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리스도 안에서 빚진 자  

by 홍인숙(Grace) posted Nov 10,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리스도 안에서 빚진 자  
                              

                                                                                                               홍인숙(Grace)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의 본질을 잊고, 떠들썩한 파티를 열고 과도한 선물
이나 얄팍한 상혼 속에 휩쓸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탄절은 기쁨, 사랑, 평화의 절기다. 2000년 전 우리와 똑 같이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예
수님. 어둠에서 빛으로, 분쟁 속에서 화평으로, 미움과 시기 속에서 사랑으로 오신 그 분은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며 희망이다.
우리는 조용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을 갖아야 할 것 같다.
  
대학교에 갓 입학하고 잠시 종로 화신백화점에 있던 교복전문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이 있었다. 신학기여서 많은 학생들이 맞춘 교복을 찾아가느라 혼잡한 중에, 한 남자 고등
학생의 교복을 이름대로 찾아 주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던 그 학생도, 같이 온 형도 돈이 조금 모자라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집도 먼 것 같았고, 겉보기에도 넉넉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난 말없이 내 돈을 대신
채워 넣고 그들에게 교복을 들려 보냈다. 그리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그 형제
는 그 돈을 갖고 찾아와 잊고 있었던 나의 기억을 일구어주고 감사하며 돌아갔다. 그날, 그
냥 지나쳐도 됐을 아주 작은 것을 기억하고 찾아 온 그 착한 형제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따뜻한 그림자로 남아있다.
  
여성 교육자 이철경씨가 이끌던 주부클럽연합회에서 가난한 주부들을 상대로 손뜨개를 가르
쳐주며, 부업을 알선해 주는 봉사를 한 적도 있었다. 궁색한 살림의 때가 지워지지
않는 먼지처럼 엉겨붙은 아주머니들이 내게 손뜨개를 배우고 일감을 받아갔다.
그때 그 가난했던 아주머니들은 한달 내내 고생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아가면서도 늘 감
사해했다. 굳이 사양해도 빵이며 과자 등을 사주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땐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 주기도 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특히 고통을 아는 사람일수록 작은 은혜에도 지나치
지 않고 더 감사의 깊이를 느끼는 것 같다.
  
이제 곧 2000년대 밀레니움시대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의 설렘 뒤에도 외로운 얼굴은 있
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베푸는 작은 온정에도 몸 전체로 사랑을 느낄 만큼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지
금도 내 곁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빚진 자라고 하였다. 권력을 가진 자는 소외된 자에게 빚진 자
요, 물질을 가진 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하였다. 나도 남이 베풀어준 은혜를 까
마득히 잊고 사는 은혜에 빚진 자가 아닐까. 금년 성탄절은 지난 한해 동안 내게 사랑을 보
내준 분에게 작은 감사라도 전하는 마음으로 보내야 되겠다. 갈수록 첨단화되는 현대문명
속에서 점점 이기적이고 고립화되는 인간관계. 넘치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사랑이 메말라
가는 것이 아쉽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더 큰사랑을 나누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다.
  
            (1999년 크리스챤 타임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