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사과의 향기

by 홍인숙 posted Nov 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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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한 사과의 향기


    

                            홍인숙(Grace)




    벌레가 베어먹은 과일의 향이
    더 짙고 달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를 안아본 사람의 가슴이
    더 깊고 따습다는 것을 안 것처럼

    일상에 예기치 않던 일들이
    불쑥불쑥 찾아들면
    깊은 수렁을 허우적거리며
    날카로운 계단을 올랐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낯선 얼굴
    상처투성이 살갗을 부비며
    내려다본 저만치 아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사과나무로 내가 서 있었다

    상한 사과의 짙은 향기처럼
    내게도 이젠 성숙의 냄새가 풍겨난다
    깊고 따뜻한 가슴도 만져진다

    허우적거리던 수렁 속에서
    소리 없이 자란 내가 대견스런 날

    눈부신 하늘이
    맑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여름날의 오후처럼.


    (2002. 10.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