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의인기 비결

2016.02.15 08:23

김학천 조회 수:104

   옛말에는 요샛말로 갑질형이나 거드름 피는 듯 들리는 어투들이 더러 있다. '이리 오너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라고 여쭈어라' 등이다. 
  내외주가(酒家)라는 것이 있었다. 집안은 몰락하여 생계는 옹색해지고 양반계급마저 무너진 마당에 구태여 체통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을 때 아낙네가 방 하나 내놓고 넌지시 술을 파는 곳이었다. 그러나 비록 술장사는 한다 해도 손님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내외의 분별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술집을 표시하는 초롱조차 내걸지 않아 알음알음으로 찾아 집 문 앞에 이르면 '이리 오너라!'하며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그러면 안에서 '들어오셔 자리 깔고 앉으시라고 여쭈어라' 하는 아낙네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자리를 꺼내 앉고 나서 '앉았다고 여쭤라' 하면 술상을 차려 마루에 올려놓고는 '안주가 변변찮지만 잘 드시라고 여쭈어라' 한다. 그러면 손님은 술상을 들고 들어가 술을 따라 마신다. 마시다가 흥이 아쉬워 '마님더러 한 잔 따르라고 여쭈어라'며 자리를 청하면 방문을 사이에 두고 덕담이 오가고 취흥에 젖는다. 
  그러다 다 마시고 나면 '술값이 몇 푼인지 여쭈어라' 묻고는 돈을 놓고 '잘 마시고 간다고 여쭤라'며 나선다. 그러면 '안녕히 살펴 가시고 또 들르시라고 여쭈어라'며 작별을 고한다. 마치 아랫것들을 시켜 분부를 대행케 하듯 주객과 주인마님이 대화하는 모양새다. 
  요사이 한국에서는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인기라 한다. 60세부터 100세까지 나이대별로 저승사자가 찾아오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못 간다고 전해라' 하며 아직은 가기엔 어림없다 듯 물리치는데 그 말투가 낯설지 않다. 한데 이 노래의 열기가 뜨거운 것은 얼핏 나이를 이기는 청춘 같은 노익장 과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단 '-~라고 전해라'고 하는 거드름에서 묻어나는 신분상승의 느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앞의 말을 빌자면 '못 간다고 여쭈어라'인 셈이다. 가진 자들은 갑질하는 데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못 가진 자들은 이들의 제물이 되며 분루(憤淚)를 삼킨다. 가뜩이나 미개한 정치 아래 금권으로 신분을 차별화하는 사회 속에서 경제력마저 없으니 그 어디 하나 기댈 데도 없다. 그러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분노하고 이를 갈아본들 탈출구마저 없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깊은 수렁으로 떨어져 가야하는 '을'들이 아니던가? 
  이런 판국에 자신이 내뱉는 '전해라(여쭈어라)'는 그 한마디가 흡사 '예이, 여쭈랍신다'며 전하는 심부름꾼을 부리는 듯하니 그 위안이 어떻겠는가? 대리만족도 이만한 게 없을 게다. 게다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얼굴 보지 않아도 되고, 오는 말 곱지 않으면 가는 말로 되 씹어주니 이 또한 속 시원하고, 상대방의 덩치나 외모 치장에 기죽을 필요조차 없으니 이 얼마나 꿈같은 놀음인가 말이다. 
  그러하니 잃은 자존심이나마 회복하고 싶은 찰나에 때 맞추어 나온 이 노래의 '~라고 전해라'는 종이나 하녀를 둔 듯 대행시키는 어투에서 '나도 가진 자'라는 의식과 그래서 나도 네게 명령할 수 있는 갑질을 뭉개버리는 되갚음의 카타르시스를 갖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이제 너 네들 모두 까불지들 말렷다! 그야말로 통쾌하다고 여쭈어라!’어흠, 고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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