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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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내가 지고 (367장)

2010.09.17 14:16

그레이스 조회 수:546 추천:19


* 십자가를 내가 지고 *


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후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영화 모두 잃어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얻겠네 (찬송가 367장)


이 찬송의 작시자인 헨리 프렌시스 라이트(Henry Francis Lyte) 목사는 1793년 6월 1일 스코틀랜드 켈소 부근의 한 작은 마을 에드냠에서 출생했다.
그는 불행히도 어려서 양친을 잃고, 아일랜드의 어느 양육원에서 자라, 듀브린의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시 그는 심한 경제적인 타격으로 매우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는 시에 소질이 있어 세 번이나 작시(作詩)상을 받았다.
라이트는 23세 때 처음으로 아일랜드의 작은 교구를 맡아보는 전도사로 파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전도 사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1818년, 즉 그가 25세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이웃 동리에서 병석에 누워 있는 친구 목사인 헌트씨로부터 급히 와 달라는 전갈이 왔다. 그 목사는 교회의 일을 맡고 있었으나 구원의 은총에 접해 본 일이 없으며, 죽은 후 하나님의 품안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조차 가지지 못한 채, 즉 죽음에 대한 아무 준비도 없이 이미 사경에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사람이 구원함을 받는 것인지 알기 위하여 바울 서신서를 숙독하며 자기들을 거듭나게 해 달라고 간곡히 기도했다.
마침내 그들은 성령의 감화하심을 힘입어 한없이 크고 끝없이 깊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갔다.
구원을 경험한 그 친구 목사는 기쁜 마음으로 평화롭게 죽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온 라이트는 자기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참으로 큰 사실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 곧 내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신 구세주임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그 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보게 되었고, 성경 연구와 설교하는 모든 방식이 전과는 달라지게 되었다.”

그 후 그는 1823년 데본셔의 해변인 브릭스햄의 분교구(分敎區) 목사로 가게 되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 도시인 그곳에서 그는 24년간을 목회했다.
자연 환경은 아름다웠으나 그곳은 어부들의 세계라서 난폭하고 무질서하며 기질이 날카롭고 언동이 매우 거칠어서 다루기가 힘이 들었다.

게다가 기후가 맞지 않아 자신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부드럽고 민감한 그가 우락부락하고 몰상식한 어부들을 상대로 구령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십자가였나 하는 것은 가히 짐작할만 하다.

여기 소개하는 이 찬송은 그가 브릭스햄으로 전직되어 온 다음 해인 1824년에 쓴 것으로, “…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막 10:28)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그 후 라이트 목사의 따뜻한 사랑과 희생적인 봉사는 억센 어부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야 말았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해 가는 데 필요한 건강을 무척이나 원망했지만 그의 중책은 한번도 그에게 건강해질 기회를 주지 않아서, 마침내 1844년에는 쓰러져 병상에 몸져 눕게 되었고, 급기야 1847년에는 천식과 폐병이 재발했다.
의사의 권유를 받은 그는 그 해 9월, 불란서 최남단에 있는 니스로 휴양을 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동년 11월 20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헨리 에드워드 맨닝은, “라이트 목사는 웃음 띤 얼굴로 하늘을 가리키며 ‘평화’, ‘기쁨’이라고 중얼거리며 평화스럽게 죽어갔다.”고 말했다.
  


제공 : 기독교복음침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