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9
전체:
457,847


사랑한다는 것으로 <한국일보 >

2004.08.17 04:22

홍인숙(Grace) 조회 수:364 추천:34


                  사랑한다는 것으로

  
                                                         홍인숙(Grace)
    

  

"미세스 홍, 된장찌개 끓여 놨으니까 빨리 오세요."  미세스 오의 전화다.
소박한 상차림이 정겹고,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가 봄볕처럼 따스한, 서로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십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겉으로 우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저 항상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을 느끼게 하는 친구이다.
  
편안하다는 것, 이 것만큼이나 더 확실한 사랑의 확인이 또 있을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내 안으로 소중히 끌어안고 자연스레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까이 있어 주다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애써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도 정다운 눈빛 하나로 가슴 깊은 곳까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난 가끔 이 쉬운 사랑의 개념조차 잊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늘어나는 잔주름이 마치 남편의 탓인 양 투정부리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쉴새 없이 잔소리를 해 대며 꼭 끝머리에는 이 엄마의 지고한 사랑 때문이라고 덧붙이곤 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그러워지리라. 나의 사랑 안에서 그 누구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리라. 가족에게는 물론, 끊임없이 만나지는 사람들과도, 그 만남을 항상 첫 만남처럼 신선하고 소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수준 높은 사랑의 감각을 가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친구가 맛있게 끓여 놓은 찌개가 식기 전에 남편과 함께 떠나는 차 속에서, 평소 좋아하는 서정윤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하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희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원제: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8 아버지의 훈장 <한국일보> 홍인숙(Grace) 2004.08.17 308
187 슬픔 대신 희망으로 <한국일보> 홍인숙(Grace) 2004.08.17 299
186 둘이서 하나처럼 <한국일보> 그레이스 2004.08.17 329
185 마주보기 <한국일보> 홍인숙(Grace) 2004.08.17 306
» 사랑한다는 것으로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364
183 삼월에 <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285
182 나눔의 미학 <한국일보> 그레이스 2004.08.17 288
181 또 다시 창 앞에서 <한국일보> 홍인숙(Grace) 2004.08.17 288
180 사월이면 그리워지는 친구 <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454
179 박목월 선생님 <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289
178 자유로움을 위하여 <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302
177 아침이 오는 소리 < 한국일보 > 홍인숙(Grace) 2004.08.17 501
176 창을 열며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7 478
175 슬픈 첨단시대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7 277
174 새봄 아저씨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8 408
173 사랑의 열매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8 301
172 아이들을 위한 기도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8 510
171 두 시인의 모습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8 293
170 사랑의 편지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20 336
169 감사 일기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20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