내재해 있다. 천 조각 자체에 존재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무수한 조합의 배치(assemble)가 천 조각들의 집합에 잠재태의 형태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수는 원형의 모방에 해당하고 패치워크는 창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유목미학은 한마디로 창조에 대한 이야기이고 창조란 곧 세상의 모든 접속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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