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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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2018.04.0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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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시집『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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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면 감사해야할 일만큼이나 이토록 사죄해야할 것도 많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죄를 지으면서 염치불구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기철 시인의 성찰과 참회는 속죄라기보다는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성숙한 자아에 그 방점이 놓여야할 것이다. 인격의 성숙은 타인에게 감사한 마음과 송구한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롯된다. 살다보면 나의 작용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로부터 덕을 입는 경우가 있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맺은 숱한 인연들 가운데서 나로 인해 서운하고 마음상한 사람이 없다고는 누구라도 장담 못한다. 고마운 일에 인사가 소홀했을 수도 있고 미안한 일이 있는데도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리라. 본의 아니게 못 알아본 사람, 오랜 연락 두절로 서운한 친구도 있을 것이며 내 불찰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도 있을 수 있다. 무심히 내뱉은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상했던 사람도 있겠고, 나의 짧은 생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마음갈피를 헤아리지 못해 섭섭한 사람이 있음을 안다.

끊임없는 세상의 참혹도 타인의 개별적 슬픔도 다르지 않다.(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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