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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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숙 시인의 시집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



                            나그네의 향수, 존재의 소외

                                                                       시평 / 박이도 (시인. 경희대 교수)

  
  홍인숙의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를 읽고 또 읽었다. 시집의 작품들에 대한 평설을 쓰기 위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 읽을 때부터 나는 작품 속에서 묻어 나오는 깊은 향수(鄕愁)에 빠져들었다.
  
  시집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는 인간 본성의 소리 없는 흐느낌을 엿듣는 기분이다.
어린이가 모친을 떠나 있을 때, 그 그리움이 사무치듯, 고향을 떠나 나그네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간 본성의 정서가 연민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다.
  언어와 풍속, 지세와 기상, 및 사고상식까지 차이가 나는 이국(異國) 풍정에 싸여 현실을 감당해 나가야만 하는 나그네의 정서엔 짙은 페이소스가 넘친다.

                   오늘 같은 날은
                   바람도 몰래 살짝 가랑잎으로 떨어져
                   서울 거리를 훨훨 날고 싶다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의 해묵은
                   사진 보며 녹차 향에 취해보고

                   삐꺽거리는 계단 올라 담배연기
                   자욱한 아폴로에서
                   묵직한 클래식 선율에 두어 시간
                   푹 잠겨도 보고 싶다

                   붕어빵 한 봉지 사들고
                   비원 숲 벤치에서
                   연꽃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다

                   후암동 내 살던 집 앞에 서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올갠 소리
                   그리곤,
                   그리곤
                   흔적도 없이 돌아와
                   온몸이 다 타도록 앓고 싶다.

                  
                   -[서울, 그 가고픈 곳]에서 발췌

  
  수구초심(首邱初心)의 추억이 만발했다
  왜 태어나고 성장했던 고장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인간 본성의 가치관에서 연유할 것이다. 체험하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통해 인간은 보다 풍부한 정서와 상상력을 지니게 된다. 그 바탕에서일차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과거 지향적이며, 자기 만족 혹은 긍정의 구체적인 세계일 것이다.
시인은 이같은 세계를 [서울, 그 가고픈 곳]에서 개인 상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식 리얼리즘에선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 - 이데올로기의 제고, 투쟁적 목표달성 등- 독자들을 선동하고 흥분시키나 이런 것들을 개인상징의 수법으로는 좋은 성과를 얻기는 힘들다. 작품 속에 개인상징을 드러낸다는 것은 가장 주정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신화시대의 인간이나 농경시대, 혹은 21세기에 살아있는 인간이나 내적 성정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고볼 때 오랜 인간사를 두고 변함없이 인간의 의식 속에 흐르는 욕망은 무엇일까.
  제 일차적인 것이 질 좋은 의식주와 종족보존의 염원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내일에의 희망을 꿈꾸는 자이다. 이 꿈꾸기는 자신의 과거에의 추억에서 비롯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시인 타골의 작품 (종이배)엔 다음과 같은 싯귀가 있다.

  날마다 나는 종이로 지은 배를,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띄어 보냅니다.
  크고 검은 글씨로, 나의 이름과 나의 사는 마을 이름을 그 위에 적습니다.
  어느 먼 나라의 모르는 이가, 그 배를 주워보고 내가 누군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후략)

  이 작품은 소년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홍인숙의 위의 작품은 이미 꿈꾸던 미지의 나라에 가서 떠나온 고향을 추억하는 것이고 타골의 작품은 그 미지의 나라를 호기심으로 갈망하는 내용이다. 타골의 작품 후반엔 광주리에 꿈을 가득 실어 띄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홍인숙의 경우도 서울에서 성장하던 시기에 꿈을 타골의 [종이배]와 같은 정조(情操)로 쓴 습작이 많았을 것이다.

  [서울, 그 가고픈 곳]은 분명 꿈꾸던 미지의 나라에서, 꿈꿀 때와 현실의 괴리현상에 당혹과 비애을 절감하고 살아가는 자의 노래이다. 미지에의 꿈, 미래에의 희망은 한갓 환상인줄 인간은 체험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이 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길은 과거 유년기부터 꿈꿀 때의 환상을 추억하고 과거에 함께 살았던 인간군과 그 배경(지역)에 향수를 강하게 되새기는 것이다.
  일종의 엘리지(Elegy)로서 특정한 시안에 한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적인 비애미(悲哀美)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상적인 가치를 두었던 꿈이 사라지고 정든 사람들과 사물의 곁을 떠나 있는 나그네의 비극적 엘리지가 살아 숨쉬는 작품이기도 하다.

  위의 작품과 같은 성향의 작품으로는 [캘리포니아의 겨울] [하늘]등을 들 수 있다.

