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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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명 (詩人薄命)

2004.10.12 06:02

정유석 조회 수:329 추천:28

                    시인 박명 (詩人薄命)


                    정유석 (수필가, 정신과 전문의)



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가인박명 (佳人薄命)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가(佳)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박(薄)은 엷다는 뜻이니 미인의 명운(命運)은 없다, 그러니까 미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지속적인 운동과 충분한 영양분 섭취를 통해 적당하게 근육까지 발달한 건강한 여성을 미인으로 꼽는 요즈음 세상에서는 적절한 표현 같지 않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미모를 갖추지 못하고 태어나 평범하게 일생을 마쳤던 그 수많은 선대 여인들에게는 얼마나 위로와 안심을 주는 말이었을까? (너, 잘 빠졌다고 설치지마, 빨리 죽어.)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단신을 보니 시인의 평균수명은 62세, 희곡작가는 63세, 소설가는 66세 그리고 넌 픽션 작가가 68세로 시인의 수명이 가장 짧다는 기사가 있었다. 다시 말해 현대는 [시인 박명](詩人薄命)의 시대라는 말이렸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이미 전에 소개했던 시인 실비아 플랫은 30세에 오븐에 머리를 밀어 넣은 채 개스를 틀어 자살했으며 새러 티스데일은 48세에 사망했다. 그 외에도 하트 크레인은 32세에 투신 자살을 했고 핸 섹스턴은 45세에 목숨을 끊었다.

흥미가 생겨서 이 기사의 출처를 알아보았더니 2003년 11호 [사망연구 잡지](Journal of Death Studies)에 캘 스테이트 대학의 제임스 카우프만이란 심리학자가 발표한 논문이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캐나다, 멕시코, 중국, 터키 그리고 동부 유럽에서 이미 사망한 문인 1987명을 대상으로 해서 통계를 낸 것이다.
그는 시인이 빨리 사망하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곤란이 심하거나 사회에서 관심을 덜 받거나 또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 아닐까 조사했다.

결론은 시인은 이런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에 침잠해 질수록 더욱 우울해 질 수 있는데 시인은 누구보다도 자주 사변에 빠져든다. 시인은 젊어서 절정에 오르며 혼자서 글을 쓴다."
시인은 일생에 걸친 작품 활동 중 20대에 발표하는 비율이 소설가에 비해 2배가 높다. 더 일찍이 개화하는 셈이다.
이것을 텍사스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심해 잠수부의 작업보다 더 위험스럽다. 그러나 그들이 시를 쓰지 않았다면 훨씬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1975년 사이먼 톤이란 학자는 420명의 문인들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고금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인이 다른 장르의 문인들보다 평균 6년 빨리 죽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어떤 연구자에 의하면 일반인들보다 더 주관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문학에 탐닉하고 거기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시는 산문에 비해 더욱 내향적이고 성찰적이면서도 자기 표현적이다. 그런 관계로해서 시인에서 정신병 발생 빈도가 높으며 그것이 빈번한 자살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한편 소설가나 극작가는 사회 생활은 영위하나 시인은 외롭고 독립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산문을 쓸 때에는 항상 해야할 다른 일이 있어서 머리를 쉴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시를 쓸 때 다른 일에 시간을 소비하기 힘들다. 채울 수 없는 수많은 외로운 시간을 홀로 앉아 대면해야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전 뉴햄프셔주 계관시인이었던 79세의 시인 맥신 쿠민은 이렇게 반박하고 있다. "시인의 자살은 치과 의사의 자살율에 비해 높지 않다. 나는 비교적 홀로 있는 시간이 많지만 우울하지 않다. 나는 3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어려서부터 번득이는 재능을 나타낸 것도 아니다."
그러면 신문에 칼럼이나 쓰는 의사들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여러군데를 조사해 보았어도 그런 연구 결과는 발견할 수 없었다.
  

(국제펜 한국본부 S.F 지역위원회 발행 '금문교' 200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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