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아버지의 여름캠프

2013.10.28 06:44

김학천 조회 수:287 추천:55

   지난 주 부술 부술 비가 오는 밤에 방송 원고를 쓰다가 좀 쉬려고 TV채널을 돌리는데 아주 오래 전 영화 한편을 재방영하고 있었다. 헨리 영은 배고픈 동생에게 빵을 사주기 위해 5불을 훔친 죄로 체포되었다. 알카트라즈로 보내져 악독한 교도소장의 횡포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독방에 거의 벌거벗긴 채로 갇힌다. 심한 구타와 허접한 음식으로 받는 인간 이하의 대접 속에서 점점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리던 어느 날 자기를 고발했다고 착각한 간수를 살해하게 되어 사형에 직면하게 된다.
   이 때 이 사건을 맡은 신참 변호사는 잔인함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인 감옥 내의 만행에 분노하여 그 모든 비리를 폭로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증언을 마치고 감옥 독방으로 다시 돌아간 헨리는 이내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알카트라즈는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영구히 폐쇄된다.'일급살인’이라는 실화영화 이야기다.
   인간을 교화시키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을 부수고 앗아가 버리는 감옥, 그런가 하면 범죄학교라고 불릴 만큼 거기서 온갖 범죄수법을 배우고 나온다는 감옥이 과연 그 역할을 잘해내고 있으며 얼마나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의 의문을 던져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지난여름에 있었던 '아버지죄수와 아이들의 여름캠프'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비영리 기관‘희망의 집’에 의해 지난 13년간 동부 메릴랜드 등 3개 주 교도소에서 해온 행사다. 이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죄수들은 교도소 내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행사가 열리기 전 일 년간 모범적 행동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참가후보자가 정해지면 교도소 근처에 만들어진 캠프에서 방문한 자식들을 만난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이들과 하루에 6-7시간씩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낸다. 캠프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언가 만들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수감자들이 교도소 주방에서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는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들이 다시 교도소 내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희망의 집 스태프들과 함께 캠프에서 캠프화이어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침이 빨리 왔으면 하며 잠도 설친다고 한다. 다시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같은 범죄로부터 예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겐 아버지가 최고의 멘토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 캠프를 통해 아버지를 창피해 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아이들은 물론 아버지에게도 좋은 결과를 준다고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죄수들의 마음이 아이들 앞에선 녹아내려 변화하기 때문에 사법시스템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름캠프의 마지막 날에는 손을 잡고 포옹하며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또 일 년간 행동에 모범을 보이면 그 아이들은 내년 여름에 다시 또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이제 일주일이 지나고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아빠! 사랑해요'하면서 당부하는 말이 있다. '아빠, 꼭 잘해야 해요. 그래야 내년에 또 볼 수 있어요.'  그들이 어찌 참회와 기쁨의 눈물을 마음에 품고 잘 하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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