                   가을의
                   정갈한 손길이 플라타너스
                   머릿결을 빗기고 있다

                   묵은 잎새 하나
                   나무를 떠나는 순간
                   나비 되어 내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누워있는 하얀 햇살
                   줄지어 내려오는
                   자유로운 몸짓

                   가을은 떠남의 계절
                   헤어짐이 아름다운 계절

                   절정의 순간을 소유함은  
                   떠나는 것임을
                   지나간 시간만이
                   완전한 소유가 될 수 있음을

                   플라타너스 잎새는
                   알고 있었다      

                  - [플라터너스]의 전편

  구성과 진술의 방법에서 [서울, 그 가고픈 곳]이 개인 상징법을 썼다면 [플라타너스]는 원형 상징의 방법을 썼다. [서울, 그 가고픈 곳]이 주정적이고 직정적인 작품이라면 [플라타너스]는 주지적이고 원형적인 작품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적인 기법에 다소 헛점은 있으나 이 작품은 생명의 한계성과 그 절정의 미의식을 순환적 시간구도에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가을'이란 계절의 명칭은 '플라타너스'라는 식물과 함께 순환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속성은 다르나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성질의 원형을 조화시켜 이것들의 절정에 이르는 찰라를 박진감있게 전개한 작품이다.
  '잎새'가 '나비'로 변하고 '햐얀 햇살'이 '자유로운 몸짓'으로 구체화되어 화신(化身)하는 일련의 찰나적이고 착시적(錯視的)인 현상이다. 이 생명의 한계성에서 영원성을 깨우쳐 내게 하는 절정미가 살아있다.
이는 '떠남'과 "헤어짐'이란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원형의 모델로 옮아가는 것을 확인케 한다.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신발 한 켤레
                   다만
                   무엇이 나를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가

  [신발 한 켤레]의 후반은 [플라타너스]와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
  신발은 움직일 때 신고 떠나야하는 것이기에 동적(動的)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신발을 두고 화자는 의지대로 즉시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 허무, 비애 등과 같은 인간적인 문제들의 정체 혹은 본질이 무엇인가 자문(自問)하고 있다. 이 역시 강한 페이소스가 넘쳐흐른다.

  작품 [이명] [약속]의 경우 화자의 존재성을 확인케 한다.

                   부서지는 햇살에
                   눈부신 바다

                   멀리
                   사랑을 나누는 물개소리
                   절뚝이는 바닷새도
                   비상을 준비하는
                   평화로운 오후

                   종일토록
                   귀뜨라미 한 마리
                   울어댄다

                   - 중략-

                  작은 가슴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파도소리 보다
                  더 큰 울림으로

                  - [이명]에서

  멀리 바다를 향해 보고 들리는 자연의 조화 속에서 문득 화자의 존재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가 의식하는 것은 꿈, 이상,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세계관일까 아니면 불행, 외로움, 슬픔 따위의 부정적 세계관일까. 일반적으로 시적 자아란 부정적 세계관에 빠질 때 비극적 울분과 흥분에 빠지게 되나 시의 구문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보다 냉정하고 침착해지게 된다. 그럴 경우 시적 완성도도 한결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명]에서 화자는 큰 소리를 질러보거나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울어 보고도 싶은 심경을 극도로 절제 (작은 가슴에서 / 울어대는/ 귀뚜라미)로 바꿔 놓고 있다. 이것이 몇 배나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오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살아 있음을/ 나에게/ 약속하는 것)- [약속]의 마지막 연- 이라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단 한사람 그에게/ 나를 알리..)고 잊혀진 그이거나 이미 이 지상에서 살아진 그이와의 영원한 유대감, 내지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이 경우 소외(疎外)로부터의 자기 존재확인 일 수도 있다. 소외가 철학이나 사회학적인 개념에서 비롯한다고 볼 때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삶에 우뚝 선
                   인생의 절벽
                   그 가파른 길에 서 보니
                   살아온 것은
                   티끌보다 작은 것
                   이대로
                   맴돌다 사라지려나
  
                  -[세상엔 아직도]에서-

  
                   내 영혼이
                   자다가도 문득문득 서글퍼지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 중략-

                  내 영혼을 사랑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
                  바로 나이기에

                  - [내 영혼을 사랑할 사람]에서

   앞에 인용한 [서울, 그 가고픈 곳]등 일련의 작품들이 '소외'라는 의식 속에 침잠하기 전 즉 소외 이전의 그리움, 향수 따위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면 [세상엔 아직도]나 [내 영혼을 사랑할 사람]은 '소외'를 체험하고 있는 현재형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살아온 것은 / 티끌보다 작은 것/ 이대로 / 맴돌다 사라지려나/)에서 드러나는 정조는 소외의 자기 존재 확인에 그친다. 허무하고 인간 소멸의 비관적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내 영혼을 사랑할 사람]에선 소외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소생하고 있다.
  (- 아침이 오지 않기를 / 기도합니다), (내 영혼을 사랑할 사람/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바로 나이기에)라고 존재론적인 자기 자신의 확인, 내지 인격적, 영적인 세계에로까지 초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회학적 개념의 차원에서 본다면 정치, 경제, 문화 등 광범위한 차원에서 얻게되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잠재될 수밖에 없다. '나그네 시인'이라는 의식이 시인의 의식 속에 잠재하는 한 자기 존재확인으로서의 소외의식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맑고 싱싱한 언어로만 빚은 작품, 순수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비 개인 아침]을 말미에 소개, 시집 읽기에 부담을 떨쳐 버리고자 한다.

                   세상이
                   말간 얼굴로 눈을 떴다

                   밤새 내린 비로
                   채 마르지 않은 대지
                   햇살에 눈이 시리다

                   준비된 삶으로 향한
                   새들의 분주한 몸짓
                   일제히 일어서는 풀꽃들

                   밤잠 설친 얼굴에도
                   자연의 숨소리는 너그럽다

                   광대한 세상
                   나 또한 빗물처럼 밤새우다
                   어느 아침
                   맑게 씻긴 영혼으로
                   내 최초의 순간 앞에 서고 싶다

                   순수로 남고 싶다.


                    2001년 8월
                시집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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