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2013.05.25 02:08

김학천 조회 수:320 추천:65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적응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상대방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친구나 허물없는 사람이 아니면, 특히 윗사람과 대화할 때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한다는 건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었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옆에 있어도 그립다’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이끼리야 들여다보고 또 봐도 아쉽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 우리네 관습으로는 오히려 기이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무례하거나 경우 없는 사람으로 간주 될 수도 있기 때문에서다.
   허나 이곳에서는 무안할 정도로 상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뚫어지게 쳐다본 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참으로 거북하고 무안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감추고 피하는 행동으로 의심을 살 수 있고 심지어 어떤 때는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저쪽에서의 공손함은 이쪽에서는 수상함으로 여겨지고, 이쪽에서의 자신감은 저쪽에서는 뻔뻔함으로 비쳐지는 것을 보면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다를까 새삼 놀란다.
   허나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다.’라는 우리의 오랜 속담을 생각해 보면 눈이 신체 중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긴 것을 보아 눈이 사람의 생각을 나타낸 ‘마음의 창’이란 점은 양쪽이 똑같다고 하겠다.  
   어쨌거나 이곳에 와서 개업을 시작하면서 환자를 대할 때마다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를 하는데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마음을 굳게 먹고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마주치고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하려한다. 헌데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된 거다. 서양인의 눈 색깔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말이다. 그 농도는 또 어떻고. 주로 검은 빛 눈동자만 접하며 살다가 이 곳에 와 다양한 눈 색깔을 접하니 마치 흑백영화만을 보다가 총천연색 스크린을 보는 듯 현란했다. 이런 상황에 눈 맞추기에까지 집중 해야하다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 지 간혹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러워졌으니 세월이 약이라고나 할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사람의 눈은 현재의 그를 말하고, 입은 그의 미래를 말하여 준다’는 말이 있듯이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왔나를 말해 준다는 얘기다. 우린 살아가면서 눈으로 많은 것을 본다. 헌데 세상엔 아름다운 것도 있고, 추악한 것도 있고, 겉으로 나타난 것도 있지만 숨겨진 것도 많은데 무엇을 보느냐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가 세상을 그분의 마음을 가지고 보기를 원하셨을 게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아야할 것은 외면하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만 시선을 두고 사는 건 아닌지.
   탈무드에 ‘눈동자가 검은 것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보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삶이 종종 어둡고 힘들어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잠시 삐뚤어진 수렁 속에서 헤맸어도 다시 벗어나오면 그 어두움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 본 우리를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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