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라디오 앵커맨의 사모곡

2013.08.30 02:09

김학천 조회 수:304 추천:66

   ‘히말라야에서/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어머니!/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몇 주 전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 미공영라디오방송 (NPR)의 주말 앵커 스캇 사이먼의 애절한 사모곡을 들으면서 박경리의‘히말라야의 노새’란 이 시가 떠올랐다.
    지난 7월 21일 84세의 그의 어머니가 시카고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응급실에 달려간 그는 어머니가 다시는 집으로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는 모든 일을 덮은 채 그때부터 남은 시간 동안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머니와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매일 여러 차례씩 트위트에 올려 세상에 알렸다. 엄습해 오는 슬픔과 안타까움들 그리고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고통 속에서 나오는 신음까지 써 올렸다.
    그의 120만 트위트 팬들은 물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여과되지 않은 꾸밈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느끼고, 위로하며 어떤 이들은 울기까지 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누군가의 죽음의 그림자에 섰을 때 침묵하고 감정을 마음속에 가두고 숨긴다. 그것이 삶의 마침표에 대한 예의로 익숙해져왔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허나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열린 마음으로 세상에 알린 그의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만나왔고 떠나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계기를 주었다. 병상에서 어머니는  ‘죽음은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결국엔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아들이 평생 동반자 같은 친구였노라고 했다.
    그 역시‘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 걸 좋아합니다. 그게 남자답지 않아 보이나요?  9살 때부터 해왔는데 왜 멈춰야 할 이유가 없죠.’라며 어머니 이상 좋은 벗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언제나 어머니를 위해 옷을 잘 입으려고 애썼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왜 그 옷이지?’ 혹은 ‘왜 그 넥타이지?’하곤 되물으셔서 어머니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우린 흔히 부모는 자식의 보호자로 아무 때나 찾으면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는 존재로만 여기고 그분들 나름대로의 소망이나 고뇌 같은 건 미처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 그 분들의 기운이 줄어들어서 자신들의 육신이 우리가 손 잡아주기를 원할 만큼 지쳐있는 데도 우린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심 순덕의 시처럼 우린 모르는지 외면하는지 그렇게 부모와 멀리 있기 일 수다. 그러나 이번 그의 이야기들은 우릴 다시 일깨워주었다.      
    7월29일 월요일 저녁 7시17분에는 트위트에 두 번이나 메시지가 올라왔다. ‘시카고의 하늘은 열렸고 어머니는 그 무대에 서셨다. 어머니가 천국을 빛나게 해서 전 세계가 이 밤과 사랑에 빠질 것 같다.’그리고 이어서‘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순간이 어머니와 같이 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인 것 같다. 이제 어머니는 왜 그 옷 입었어? 하고 묻지도 않으신다.’라고. 그리고 한 시간 후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프랑시스 잠의 노래가 떠오른다.‘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의 시각...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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