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나온 白色 공간

by 홍인숙 posted Aug 02,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지나온 백색 공간

 

  


                             홍인숙(Grace)




- 백색 공간 / 지독한 환상, 환청의 세계 /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일기 중 한 부분이다.

 

   결혼 후 곧바로 부딪친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낯선 문화와

복잡한 인간관계, 최초의 육체노동은 나의 정신세계를 깊은

혼돈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낮 동안의 쌓인 긴장감으로 매일 밤 무의식의 늪 속을 허우적

거리고 다녔다. 혼돈의 깊은 수렁을 헤매다가도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면 소리도 쳐보고 발버둥도 쳐보지만

그곳은 고독한 백색의 공간,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또 다른 거대한

세계였다. 한참을 안간힘 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형용할 수 없는

허탈감이 흠뻑 젖은 옷 갈피로 차갑게 밀고 들어왔다.

 

   날이 밝으면 창백히 눈만 걸린 얼굴로 준비된 일상을 따라나서고..

그런 날이 반복되다 한 번씩 구급차를 타고.. 이십 대의 발랄함을

상실한 동양의 여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의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진단을 내렸다. "향수병鄕愁病 입니다"

 

   어디로 갈까... 방황이 깊다보면 바로 그 방황이 사치란 것을 알게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거부할 수 없는 길이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낯선 땅을

신호등도 무시하고 숨가쁘게 달렸다. 이제 그 방황의 거리, 백색의 공간을

뒤돌아보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 미로를 헤쳐 왔는지 나 스스로를 따뜻이

안아주고 싶다.

  이제는 신호등을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네거리를 건너고 싶다.

 

   "시詩를 좋아하냐고 물으셨나요? 제게 시는 신호등의 빨간 불이지요.

무의식의 일상에서 멈춰 서 한 번씩 나를 돌아보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