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장례식

2013.02.22 07:42

김학천 조회 수:347 추천:72

   지난 주말 평소 존경하던 한분의 댁을 다녀왔다. 간암 수술을 받고 난 지 얼마 후 또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다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간신히 회복되어 너싱홈과 병원을 오가면서도 그 예지와 삶의 향기를 잃지 않으신 용감한 분이시다.
   이제 더 이상 치료가 안 되어 집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마감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눈에서 책을 떼지 않고 겨우 사용할 수 있는 한손으로 누워서도 자신이 못다 끝낸 글을 써가고 계신다.
   어느 날 자식들에게 청을 하셨다. 세상과 하직할 때가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지만 그나마 아직 정신이 남아있을 때 세상 떠나기 전 가족들과 친지가 모두 모여 마지막 예배를 보고 서로 담소를 나눠보는 시간을 원하신다는 거였다.
   목사님이 오시고 모든 가족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예배가 진행되었다. 그리곤 모두 한사람씩 돌아가며 그 분에 대한 좋았던 추억이나 서운했던 기억, 미웠던 일, 고마웠던 일 등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웃음도 피고 눈물도 보이면서 결국엔 모두가 서로 사랑했음을 확인했다.
   특히 젊어서 기독교에 대해 무섭도록 회의적이었던 분이 후에 헌신적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된 뒷이야기에서는 가슴이 저렸다. 말하자면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에서 하는 송덕문을 살아생전에 듣고 나누는 일종의‘미리장례식’같은 것이었다.
   이를 보면서‘미치 앨봄’이란 작가가 쓴‘모리와 화요일’이라는 책에 나오는 생전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미치는 대학 때 춤을 좋아하며 열정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유머러스한 모리교수와 강의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졸업을 한 후에도 계속 연락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한다. 어느 날 췌장암으로 사망한 외삼촌을 보고 그는 외삼촌처럼 인생을 마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여 사업에 성공하지만 가족다운 생활보다는 성취감에 파묻혀 산다.
   그러다가 어느 늦은 밤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온 루게릭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모리교수를 보게 되고나서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그를 방문한다. 갈 때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수와 세상의 수많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한번은 모리교수가 대학에서 함께 가르치던 동료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어 그 장례식에 갔다가 낙심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이런 부질없는 일이 어디 있나.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멋진 말을 해주는데 정작 주인공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하니 말이야.”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이를 기억해낸 교수는 멋진 생각을 해 내고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을 자신의 살아 있는 장례식에 초대했다. 모인 모두는 각자 좋은 말들을 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우는 사람도 있었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모리 교수도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마지막에 평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가슴 벅찬 이야기를 그는 그 날 전부 토해냈다.
   “죽을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하는 제자의 물음에 교수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 놓는거야. 그리고 그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지.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교수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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