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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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속삭임 <한국일보>

2005.09.05 15:36

그레이스 조회 수:370 추천:53


길의 속삭임 / 홍인숙(그레이스)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길에 나서보자

시원스레 일렁이는 바람이 있다면
발그레 잘 익은 석양이 있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
길의 속삭임을 들어보자

하늘과 땅 드넓은 공간에
화평한 꽃과 꽃,
지붕과 지붕, 사람과 사람,
풀잎 하나하나에도
불끈 솟아오른 푸른 혈맥을 보라

눈감아도 마주 보이는
지척인 우리
그 사이에도
주체할 수 없게 쌓아올린 가시덤불은
노을에 불태우고

하얗게 사윈 한 줌 재는
대지를 축복하는 평화의 비로
길 위에 흩뿌리자

오수(午睡)의 하늘 아래
꿈을 안은 풀꽃처럼
비밀한 길의 음성을 들어보자

바람도 재우고
석양도 재우고
그늘진 마음도 잠재우는 길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펜클럽문인광장 9/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