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2 03:28
<비밀 시 모음> 강서일의 '비밀' 외
+ 비밀
또 봄이 왔느냐.
또 꽃은 피었느냐.
홀연히 비밀의 꽃등을 밝힌
문 밖의 모란.
봄은 또 왔느냐.
꽃이 또 피었느냐.
사람들아,
꽃구경 가자.
(강서일·시인, 전남 여수 출생)
+ 비밀
빈말이 아니로세
비밀이 없다는 말
한동안
숨겨지는 것뿐
언젠가는 밝혀지니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비밀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게 궁금하지만
내가 그러하듯이
밝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밀은
(박근수·시인, 1956-)
+ 바람의 비밀
가지만 아는 비밀
잎사귀만 아는 비밀
바람은 날마다
개울 이끼 물어다
흔적을 남긴다
풋고추가 빨갛게 물들 무렵
벼이삭이 여물 무렵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옷 깁느라
분주한 나뭇잎들
금간 옹기처럼
부석거리는 삶에
꽃물 들이고 싶다
(소양 김길자·시인, 1948-)
+ 비밀
내가 얼마나
멀고먼 여행을 다녀왔는지
아무도 모르리라
미로를 헤치고
넓디넓게 우주의 원을 그리다
한번씩 나를 찾아 발돋움하던 곳
긴긴날 깊은 침묵의 늪에서
번갈아 해와 달을 바라보며
내가 무엇을 하다 돌아왔는지
아무도 모르리라
적막 속에서도 빛나던 행복을
슬픔 속에서도 소중했던 기다림을
그 누구도 모르리라
(홍인숙·시인, )
+ 비밀
수십 편의 연가를 써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나신裸身이 되어도
가벼워질 수 없는
숨겨진 비밀 하나
해체를 시도하지만
아메바처럼
숨가삐 조여오는
아무생각 없이도
다시 태어나는
사랑, 욕망, 그 질량.
(이지영·시인)
+ 새까만 비밀
임마, 넌 모른다, 넌 모른다.
나만 아는
ㅡ 텃밭 네 귀에 새까만 비밀.
어림없다, 어림없어, 안 가르쳐 준다.
나만 아는
ㅡ 텃밭 네 귀에 내가 심은 콩.
임마, 넌 모른다, 넌 모른다.
나만 아는
ㅡ 꼬리만 까불대는 물새집.
어림없다, 어림없어, 안 대준다.
나만 아는
ㅡ 꿀이 소복한 구멍벌집.
임마, 졸라대도 졸라대도 소용없다.
나만 아는
ㅡ 내 호주머니 속 새까만 비밀.
어림없다, 어림없어.
나만 아는
ㅡ 호주머니 속 왕구슬
(박목월·시인, 1916-1978)
+ 비밀
쉿, 말하지 말아요
패랭이꽃이 언제 그렇게 화들짝 피는지
노래방에 가면 무슨 노랠 즐겨 부르는지
내가 어떨 때 생긋 웃는지를
그저, 당신만 알고 있어요
수수꽃다리는 어느 향기가 더 좋은지
몇 시에 모닝콜을 해 놓았는지
당신이 무얼 잘 드시는지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요
당신의 내가
이미, 아는 일이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아무도 모르게
(최원정·시인, 1958-)
+ 꽃의 비밀
땅속 어두운 곳에
뿌리가 있어
그 뿌리가 겨울 내내
끈질기게 살아남아
새봄이면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태양같이
환하게 피어난다는 것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기초적인 상식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꽃의 밝음만 보려고 한다
땅의 어둠 속
뿌리의 존재를 망각하고
탐욕스럽게
꽃의 영광에만 눈멀어 있다
어처구니없이
바보같이.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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