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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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6.11.14 09:19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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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홍인숙(Grace)

  

자정이 훨씬 넘었다. 방안을 훤히 비추는 빛을 따라 커튼을 열어보니, 밤하늘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린 듯 반가운 얼굴로 떠있다. 뒤뜰로 나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정원의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달빛이 아름다운 밤, 그 누구도 쉽게 잠들 수 없으리라.
  
달빛아래 푸르름이 짙은 나무들. 내일의 화려함을 위해 다소곳이 미소짓는 장미. 풀벌레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는 적막한 가운데, 가슴속에 구슬처럼 쌓여있던 그리움들이 하나 둘 맑은 소리로 굴러 나온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평화 속에 눈을 감으면 어느새 망막위로 번져오는 그리움. 나이가 들수록

잔주름만큼이나 그리움도 늘어가고, 불면의 밤은 쌓여 간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세월은 결코 크지 않은 소리로, 그러나 쉼 없이 흘렀다. 잃고 싶지 않던 순간들이

하나 둘 흐르는 시냇물에 씻겨 내리듯 그렇게 가고, 이제 내게 남은 건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리움뿐이다.

그리움은 설레임. 그리움은 눈물. 그리움은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은 잔잔한 물결 위에 반짝이는 은빛햇살

같은 것. 그렇게 그리움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남아있어 더욱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정이 남고, 미련도 남고, 살아있는 꿈도 남아있다는 것이리라.
가슴속 깊은 곳에 그 많은 그리움들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승의 욕망으로 달려들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때, 그 그리움의 끈들을 얼마만큼이나 풀고 가려나.
  
달빛이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밤. 이렇게 평화로운 뜨락에서 임종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리라.
이제 새벽으로 향한 호흡이 시작되고, 몇 시간 후면 떠오를 태양을 위해 겸허히 비껴 설 달과 함께 마음속에

그리움들을 나누어본다.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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