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를 부르는 소리

by 홍인숙(Grace) posted Nov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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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부르는 소리 / 홍인숙(Grace)



태어날 때, 내게 붙여진 호칭은 단 하나였다.
그것이 세월의 결에 비례하여 하나, 둘 늘어나 지금의 난,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우선 결혼을 하고 미국에 오면서 25년 동안 내게 소속되었던 성(姓)이 바뀌었고, 시댁과 친정, 사회생활에 얽히면서 나의 호칭은 수 없이 늘어났다.
결혼 후, 남편에게는 여보 라는 아내로, 아이들에게는 엄마로, 친지들에게는 아이들의 엄마로 불리고, 한글학교에선 선생님, 교회에 가면 집사님으로 통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호칭에 따라 긴장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도 가장 정다운 것은 내 어릴 때, 친정부모님이 불러주시던 '숙아' 와,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불러주시던 '에미야'다. 나를 사랑으로 불러주시던 정겨운 목소리, 자다가도 들리는 듯한 그 음성에 지금도 가슴이 메어온다.

친지들이 불러주는 "리챠드 엄마" "크리스 엄마"라는 소리도 듣기 좋다.
그때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가슴에 포근히 안기는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 집사님으로 불릴 때, 하나님이나 교인들 앞에 늘 나의 부족한 모습이 떠올라 정말 부끄럽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불려지는 호칭 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살아가면서 점점 늘어나는, 인간관계에 얽힌 보이지 않는 끈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를 구속하고, 그에 따라 나의 존재를 나누어 표출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그것은 꼭 나를 부르는 소리에 따라 내게 이탈할 수 없는 배역이 주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내 안에 여럿의 타인이 존재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도 자신과 온전히 친숙해 질 수 없는 모순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한세상 살아가면서 외롭지 않게 기대어 살 수 있도록 가족과 이웃이란 구성원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부르는 그 모든 소리에 사랑을 갖고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