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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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에세이
2003.03.03 14:10

첫사랑을 찾는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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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찾는 가브리엘 / 홍인숙(Grace)




사랑하는 사람이여, 편히 쉬세요.
그대를 지키러 나 여기에 왔습니다.
그대 곁이라면
그대 곁이라면
혼자 있어도 나는 기쁩니다.

그대 눈동자는 아침의 샛별
그대 입술은 한 송이 빨간 꽃
사랑하는 사람이여, 편히 쉬세요
내가 싫어하는 시계가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 롱펠로우-


"내 나이 벌써 오십입니다. 자식을 둘씩이나 두고 있으며 이제 와서 그녀를 만나 어쩌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살아있다면 얼굴이라도 꼭 한번 보고 싶어서 그녀를 찾습니다."
오십대의 한국 남자가 첫사랑의 여인을 찾고 있는 내용입니다.

잠 안 오는 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글을 본 순간 오래 전에 읽었던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의, 프랑스 식민지 아카디아 이민들의 슬픈 사랑을 노래한 장편 서사시 "에반젤린"이 떠올랐습니다. 첫사랑을 찾는 한 중년 남자의 호소가 에반젤린과 그의 연인 가브리엘의 애절한 사랑처럼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농의 딸인 에반젤린과 대장쟁이의 아들 가브리엘은 오랫동안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나 결혼식 날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온 마을 사람들이 추방당하여 뿔뿔이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에반젤린은 사랑하는 가브리엘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시작합니다. 가브리엘 또한 에반젤린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의 숨바꼭질은 수 십 년 계속 되었습니다.

흑사병이 돌던 시절의 어느 날, 많은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러 요양원에 들렀던 에반젤린은 그 곳에서 죽어가는 한 노인을 만납니다. 그가 바로 꿈에 그리던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가브리엘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싸늘하게 식어 가는 그의 얼굴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조용히 노래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네
희망도, 공포도, 슬픔도,
가슴 아파하던 것도..
그 모든 것이 사라졌네

- 롱펠로우 -


에반젤린이 일생을 못잊고 찾아 헤매던 가브리엘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늙고 병들어 짧은 키스로 하늘나라로 보내고 비통해하는 여인의 애절한 심경이 가슴 저리게 감겨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한 두 사람의 기억을 품고 살지 않을까요.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보이지 않은 행복과 고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보고 싶은 사람 한 사람쯤 가슴 갈피에 꼭꼭 숨겨놓고 가끔 지갑 속에서 낡은 사진을 은밀히 꺼내보듯 혼자만의 비밀스런 설레임과 행복은 먼지가 뽀얀 일상에 잠시잠시 스쳐 가는 향긋한 바람 같은 것 아닐까요.

첫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첫 경험은 소중한 것이며 그 풋풋한 순수함에 왠지 모든 실수나 허물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것.
보일 듯 말 듯 우리의 思考 깊숙이 자리해서 조그만 파장에도 큰 울림으로 전해오는 것.
소리 없이 내리는 밤비 속에 자박자박 들려오는 애잔한 발자국 소리 같은 것.
그 뿌연 빗물 속에서도 완연히 보이는 얼굴. 그리움의 세월만큼 더 깊어지는 가슴앓이.
누구나 드러내지는 않지만 첫사랑의 연인을 한번쯤 만나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입니다.

첫사랑을 찾는 한국의 가브리엘.
긴 세파에도 여린 감성을 소중히 지켜와 삶의 잔가지를 곱게 다듬는 그의 정겨운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그가 에반젤린의 연인 가브리엘처럼 더 늙고 병들기 전에 소중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찾는 첫사랑의 여인도 에반젤린처럼 그 남자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는 헤어져도 푸른 바다를 서로 도는 갈매기처럼 보고 싶을 때 훨훨 날아가 만나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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