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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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 크리스챤 타임즈 >

2004.08.23 01:52

홍인숙(Grace) 조회 수:432 추천:49


                         이별 연습
                        

                                                                                                홍인숙(Grace)


큰 아이가 몇 달 전부터 독립을 선언해왔다. 허락을 해 주지 않자 어느 날, 말도 없이 친구의 아파
트로 가버렸다. 아이가 가고 없는 방에서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으로 여러 날을 눈물로 지냈다.
곳곳에 스며있는 아이의 흔적들은 아이의 부재를 더욱 실감나게 하였고, 그 사랑스런 잔영이 사라
지면 허무함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하였다. 말도 없이 떠난 아이에 대한 배반감, 그 동안
아이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등, 자식을 떠나보낸 상실감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밀려왔다.
  
어렵게 가진 아이라서, 또 첫애라서 그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했었다. 아이에게서 교과서의 모범답
안처럼 완벽함을 기대했던 나.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미명으로 긴 세월 아이의 숨통을 죄어 왔는
지도 모른다. 아이는 대학을 집에서 다니느라 스무 살이 넘게 부모의 간섭아래 살아왔다. 부모를
떠나 아파트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워 언젠가부터 구속을 못 견뎌
하는 눈치였다.  이른 귀가시간. 돈 문제, 친구문제 등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어쩌면 아이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아이가 성인이 된 것을 조금도 인정하지 못하고 언제나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던 내 쪽에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내년이면 작은아이도 대학에 가게 된다. 거의 모든 틴에이저들이 그렇듯이 작은아이도 벌써
부터 집을 떠날 꿈을 꾸고 있다.
유충이 때가되면 고치에서 나와 아름다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아이들도 이제 스스로 부
모에게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아이의 인생과 내 인생을 혼동하고 언제나 품속에 품고
있는 것만이 최상이라고 고집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미련 없이 자식을 떠나보낼 줄 아는
성숙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자책하고 슬퍼하기보다 그들의 성장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넓은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와 인내를 심어주는 원
동력이 될 것 같다.    결국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큰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허락 없이 가버린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독립하려는 마음은 이해한다고.  
모든 것을 스스로가 선택할 나이가 되었으므로 신중히 선택하고 선택한 것에는 반드시 책임을 저
야 한다고. 그리고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을 부탁하고 마지막으로 엄마는 언제나 너
를 믿고 조건 없이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며칠 후, 편지를 받은 아이는 훨씬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그도 최초로 집을 떠나 보니
비로소 부모의 존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아이들이 다 떠나면 그 빈 둥지에서 맞을 쓸쓸할 노년을 생각하니 그 동안 아이들 뒷전에 밀
려 소리 없이 있던 남편의 존재가 갑자기 크게 부각되어 왔다. 역시 부부만이 마지막 날까지 오순
도순 기대어 살아가게 될 것을. 이제부터는 남편을 향한 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질 것이리
라.

                     (1999년 크리스챤 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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