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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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도 서 있는 자리가 중요하다

2004.09.20 16:28

전주호 조회 수:267 추천:18

나무에게도 서 있는 자리가 중요하다

                                
                               전 주 호


경상대 건물을 나서다
무성한 히말라야시다 가지 밑에 웅크린
키 작은 물푸레를 보았다.
물푸레나무는 가린 햇살을 차지하려고 최대한
앞으로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이파리들에 가린
물푸레나무
한창 물이 오른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어둡고 추워 보였다

잎이 화사한 나무일수록 자신의 밑에
다른 나무가 서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나무를 우린 폭군 나무라고 부른다지?
중소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던 초봄이었다.

힘 있는 사람 곁에서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내던져졌다.
마흔 살의 여자, 나는
우악스런 손에 뒷다리를 앗긴
방아깨비처럼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누군가의 그늘 아래서 한없이 키를 낮춰야 하는
물푸레나무는 춥다

지금 나는 이파리 퍼런 어느 나무 밑에서
야윈 몸 웅숭그리고 서 있는지

나무에게도
서 있는 자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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