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홍인숙(Grace)
내 생에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노래
한 가닥 속눈썹 같은
외발 춤사위로
유성기판 뱅뱅 돌며
신명나게 들려주던 가락
그땐 몰랐지
그것이 눈물 절절 밴
내 민족의 구슬픈 가락인 줄은
아리랑은 바위처럼
쌓인게 무거워 울지도 못해
침묵으로 누워 있는
우직한 전설이 되고
가슴 시린 민족의 한은
검붉은 노을로
온 누리에 질펀하게 쏟아져 내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 * *
아버지의 아침
홍인숙(Grace)
자명종보다 먼저 달려온 파릇한 미명이
소롯이 잠에 덮인 세상을 열면
녹슨 계단 아래로 서둘러 어둠 지우는 발길
바지자락에 찰랑이는 이슬을 머금고
꽃무더기 화사한 공원 묘지에서
얼굴 없는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굳은 허리를 펴 높이 솟은 하늘을 바라고
시큰거리는 무릎을 추슬러
아슴한 기억이 드러누운 대지를 한주먹에 담는다
하나 둘
하나 둘
둘 둘 셋 넷
밤새 비워낸 가슴을 다시 말갛게 헹구어
하얗게 뜨거운 입김으로 새벽 하늘을 가르는 외침
새파란 미명을 향해 쏟아내는 팔순의 싱그러움이여
* * * * *
예기치 못한 인연처럼
홍인숙(Grace)
죽은 넝쿨 숲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
예기치 못한
우리들의 인연처럼
죽은 것은
생명의 빛으로 거듭나고
새로 난 것은 죽음 곁에서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는
인연이란
죽은 넝쿨 숲에서
청초한 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것
낮은 하늘
생과 사의 거리에서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림은
새 생명을 잉태할
여름비를 안고 있는
뜨거운 하늘 때문.
( 미주 펜문학 2004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